주석으로 된 얼음 냄비에 좋아하는 크림을 가득 채워라. 담백한 맛이든, 달콤한 맛이든, 안에 과일이 들었든 상관없다. <디저트의 모험> p 182. 1718년 메리 일스 부인이 영국에 처음 소개한 아이스크림 레시피의 첫 구절.
무슨 디저트를 좋아하세요?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그날 기분 따라, 날씨 따라 혹은 계절에 따라 항상 다르니까. 나는 파리 7구에 위치한 카라멜 파리karamel Paris의 피스타치오 파리 브레스트를 좋아하지만, 누가 여름에 저걸 선물로 준다면 거절할지도 모른다. 물론 뻥이지만.
단 한 가지의 좋아하는 디저트를 고르는 것은 힘들지만 확실한 건 있다. 나는 크림을 좋아한다. 겉으로는 새하얀 구름 같은 모양이 식욕을 자극하고, 입에 폭 떠 넣는 순간 달콤함과 향기를 입 안에 남기고 사라지는 크림들. 누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크림은 지금까지 미식가 들을 즐겁게 하고 때로는 아픈 이를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까지 쓰였다고 한다. 분명 크림을 먹기 위해 아픈 척을 하던 어린이도 여럿 있었으리라.
파리의 집 앞에는 지금은 한국에서 철수한 커다란 슈퍼마켓 까르푸carrefour가 있다. 유제품 코너의 버터 칸 맞은편에는 수많은 크림 베이스의 디저트들이 자리하고 있다. 컵에 담아내는 베린느verrine의 인스턴트 푸드 버전인 셈이다. 어떤 것은 초콜렛 크림만 가득 차있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그 밑에 제노와즈와 바닐라 크림이 들어가 있다. 이탈리아의 티라미수풍으로 비스킷 쿠키와 코코아 파우더가 가득 뿌려져 있는 것도 있는데 한 번은 먹다가 사레가 들려 죽을 뻔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커스타드 크림이 가득 들어 있는 크렘 브륄레Crème brûlée다. 카라멜화된 조그만 설탕 봉지가 붙어 있어서 이걸 뿌려 먹으면 진짜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크렘 브륄레를 먹는 느낌이 든다.
프랑스인들도 매일 제과점에서 디저트를 사서 먹진 않는다. 슈퍼마켓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이런 디저트들은 프랑스 가정 식탁에 마지막으로 오르는데, 아이가 잘못한 날에는 디저트를 주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에 대한 처벌이 디저트를 압수하는 거라니 한편으로는 귀엽고 한편으로는 잔혹하다.
최초의 우유 젖부터 네슬레의 크렘 브륄레까지, 크림은 역사는 길다. 크림은 낙농업의 시작과 함께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낙농업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이미 중세시대부터 크림을 사용한 디저트를 먹기 시작했다. 당시의 유럽인들은 크림을 다양한 방법으로 변형시켜서 즐겼는데, 술과 섞거나 크림으로 만든 따듯한 우유술posset, 우유 술과 비슷하지만 차갑게 해서 먹는 실러버브syllabub, 젤라틴을 사용해 크림을 굳혀서 먹는 블렁멍제blanc-manger, 후에 탄생한 휘핑을 해서 먹는 크렘 샹티이 Crème chantilly가 대표적인 디저트들이었다.
우유술은 중세시대 보다 훨씬 전인 기원전 16세기에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사람들은 따듯하게 데운 우유를 와인이나 셰리주 혹은 에일에 섞어 숙면을 위해 잠자기 전 종종 마시곤 했다. 이는 당연히 닦지 않았을 테니 당시 이 건강이 안 좋은 이유를 알 법하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멕베스에서 멕베스가 보초들을 잠재우기 위해 그들에게 준 것도 우유술이었다. 입이 심심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사람들은 종종 시나몬이나 넛멕 혹은 빵 부스러기 따위를 넣어 우유술을 마시곤 했다. 시간이 흘러 우유술은 레몬 계열의 산 계열의 액체에 크림, 설탕을 섞어 차갑게 마시는 실러버브로 발전했다.
블렁멍제, 하얀걸 먹다라는 프랑스어의 뜻처럼 새하얀 푸딩은 중세시대의 인기 디저트였다. 블렁멍제는 본래 아몬드 우유를 사용한 푸딩같은 디저트였는데 17세기 초반부터 종교개혁과 우유 자제령이 느슨해지면서 점차 진짜 우유를 사용하게 되었다. 만드는 법은 매우 간단했다. 설탕과 시나몬 혹은 시트러스 계열로 향을 입힌 우유에 전분을 섞어서 모양을 굳히면 끝이었다. 중세의 블렁멍제는 잘게 찢은 닭고기나 생선을 섞는 경우도 있었고 아예 닭 육수를 넣어 음식처럼 즐기기도 했다. 닭곰탕 맛 푸딩이라니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당시에는 디저트와 본식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으니 그리 이상한 것 도 아니었을 것이다. 참고로 코스로 분화된 유럽의 식탁 예절은 러시아에서 후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블렁멍제의 탄생 이후 이 디저트는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다. 미국의 소설 <작은 아씨들>을 보면 마치 가 사람들이 블렁멍제를 주황색 제라늄 꽃을 둘러서 내놓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시에서도 블렁멍제를 먹는 사람들이 묘사되는데 그 또한 블렁멍제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디저트들은 식탁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크렘 샹티이는 여전히 디저트계의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크림에 설탕을 조금 섞고 휘핑만 하면 만들어지는 이 생크림은 그 하얗고 순수한 모습만큼이나 지금도 파티시에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있다. 수많은 디저트들의 밑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크렘 샹티이가 프랑수아 베텔이 만든 것이라고 믿지만 이는 확실치 않다. 크렘 샹티이가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784년 La baronne Marie Féodorovna 백작이 처음으로 언급한 것으로 그가 활동한 연대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샹티이 지방에서도 크렘 푸에떼crèmes fouettées(설탕이 없이 휘핑한 크림)가 16세기 캐서린 드 메디치의 이탈리아 궁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사실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베텔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후에 덧붙여진 일화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 크림에 누가 처음으로 설탕을 넣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실수로 우유를 부어 탄생한 가나슈처럼 어떤 요리사가 실수로 설탕을 넣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크림의 역사는 이어진다. 우유술은 실러버브가 되고 실러버브는 에그노그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블렁 멍제는 프랑스 제과의 기초인 크렘 파티시에, 크렘 앙글레즈, 그리고 다른 수많은 푸딩들이 되었다. 크렘 샹티이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 생크림은 버터와 섞어서 크렘 무슬린이 되고, 크렘 파티시에와 섞여 크렘 디플로마트가 된다. 나열하려면 끝이 없다.
크림을 맛본다는 것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크림의 역사를 맛보는 것이다. 휘퍼와 믹서가 없던 시절. 셰프들은 크림을 휘핑하기 위해 나뭇가지 묶음을 사용했는데 향을 입히기 위해 복숭아나무를 쓴다던지, 귤 잎을 나뭇가지에 달았다고 한다. 이런 레시피는 후대의 셰프에게 전해지고 전해져서 지금 우리가 먹는 디저트의 뼈대가 되었다. 크림은 입에서 가볍게 사라지지만 분명 거기에 녹아있는 역사와 노력의 밀도는 무겁다.
+중세 유럽인들은 블렁멍제가 환자에게 좋은 음식이라고 믿었다. 우리가 먹는 죽처럼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었는 데다가 귀했던 설탕까지 들어갔으니 의학적 효과가 있다고 믿었어도 놀랍지 않다. 설탕의 실체가 밝혀지고 나서 더 이상 사람들은 이런 푸딩을 약으로 먹진 않지만, 중세인들이 하나 맞았던 것이 있다. 크림은 몸을 낫지 못하게 하더라도 마음은 낫게 해 준다는 것.
+학교에서 알자스식 사과 타르트를 한 날 내가 아몬드 크림을 타르트에 붓고 있자 셰프가 내게 말했다. 너 크림으로 잔치할 거니? 응. 나는 크림을 정말 좋아해. 셰프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진, 글 참조 출처
https://leserialpatissteur.com/karamel-paris-un-kara-univers-karrement-bon/patisseries/02/2017https://agriculture.gouv.fr/chantilly-sur-les-traces-dune-creme-fouettee-mondialement-con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