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나.
나는 우리 아빠가 다른 아빠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큰 감흥이 없었다. 시작하자마자 별다른 얘기인데, 주변에선 종종 나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견해를 꺼낸다. 그런 그들의 발언에 나는 또 큰 감흥이 없다. 그냥 슬쩍 웃어 넘긴다. 직접적으로 내 생각을 물어본다면 흔쾌히 들려주겠지만 그들은 내 생각을 따로 묻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무슨 생각해?"도 아니고 "로사는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라니.
나는 그런 말을 듣는 부류의 사람이지, 그런 말을 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웃을 뿐이다. 그러면 '것 봐. 역시 모르겠잖아.'라는 그들의 신난 혼잣말로 그 짧은 주제가 끝이 나게 된다.
그런 나도 단 한 사람,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어린 시절의 나. 작고 듬직하고 때론 쿱쿱한 옷장에 숨어있던 소녀다. 나는 어딜 가든 아빠 옆에 꼭 붙어 있었다. 가족끼리 거실에 모여 낮잠을 잘 때도, 가족 모임에서 언니와 동생이 또래 친구들과 뛰어 다닐 때도 나는 아빠 옆이었다.
물론 아빠가 잘해주니까 좋기도 했지만, 그가 약자라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도 은근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번에도 언급했듯 아빠는 종종 타인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 있다. 유머러스하지만 넉살이 좋은 편은 아닌 아빠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도움을 편하게 요청하지 않았다. 나는 혹시라도 그가 난처한 상황에 처해서 사람들의 웃음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일이 없길 바랐다. 그래서 아빠 옆에서 꼭 붙어 아빠가 요청을 하기도 전에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해결해주려고 했다. 그는 작디 작은 내가 당신의 다리라고 하며 기꺼이 그 자리를 내어주셨다.
그리고 얼마 전, 어른 티가 조금씩 나기 시작하는 나에게 아빠는 당신의 전부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워낙 잘 하니까 아빠가 기분 좋은 마음에 애교삼아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뱉은 아빠도, 듣는 나도 순간 허공으로 떠오른 그 단어의 묵직함을 깊게 느꼈다.
"아빠의 전부."
그날, 허공으로 툭 튀어오른 뒤 사라지지 않는 그 단어를 종종 바라본다. 당시에는 뒤늦게 맘껏 표현하는 작은 딸에 대한 의존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어린 딸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몇 가지 이유로 감췄어야 했을 거다. 첫 번째는 내가 정말 어렸고 연약해서 일반적으로는 의존할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 다음으로는 성장기의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책임감에 가려졌을 것이다. 삼남매 중 유독 내가 아빠의 옆을 지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표현해주신 것에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어쩐지 단어를 곱씹을수록 내 마음이 든든하다. 그건 물론 아빠의 애정과 감사의 표현이었겠지만, 어쩐지 더불어 응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고민과 행보를 그의 전심을 다해서 믿어줄 수 있다는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다. 지금처럼 약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거두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말라고. 그가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