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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에이스 Jul 28. 2022

도전 앞에서 걱정보다는 기대를

- 으라차차 응원한다!


 비도 오고 적당히 어둡고 적당하게 음침한 것이 머리 맞대고 술 한잔 하기 좋은 날이었다. J와 E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나는 짧은 시간 함께한 사람들이긴 하나 충분히 일당들이라고 할 만한 사이였다. 1주 전, E가 그날의 회동을 제안하였고 비 오는 오늘 어깨춤을 추며 회사 문을 나섰다. 그중 J는 데이터 엔지니어로 커리어 전환을 고려 중인 BA인데 보통 그런 사람들은 뭐랄까 너드 같이 약간 묘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J는 충만한 감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에 충실한 편인 동시에 상당히 논리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이다. 어쨌거나 같은 직군의 사람들과 이유는 다르지만 역시 묘한 구석이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E는 아주 똘똘하게 보이고 실제로도 그러한데 방심하는 순간 간 별 것 아닌 실수를 난사할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굳이 연배의 순서를 따지자면 나, J 그리고 E이다.


 실컷 내리는 비는 그저 우리의 술자리를 거들뿐, 결코 우리가 멈추어야 하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1차에서는 그간 그대 때문에 내가 버틸 수 있었다는 식의 공치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얼굴에 안 하던 금칠을 하면서 비교적 따뜻한 시간을 가졌더랬다. 하지만 우리가 늘 그렇지. 우리가 늘 보던 그들이고 우리야 말로 그 밥에 그 나물이고 기승전에 이어 온갖 것에 대한 성토의 시간을 가졌다. 아시겠지만 회사원들에게 불특정 다수에 대한 또는 조직에 대한 성토는 또 하루를 살게 하는 힘이 되니 혹시 불편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바이오.

 

찌질이들의 즐거운 한때

※ 2차의 Topic은 아래와 같다. (찌질이들의 대화이니 감안할 것)

1. 6개월 간의 새로운 시도에서 당신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아름다운 내용)

2. 그런데 참 이 회사는 알 수가 없다. 소는 누가 기르는 것인가? 

3. 이 회사의 과거 1년 혹은 2년 짧은 사람은 6개월 간 어떠셨나요. 후회하지 않습니까?

4. 그래도 다시 그 순간이라면 이곳으로 오실 것인가요?


 앞서 말했지만 대부분 투정의 대화들이었지만, 그래도 5번에 이르러서는 비록 현재의 고난으로 미처 인지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마음 저편에서 우리를 버티게 하고 도전하게 했던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E를 제외하고 J와 나는 그리고 한 명이 더 있었는데 대략 12년에서 16년가량의 경력을 갖고 이직한 사람들이었다. 셋은 역사가 오래된 대기업에서 그리고 나는 역사가 오래된 외국계 기업에서 이직해서 역사가 짧고 여러모로 특이한 현재의 회사로 오게 된 것이다. 그 변화는 참 큰 것이다. 구성원 간의 관계성이나 팀 간의 업무 문화가 다른 것은 당연했고 데이터를 획득하는 방법 자체가 기존의 회사와는 차이점이 많았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내고 이제 조금 회사가 어떤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탓일까? 어려운 점과 힘든 점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커져가는 만큼 한편으로는 도전 자체로 인한 만족감, 끊임없이 주어지는 목표와 정당한 요구 조건들로부터 얻게 되는 강한 동기 등을 잠시 잊고 있었다. 

 

J 왈: "나는 XX 업계의 편향된 데이터를 보다가 좀 더 대규모의 다양한 고객의 요구 조건이 녹아 있는 데이터를 보고 분석에 대한 어쩌고 저쩌고를 하기 위해 도전했습니다. 지금 비록 힘든 것 같지만 아마 그건 눈앞의 괴로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 도전할 것 같아요."

 나 왈: "나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업무 내용 또는 새로운 변화가 적은 기업의 환경을 벗어나서 다양한 도전 과제와 배움의 세계로 다시 한번 몰아넣고 싶었는데, 해도 해도 너무 하긴 하다. 하하 그래도 마찬가지로 다시 지원했을 것 같다.' 

.

.

.

"야 근데 정말 다시 생각해도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이직을 하게 되었을까, 제 얘기이지만 저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다. 나는 잠시 돌았던 것이다. 


 26살의 나는 대륙의 남쪽 광저우 근방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더랬다. 대학 4학년 재학 중 취업에 성공해서 해외에서 근무도 하게 되었으니 그리 나쁘지 많은 않았다. 적은 돈이지만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여겨질 수 있는 돈을 받고 있었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은 부수적인 플러스 요인이었다. 그런데 6개월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갑자기 그만뒀다. 인정한다. 쉽지는 않았다. 중국어와 한자의 장벽은 영어의 그것에 비할바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갑자기 그만둘 일은 아니었다. 약간의 미화를 덧붙이자면 아래와 같은 의식의 흐름이 나를 퇴사로 이끌었다.

 짧은 글을 읽었다. 샘 월튼의 글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략의 내용은 이와 같다. 누군가 또는 사회가 관습적으로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을 깨지 않는다면, 당신의 세상은 전혀 달라질 것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 그만두자. 그만두고 넓은 세상만큼이나 비좁은 나의 시야를 나의 경험을 좀 더 넓혀보자.' 그날 그만두겠노라 회사에 말하고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렇게 멋지게 귀국하면 좋았겠으나, 동료들과 끝까지 놀다가 비행기도 놓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해서 며칠을 더 놀다가 정말 볼품없이 그러나 파격적인 퇴사를 완료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어학 연수원도 등록하지 않고 과감하게 필리핀에서의 3개월 여행 그리고 토론토에서의 어학연수를 위해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런 또라이 행각 덕분에 지금의 아내도 만나게 되었고 -글을 쓰면서 다시 놀랐다. 정말 그때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는 아내와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 (깨달음의 의미는 과연...)- 인생에 두 번 다시없을 아름답고 즐거운 1년의 여행을 할 수 있었고, 그다음 2번째 회사에도 취업할 수 있었다. 

 위의 제목에 걸려있는 사진이 당시 토론토에 막 도착해서 찍었던 사진이다. 사표를 던지고 잠시 필리핀에서 체류하면서 들떴던 마음을 한 번에 식혀줄 만큼 차가운 풍경이 아닌가? 내 마음에 찬바람이 불었고 도시가 나를 거부하는 것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미래가 갑자기 잿빛으로 바뀌어 버렸던 순간이었다. 그래도 용기를 좀 냈고 캐나다 중부와 동부, 미국 뉴욕부터 저 아래 워싱턴 DC까지 여행하며 새로운 세상과 문화를 접하면서 충만한 시간으로 만들어 가고자 노력했다. 지금은 결혼해서 함께하고 있는 아내와 긴 시간을 보내었고 그 덕에 삼 년 후 결혼도 할 수 있었으니 내가 맞닥뜨렸던 토론토는 첫인상처럼 차갑지 않은 기회의 땅이었나 보다.

오타와 여행 중 한컷 - 이렇게 아름답고 푸른 곳이었음-

 늘 걱정보다는 기대로 살아야 한다. 내가 과연 다시 취직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사로잡히지도 않았고 노는 데까지 놀다가 한국 가서 화끈하게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지도 않았다. 적당한 걱정과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적절한 자유와 즐거움으로 1년을 채우려고 했고,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걱정과 불안에 떨기보다는 행동으로 그것들을 해소하려고 했다. 그저 작은 시도들, 예를 들면 이력서를 채워보거나 첫회사와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는 등의 행위 만으로도 많은 걱정을 기대로 전환할 수 있었다. 걱정보다는 기대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자.


  그리고 대략 17년 정도에 다다른 시점에서 나는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이직을 하게 되는데 이게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두 커리어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감이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맨날 짜장면을 만들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배달 오토바이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는 것과 비슷한 변화라고 할까? 나만 역량이 부족해 보였고 나 빼고는 모두 전문가에 소위 에이스 같이 보이는 시기가 있었다. 이를 메꾸기 위해서 아침부터 새벽 세시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재택근무를 무슨 고시 공부하듯이 했다. 그런데 이게 또 되더라. 잘 어우러지고 살게 되고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만두게 될 줄 알았지만 그 도전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으니 나름 성공적이라고 할만하다. 이제 그 조직 안에서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 본다. 그날 그 술자리에서 다시 도전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 그 순간에 내가 가졌던 목적과 도전 그 자체가 주는 희열을 잠깐 잊었음을 깨달았다. 무시하지 마시라, 별것 아닌 월급쟁이의 그것이지만 그것대로 우리에게는 큰 의미였다. 걱정, 불만과 한탄보다는 내일을 준비하고 작은 것 하나라도 지금 바로 시작하는 것이 내 인생을 충만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길이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먹어본다.
 만만하게 생각하자. 내가 힘든 것은 그들도 힘든 일이다. 저들이 하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뇌면서 걱정보다는 기대감을 더 크게 만들어보자. 인생에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일들은 기대감으로 도전하게 되는 우리의 성의를 대부분 받아주더라.


 아는 친구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과감한 도전으로 금전적인 손해를 보기도 했고 새롭게 경력을 이어나가려고 하는데 당연히 쉽지 않아서 외로운 도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외롭다고 하고 과거의 도전이 너무 후회도 되고 무서워서 어쩔 때는 잠도 안 온다고 하더라. 나의 도전과 내가 경험했던 공백기가 그 친구의 그것만큼 힘들었던 것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만하게 생각해보자. 어려워도 이 순간에도 제법 많은 숫자의 40대가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기다림의 문제일 뿐 결국 너에게도 이것들이 해결되는 또는 극복되는 시간이 올 것이니까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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