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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에이스 Aug 12. 2022

파인 땡큐 엔드 유?

무식한데 용감하지 못한 죄!

 제가 이 짧은 사십 몇 년을 살면서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볼살이 푸들거릴 정도로 떨리던 순간이 몇 번 있더랬지요. 가장 많은 땀과 푸들거림을 선사했던 몇 가지 사건을 한번 예를 들어보면 이렇답니다.

 첫 번째는 2005년에서 2006년의 어느 즈음에 구매부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잔칫날 같은 그런 날들이 있는데 발주를 하는 날이 바로 그날입니다. 한 달 내내 디자인 패턴을 테스트하고 자재 샘플을 개발하고 어느 회사가 좋은지 테스트를 하다가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주문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옳다구나 하고 생산을 위한 자재 물량을 뽑아내고 협력 업체에 단가와 물량이 당당하게 찍힌 발주서를 보내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에는 직접 만나서 드리는 일이 일반적이었으나 급한 경우에는 Fax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죠. 발주서를 바꿔 보낸 것입니다. 그것도 경쟁 업체 간에. 사회 초년생이던 그 시절의 그 실수로 정말 머리로 보신각 종을 후려친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지요.

 두 번째는 두 번째 직장에서의 일이었습니다. 기분 좋게 차를 렌트해서 워크샵을 가자고 룰루랄라 떠나는 날이었고 그 렌터카를 픽업해서 회사로 가야 하는 그런 막중한 책임을 가진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27살이었고 장롱 면허증을 보유 중인 꺼벙한 저였죠. 렌터카는 커다란 차였고 회사 뒤편의 언덕배기에서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길에 그만 화단에 차량의 우측을 그대로 긁어버렸습니다. 저는 이직한 지 약 1주일,,, 사람 구실도 못하던 때였습니다.

 고만 고만한 몇 가지 일들이 약간의 푸들거림을 유발할 수는 있었지만 언급할 만한 가치는 없는 것 같고요. 그리고 마지막의 한 가지, 가장 종종 가장 많이 푸들거림과 식은땀을 선사한 문장과 단어는 아래와 같습니다.

                              

                                   Do you speak English? / Native / Bilingual


 아 그렇습니다. 영어, 영어 그리고 영어, 그것은 참말로 큰 시련이었고 많은 떨림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그 두려움의 절정은 렌터카 사건이 있었던 두 번째 직장에서 있었습니다. 음 사실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어쨌건 그 회사는 외국계 회사였고 영어로 인한 시련을 마주할 것이란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돈 쓰는 영어는 쉽지만 버는 영어는 어렵습니다. 하하, 어느 날 부서장님이 휴가를 간다고 말하고 사장님과 리더들의 정례 미팅에 저를 꽂아버렸습니다. 이제 파릇파릇한 대리였을 때입니다. 말 그대로 저는 부서장의 대리로 가야 했던 것입니다. 각 부서별 보고가 진행되는데 PPT를 한판 뜨고 주말 내내 스크립트를 써서 달달 외웠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왔습니다. 


 퍼스트 오브 얼 어쩌고 저쩌고 / 엔 넥스트 프라이어티 구시렁구시렁 / 미주알 고주엘 대츠얼 땡큐 / 그리고 원래 질문 있냐고 해야 하는데 바로 아 누구 나와서 이어서 말씀하세요...


 그런데 사장님이 외쳤습니다. 아직 궁금한 게 많다고...

 이런,, 둠쓰데이,,, 오늘은 굳다이 투다이인가,,,


 어찌어찌 대답하고 영어가 안되면 소리 지르면서 대답하니 이 양반이 대충 끄덕입니다. 아마 그랬을 겁니다. '이 놈 뭐지, 왜 내가 물어보는데 소리 지르면서 대답하지.'

 저도 미쳤나 봅니다. 마지막 질문에 최후의 답변을 한 이후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냉수 한잔 들이켜고 다시 들어가니, 사장님 이하 임원분들의 반응이 어떤 분은 슬며시 비웃고 어떤 분은 대놓고 놀립니다. "이야 너 회사 생활 줏대 있게 하기로 결정했구나~." 그렇습니다. 그렇게 끝났고 사장님은 저를 아주 찍었습니다. 그냥 말 그대로 찍어서 그날 이후로 지나갈 때마다 놀리고 통역이 필요하면 갑자기 저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럼 저는 매번 둠쓰데이. 이게 벌써 약 10년 전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어렸고 부끄러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토익 시험을 쳐본 적도 없는 나를 뽑은 것도 그대들이고 국문과 나온 나를 뽑은 것도 그대들인데 내가 꿀릴 것이 무어냐!" 이렇게 외쳐댔던 것이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했고 그래서 배우고 성장해 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날부터 모른다는 것을 고백하기가 어려워졌고 가르쳐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졌고 누군가를 붙들고 배워서 무엇을 하기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나 정도 연차에 이 정도 경력이 쌓여서 이런 것도 모르는가라고 생각할까 봐 또는 이것도 모르다니 나이 든 아저씨가 맞다고 생각하고 비웃을까 봐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뒤쳐지기도 하고 모르는 걸 아는 척 가만히 있거나 앞에서 나서다가 나 자신이 어떤 업무의 병목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모르는 주제에 명확하게 현상을 알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 하나님은 왜 우리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셨을까요? 글로 보면 편안해 보이시겠지만 저는 지난 어느 밤에 이런 제 모습에 심각하게 힘들었고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시 결심했습니다. 내 무릎은 낙타 무릎이 되기로. 누구에게나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스스로 숙이고 때로는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온 사방을 헤집는 그런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어쩌면 진리인 듯합니다. 무식하면 용감해야 합니다. 그래서 배우고 청하고 스스로를 낮추고 들이대야 하는 것 같네요. 지금도 뭐하나를 물어봐야 하는데 이분이 너무 바쁩니다. 그래서 답변도 잘 없으신 분이고 어쩐지 꺼려지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한번 종을 울려보려고 합니다.


 뭘 해야 하는데 몰라서 걱정되고 누군가를 청해야 할 때는 왕도가 없습니다. 그냥 용감하게 들이대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함께 질러보시지요. 시간과 경험의 부족으로 모르는 것이지 어떤 누군가보다 머리가 나빠서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물어보면 되는 겁니다. '머리가 나쁜'이라는 부분은 적어 놓고도 약간 주저하게 되는 표현이긴 합니다.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할 때가 간혹 있었던 것 같기도.

 사족을 달자면 적당히 용감해야 합니다. 저는 과거 어느 날 첫 직장을 그만두고 영어를 배우겠다고 북미로 날아가 놓고선 막상 정신 차리고 보니 제가 있는 곳에는 아래와 같은 글자들이 있었습니다.

몬트리올, 영어 잘 못하는 동네임

 저 도로 표지판을 보면 영어가 아닙니다. 불란서 말이지요. 너무 용감해서 영어를 뒤로하고 버스 타고 동부 캐나다를 실컷 여행하고 돌아왔답니다. 그리곤 다시 미국 동부를 여행하고. 8개월을 기약하고 떠난 어학연수 기간에 막상 어학원을 다닌 것은 3 달이었습니다. 너무 나갔던 것이지요. 어쨌든 그래도 잘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감하면 본전은 하는 것 같네요. 셰익스피어 님이 그러셨답니다. 겁쟁이는 여러 번 죽지만 용기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번뿐이라고. 그러니까 우리 모두 돈 비 어프레이드, 유어 잉글리시 베리 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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