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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에이스 Aug 28. 2022

레토르트 독후감_ㅇ ㅓ ㄹ ㅣ ㄴ 오 ㅏ ㅇㅈ ㅏ

부제-세월이 가면

 살다 보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아니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많이 있다. 또는 "그때는 하얀 고양이였고 지금은 검은 고양이이다."인 경우도 있다. 아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경험이 적은 것인지 나는 맞고 틀리고 표현보다는 마지막이 더 와닿는다.

 그렇게 예전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시간이 흘러 내가 어른이 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나한테 그런 것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너무 부끄러운 사례 또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일들을 제외하고 보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다.

 - 63 빌딩 수족관_1988년 즈음
 충청도 꿈 많은 소년이 상경해서 처음 본 63 빌딩은 황금 빌딩으로 보였다. 진짜 황금인 줄 알았다. 그 안에는 수족관이 있었다. 인생 처음 돌고래도 봤었고 무엇보다 그릇에 그렇게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충청북도 영동 시골로 돌아간 꼬맹이는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열흘은 했던 것 같다.

  - 돈가스와 목욕탕_역시 1988년 즈음
 충북 영동의 꼬맹이는 목욕탕에 가기를 싫어했다. 한번 들어가면 푹 익어 나올 때까지 벗어나기 힘들었던 공간이었다. 다만 어떤 보상이 있을 때 기꺼이 따라나섰는데 그게 돈가스였다. 시장터 옆의 어느 가게에서 돈가스를 팔았는데, 일 인분을 동생과 둘이 나눠 먹었음에도 충분히 배가 불렀다. 돈가스는 영혼과 육신의 안식처였다. 그 힘으로 나는 목욕탕의 높은 온도와 세신의 고통을 견딜 수 있었다.  

 - 소주_1998년

 대학 신입생 OT에서 처음 마시게 되었다. 소주라는 투명한 액체를. 빨간 뚜껑 두꺼비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그 쓴 술, 곧 잘 마신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이걸 왜 마셔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모였으니 마셨을 뿐이었다. MT를 가면 새벽 한 시 이후에 제공될 맥주를 먹기 위해 버텼다.

그런데 바뀌었다.


- 63 빌딩 수족관_2022년

 충청도 소년은 서울 사람이 되었고 그 사이 우리나라에는 으리으리한 아쿠아리움이 생겼고 수족관이라는 말은 구시대의 잔재가 되었다. 30년도 더 지나서 방문한 63 빌딩 수족관 또한 이름이 바뀌었으나, 내 기억의 화려함, 거대함 어쩌면 신세계의 경외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은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었다. 

- 돈가스와 목욕탕_2010년 즈음

 동네의 유명 돈가스 집이 세 덩이 이상의 돈가스를 제공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정도는 먹어줘야 성이 찰 정도로 커져버렸다. 좋아하던 돈가스는 더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목욕탕의 시원함을 알게 되었다.

- 소주_2006년 중국 동관에서

 첫 직장에서 주재원으로 나갔던 곳에서 6개월 내내 고량주와 맥주만 마시다가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입천장과 혓바닥 사이에서 느껴지던 끈적함은 우족탕의 그 끈적함 같았고 혀뿌리 뒤부터 뱃속까지 진하게 훑어가며 내려갔다. 그때 느꼈다. 소주가 맛이 있구나.

 그리고 그때랑 지금이랑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새로운 하나가 생겼다.


                                                                "어린 왕자"

 다시 읽어보시길 감히 권하고 싶다. 새로운 철학적 의미를 발견했다거나 시대적 메시지를 재발견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는 아니다. 내가 읽은 그 책이 맞았던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책의 내용은 그대로이고 변한 것은 여러 경험과 의도된 또는 의도되지 않은 학습 등으로 훈련된 나 자신이다. 이 책은 그때의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위해 준비된 책이었다. 살아오며 맺게 된 관계와 나에게 소중한 누군가 또는 무엇들 그리고 그런 것들의 상실과 소유의 경험으로 상처받고 단련된 나의 일기를 읽는 듯하다. 

나의 장미와 여우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잊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마 곧 나는 장미가 있었다는 것도 잊을 뻔했고 뭐가 중요한지도 모를 그런 관계를 여우인 줄 알 뻔했다. 점차 잊어가는 과정 가운데에서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었다. 나도 모르게 권위적인 왕, 의미 없는 관계로부터 인정받길 원하는 허영 쟁이, 영화 "모던 타임즈"를 떠오르게 하는 가로등지기 아니면 수많은 장미꽃으로 가득 찬 정원을 갖고도 의미와 관계를 찾지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관계와 관계가 부여하는 소중한 의미를 고민하고 삶 가운데에서 나의 장미와 여우에 대해 되돌아보고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해야 하는 온 것 같다. 내가 열중하고 있었던 일은 왕과 허영 쟁이 또는 가로등지기가 하던 너무 중요한 일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어서 그만둬야 하겠다. 

 관계성과 관계성으로 인해 나에게만은 소중한 장미에게 집중할 때 강남 도로 한가운데 서 있더라도 장미가 있을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외롭지 않을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얼마짜리 옷을 입고 얼마나 자주 필드에서 골프를 칠 수 있다거나 아니면 대출로 누더기진 집과 자동차가 얼마나 중요한가? 마지막에 어린 왕자가 자기의 별로 돌아갈 것을 예감하면서 -이 세상의 규칙으로는 죽음을 통해 별로 돌아간다.- 작가에게 건넨 몇 마디를 적어보련다.


"하지만 그건 벗어버린 낡은 껍데기 같은 거야. 낡은 껍데기를 두고 슬퍼할 건 없어." 

"정말 재미있겠다! 아저씨는 오억 개의 방울을 갖고, 난 오억 개의 우물을 갖게 되는 거지......."

                                                                                                - 어린 왕자 중에서-

 

 나의 여우, 장미. 방울 또는 우물을 그리워하고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매일을 살아가야겠다. 


-레토르트 독후감 1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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