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한 끼 하고 다시 출발
브런치가 가끔 좋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토요일 아침입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휴일의 여유를 즐기자고 말하며 전날 남은 음식으로 대충 한 끼 때우고 뒹굴거리다 점심 어떻게 할까 커피나 한잔할까 고민 좀 하겠지요. 그러다가 쇼핑몰이나 마트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무겁게 장을 보고 귀가를 합니다. 이럴 때 보통 장본 물품에는 대량의 초밥이 있습니다. 초밥을 먹으면서 맥주 한잔하고 즐거운 유튜브 영상을 보고 마무리하는 토요일,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전형적인 하루였다. 전형적인 출퇴근에 이어서 더할 나위 없이 전형적인 주말이었다. 그래서 조금 힘이 빠지기도 하고 잠을 자려고 하는 무렵에는 '아, 이제 곧 일요일, 주말 다 갔구나~' 이런 탄식을 내뱉기도 합니다.
저는 아내랑 둘이 삽니다. 친구처럼 사는 중인데 이 친구는 저의 이런 스트레스 양상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곧잘 이런 추천을 합니다. 산에 가거나 그냥 커피 마시며 멍 때리지 말고 공원을 산책하고 햇살을 즐기자는 둥, 아니면 하릴없이 사대문 안에 가서 돌아다니다가 밥이라도 먹자는 제안을 합니다. 누구는 그게 그거 아냐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저에게는 전형적인 주말을 바꿔주는 그런 좋은 계기가 되더라고요. 참 신기했습니다. 뭐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집 근방에 공원이 하나 있고 그 앞에는 별다방이 있습니다. 저는 늘 굳이 차를 끌고 길가에 주차를 한 뒤 별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잡지를 좀 보다가 그대로 차를 몰고 집으로 옵니다. 이건 전형적인 제 주말이고 그 이후의 전개는 늘 비슷합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집에서 주문을 해서 티브이를 틀어놓고 먹다가 자는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날은 따릉이를 타고 공원을 돌고 중간에 세워두고 공원 벤치에서 서로 얼굴을 보며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하다가 별다방을 갑니다. 물론 그 이후의 전개는 비슷하지만 이 작은 차이만으로도 그날 하루는 뭔가 예배를 드리고 난 후처럼 충만함을 느낍니다.
브런치를 합니다. 이것도 그런 사소하지만 중요한 변주 중 하나입니다. 상대적인 것이지만 저에게 왜 그런 의미가 있는지 말씀을 드립니다. 우선, 게으를 수밖에 없는 토요일 오전 10시에 채비를 합니다. 하루를 늘어지겠다는 각오는 이 순간 버려야 합니다. 주말에 햇살 늘어지는 곳에서 볼품없는 남편이랑 별것 아닌 풀과 소시지와 빵 따위를 먹는 것에 크게 기분이 고조된 아내의 심기를 유지하려면, 브런치를 나가는 준비를 하는 순간 이미 저는 부지런한 하루의 각오를 다집니다. 둘째, 별다방에서 처럼 멍하니 잡지를 보지 않습니다. 늘 반복되는 별다방에서의 커피 한잔 하는 시간은 잡지를 보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도 아내분이 납득을 해주십니다. 하지만 브런치는 아닙니다. 날씨 좋은 토요일, 둘이 산뜻하게 브런치를 먹으러 왔는데 아내와 눈을 맞추지 않는다거나 자칫 답변이 좀 늦어지거나 대화에 소홀해지는 순간은 아내분이 납득하지 않습니다. 끝으로는 제 얘기를 진지하게 하게 됩니다. 대화를 하게 됩니다. 그냥 같은 공간에 있어서 주거나 받거니 하는 대화도 소중하지만, 자리 잡고 앉아서 어땠는지, 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래서 기분이 어떤지 등의 대화를 합니다. 혼자 잡지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것은 내가 맞닥뜨리기 싫은 주중의 삶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인데, 좀 귀찮고 피곤해도 때로는 입맛에 맞지 않아도 굳이 브런치를 하러 가서 아내와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겪었던 전형적인 하루와 전형적인 스트레스와 전형적인 걱정거리들이 곱게 포장되어서 저기 어느 한편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결혼한 지 이제 12년이 넘었으니 엄청 두근거리는 사이여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냥 굳이 브런치 하러 한번 거동을 하려다 보면, 본전 생각이 나서 시간에 충실하게 되고 그렇게 들어주고 내 얘기를 하다 보면 위와 같이 작지만 의미 있는 그런 감정을 느끼거나 감정 상태에 다다르게 됩니다. 힘이 납니다. 브런치 한번 하시지요.
제 생각에 브런치는 대략 이렇습니다. 아침 열 시에서 1시 사이에 먹는 것이며 장르는 불문입니다만 그래도 아내의 감성을 고려할 때 브런치라고 할 때 한식은 회피합니다. 한식 사랑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브런치 할까?라고 묻고서 청국장 집에 데려가는 상황을 의도하긴 싫다 정도로 받아들여주세요. 어쨌든 그렇게 나가서 단지 빵에 커피를 마셔도 브런치, 샐러드에 베이컨 따위가 있어도 브런치인데 주로 가는 지역이 있습니다. 차를 달려서 사대문 안에 갑니다. 요즘은 부암동에 꽂혔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에 사람도 비교적 적은 편이고, 가는데 시간은 좀 걸리지만 식사하고 커피 한잔 여유 있게 하기에 좋고 의외로 주차도 나쁘진 않습니다. 그래서 주말 아침에 부지런 떨고 달려가봅니다. 일주일 간 수다 떨 남편을 기다렸을 아내에게도 기쁨이고 일주일 간 열받거나 초조하거나 두 가지 상태로 일하다 온 남편으로서도 산속 카페에 아내분과 함께 가는 설렘이 오니 안 갈 이유가 없습니다. 토요일입니다. 오늘은 개인 정비를 위해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잠시 후 저녁을 먹으러 다시 부암동으로 달려가봐야겠습니다. 그래서 밥도 먹고 근처 카페로 옮겨서 커피 마시고 늦게 들어오렵니다. 브런치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