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뿌시기_사람의 속이 탄다?

급성 백혈병

by 내손내밥

사람의 속이 탈 수 있을까? 

‘속이 새까맣게 탔다’는 표현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사람의 속은 탈 수 있다.

그날 내 속이 타고 있다는 걸 나는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25년 11월 10일

누군가는 빼빼로를 사고 있던 날,

하나뿐인 내 딸 시아는 급성 백혈병 선고를 받았다.


말도 안된다. 진짜 말도 안된다.

만으로는 아직 19세인 네가 혈액암이라니...


시아는 정말 건강한 아이였다.

갑자기 속이 안 좋다며 하루 학교를 쉬겠다 했다. 다음날 아침엔 먹은 걸 다 토했다.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시아와 내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시아 배를 눌러보시며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셨다. 시아는 배는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럼 장염도 아니고 체한 것도 아닌데... 큰 병원에 가보세요."


"저 오늘 학교 꼭 가야하는데요.

그냥 수액 맞고 좀 누워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요. 수액 맞는 김에 피검사 해보죠."


나는 한 시간 후에 데리러 온다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체한 거겠지? 별일 아닐거야...


한 시간도 채 안되서 시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병원에서 빨리 오래.”


걱정스러운 마음을 누르며 서둘러 병원에 들어섰다. 간호사가 성급하게 나를 원장님께 안내했다.

“피검사 결과 간수치가 너무 높아요. 간염일 수도 있고 다른 병일 수도 있어요. 빨리 큰 병원에 가세요. 어떤 병일지 모르니 모든 과가 다 있는 곳으로 가셔야 해요. 세브란스나 강북삼성이나 은평성모로 가세요.”


간염이라면 입원해야 할 수도 있으니 집에서 너무 멀지 않고 시설도 나쁘지 않은 곳으로 가는게 좋겠다.

시아도 간염 정도로 생각했다.

“고모도 전에 간염 걸려서 2주 입원했었어.”


“입원 해야 하면 난 은평 성모로 가고 싶어.”

이때 까지만 해도 우리는 시설이 좋고 밥이 맛있는 병원을 찾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시아의 의견을 반영해서 은평성모 응급실로 갔다.

우리는 대기실에서 30분 정도 기다린 후 초진을 받았다. 내과에서 써 준 의뢰서를 보며 이것저것 묻는다.

"피멍 든 거 있나요?

점상 출혈은요? (그건 뭐죠?)

코피 난 적은요? 양치하다 피 난 적은요?"


시아는 자기 몸을 들여다 본다.

"아뇨 없는데요..."


‘그런 걸 왜 묻지?’

곧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백혈병 환자의 증상은 잦은 출혈과 멍이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간호사가 우리를 부른다. 응급실 맨 안쪽으로 들어가라며 자리를 알려줬다.

시아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응급실 간 적도 입원한 적도 없었다. 시아의 가장 큰 병은 비염이었다.


누워있는 동안 수차례 피를 뺐고 씨티를 찍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은평성모응급실.jpg


그리고 기다림 기다림 또 기다림.

혈액내과 주치의의 오더가 내려오길 기다렸는데 결국 만나지 못했다.


“언제 가도 되요? 저 할 거 많은데요.”

시아는 학교 과제 생각에 조급해 했다.


"오늘은 일단 퇴원하시죠. 내일 오전에 혈액내과와 소화기 내과 외래를 잡아드릴게요."

간호사일까? 아무튼 데스크에 앉아 있던 분이 퇴원약을 주시며 퇴원해도 좋다고 했다.

"별일 아닌가봐. 입원 안 해도 되나보다."


응급실에 들어간 시간은 11시였고 나온 시간은 5시였다. 나는 시아를 부축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시아는 구역질이 난다며 이후로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다음날 혈액내과 외래는 10시 반이었고 소화기 내과는 두시였다.

9시 반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니 또 채혈하고 오란다. 워낙 마른 아인인데다 몇일간 식사도 못했는데 무슨 피를 자꾸 빼라는 건지. 어제만해도 피를 한 바가지를 뺐다. 양팔이 채혈로 인해서 멍투성이였다.


시아가 너무 어지럽다고 하니 누워서 채혈을 하란다. 시아는 채혈 후에 외래 시간까지 채혈실에 누워 있었다. 은평 성모는 상급병원처럼 붐비지 않아서 누워 있을 여유가 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시아는 평소에 발걸음이 빠르다. 시아가 걸으면 나는 경보로 걸었다. 하지만

이날은 시아와 이동할 때 옆구리에 팔을 끼고 달팽이처럼 움직여야만 했다.


10시 반, 외래를 보기 위해 혈액내과 진료실 앞에서 기다렸다. 대기실 창 뒤로 따뜻한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다. 시아의 이름이 불리고 시아와 나, 남편은 진료실로 들어섰다.


“어떻게 오게 됐어요?”

의사 선생님은 시아를 보고 뽀죡한 목소리로 묻는다.


“체한 줄 알고 내과에 갔는데 피검사 하더니... 큰 병원 가라고 했어요.”


“다른 증상은 없었나요?”


"기운이 없고 숨쉬기가 좀 힘들어요."


“형제 있어요?”


(‘갑자기 형제는 왜 묻는거지?’)

"아니요."


"외동이군요."


의사는 잠시의 멈칫함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피검사 수치상으로는 백혈병 같아요."


"네? 그게 무슨..."


"오늘 입원하세요. 골수 검사 해봐야 확실히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혈액 수치상으론 악성 혈액질병은 맞아요."


그 뒤로 무슨 말이 오갔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충격이고 시간의 멈춤.


그 때부터 내 속이 타 들어갔다.

뜨거운 불덩어리가 위장에 들어앉은 듯 했다.

속이 타 들어간다는 말은 은유가 아니었구나.

이럴 수 있구나.

내 속은 불 붙은 듯 활활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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