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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손내밥 Feb 06. 2024

라떼 타임

오늘의 라떼

 “주문하신 라떼 한 잔 나왔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오늘 라떼는 어떤 모습일까.

  석 달 전부터 매일 카페에 다니면서 나는 라떼에게 반했고 라떼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는 단 하루도 라떼를 마시지 않으면 안절부절이니 이쯤이면 라떼 중독이다.      

  카운터에서 나의 라떼를 받아든 순간 내 시선은 우유 거품에 꽂힌다. 내가 원하는 라떼의 우유 거품은 휘핑크림으로 만든 뚜껑처럼 컵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가 밀착되어 있어야 한다. 부글거리거나 찌그러진 거품이 아니다. 납작하게 가라앉은 거품은 더더욱 아니다. 


  커피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와 감사 기도를 한다. 두 손으로 따뜻한 머그잔을 감싸 쥐고 커피 향을 맡는다. 따뜻한 라떼는 카페에서 제공하는 머그에 마시는 것이 가장 맛있다. 텀블러를 가져와서 마시다가 텀블러를 깜빡 한 날이 있었다. 매장에서 제공하는 머그잔에 마셨더니 텀블러에 마시는 맛과 다른 진정한 커피의 맛이 났다. 생각해보니 카페에 있는 도톰한 머그는 커피에 최적화 되어있을 것 같다. 오직 커피를 담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닌가. 조금 무겁다는 단점은 있지만 커피를 보온하고 손을 데워주는 역할까지 해준다.(물론 겨울에 한해서) 그날 이후로 카페 머그잔에만 마신다. 


  고소한 커피 향이 벌렁이는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면 내 몸은 카페인을 섭취하고 싶은 기대감으로 춤을 춘다. 첫 한 모금을 홀짝 마신다.

  ‘아, 행복하다!’ 

  부드러운 우유 거품과 함께 쌉싸름한 커피가 입안으로 들어온다. 바로 넘기기가 아까워 입안에 잠시 머금다 삼킨다. 첫 모금의 커피는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온몸에 퍼진다. 한 모금씩 보태며 아직 덜 깬 감각들을 하나씩 깨운다. 줄어드는 라떼가 아까워서 아껴가며 홀짝인다. 나의 소확행을 만끽하는 시간이다.

  라떼를 마시는 동안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전화를 하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이어폰을 꽂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온전히 라떼의 맛에 집중한다. 

  이 소중한 라떼를 마시기 위해 나는 24시간을 기다렸다.     

  나에게 라떼타임이 이렇게 소중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아침마다 글을 쓰러 카페에 간다. 아침에 글을 쓰는 시간을 놓치면 낮에는 바빠져서 글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하루가 지난다. 

  나의 라떼 타임은 아침 8시, 글을 쓰기 위해 간 카페에서 이루어진다. 카페에 도착하면 노트북을 테이블에 올리고 전원을 켠다. 카운터에 가서 주문을 하고 돌아온다. 노트북을 열고 어제 쓴 글을 뒤적이고 있으면, 나의 라떼가 나온다. 

  처음엔 글을 쓰기 위한 장소가 필요해서 카페에 온 것이고 아메리카노가 싫어서 라떼를 주문했다. 

  카페에 머물기 위해 커피를 마셨는데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하루의 활력을 주었다. 커피를 마시니 각성이 되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고용량 비타민 보다 훨씬 나았다. 이제는 라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오는 건지 글을 쓰려고 오는 건지 헷갈린다.


  나는 하루에 한 잔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 이상 마시면 숙면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한잔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라떼타임이다. 내가 좋아하는 오전에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다.

  아침을 급하게 챙겨 먹고 빨리 라떼를 마시고 싶어서 카페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달려간다. 이쯤이면 중독이 확실하다.     

  그 라떼 타임을 즐기는 곳인 단골 카페는 집 근처 ‘파랑’ 카페다. 처음에 파랑 카페를 선택한 이유는 글을 쓸 장소로 적당해서였다. 나에겐 넓은 홀과 소파가 있는 곳이 필요했다. 이 카페는 집 근처 카페 중 가장 넓다. 알바생이 여러 명이고 자주 바뀌었다. 주인은 거의 보이지 않다가 저녁에 잠깐 나오니 눈치도 보이지 않는다. 베이커리 카페라 배가 고프면 빵을 사 먹을 수 있다. 글을 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처음에 라떼 맛은 중요치 않았다. 하지만 매일 라떼를 마시다 보니 날마다 맛이 달랐다. 어느 날은 그저 그렇고, 어느 날은 맛이 있고 어느 날은 더 맛이 있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우유 거품의 차이였다. 우유 거품의 양과 질에 따라 라떼의 맛이 달라졌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난 카페에서 완벽한 라떼를 먹고 나서 확실히 깨달았다. 그곳에서 대접같이 넓은 머그잔에 올라간 풍성한 우유 거품이 있는 라떼를 맛보았다. (심지어 라떼아트로 백조까지 그려줌) 지금까지 내가 먹은 라떼는 라떼가 아니란 걸 알았다. 그 카페가 우리 집 앞에 있었더라면…….     

  내 단골 ‘파랑’ 카페에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알바생이 자주 바뀌면서 만드는 사람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졌다. 하루는 우유 거품이 하나도 없던 날이 있었다. 다음 날은 우유 거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우유막이 둥둥 떠 있었다. 나는 알바생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옮길 카페가 없는 이상 이곳에 발길을 끊는다면 글을 쓸 곳이 없으니 나만 아쉬울 뿐이다. 집 주변 카페 여기저기에 가 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우유 거품을 만드는 곳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침마다 파랑 카페로 와서 걱정 반 설레 반으로 라떼를 받아든다. 


  라떼에 집착하게 되면서 아침에 마시는 라떼가 내 하루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중독 증상이 심해질수록 이건 아닌 거 같았다. 내 하루를 라떼에 걸고 싶지는 않다. (오늘 아침도 우유거품이 하나도 없는 라떼를 받아들고 시무룩해진 상태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도 커피를 배워야겠어. 내가 우유 거품을 만들 줄 안다면 요청할 수도 있고 더 잘 만드는 곳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

   지금 스케쥴로는 4월쯤이면 커피를 배울 수 있다. 내가 직접 라떼를 만들 날을 고대하면서 라떼가 나를 속일지라도 라떼 타임을 즐겨보겠다. 

   라떼 한 잔에 하루의 행복을 맡기는 사람이 아니라, 내 라떼는 내가 만들고, 내 행복은 내가 만드는 사람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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