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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와 이름

네가 빼앗은 건 카드지갑뿐이야 #2

by 최동민





올봄, 준비해오던 첫 책을 출간했습니다. 계약부터 출간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정말 나오기는 하는 거야?”라며 스스로에게 볼멘소리를 하곤 했었죠. 그런 소리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바람에 출간은 더 늦어지기만 했습니다. 사실 그때 전 불안했습니다. 평소의 낙천적 성격은 간데없이 최대한 안 좋은 방향의 시나리오만 자꾸 떠올랐죠. 물론 “최대한” 안 좋다고 해봐야 책이 나오지 않는 것 정도가 전부였고 세상에 있던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아직 없던 것이 여전히 없는 것이기에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조금 신경이 쓰일 뿐이죠.


다행히 책은 더 늦춰지지 않고 5월쯤에 나왔습니다. 서점에 풀리기 전, 저자에게 주는 증정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이사를 오기 전 주소로 택배가 가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책의 실물을 지인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처음 보게 되었고, 부랴부랴 이사 오기 전 집으로 달려가 20권이 든 택배 상자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0권의 책이 담긴 택배 상자는 꽤 무거웠습니다. (대략 6.84kg 정도 되었겠군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상자를 식탁에 내려놓고 커터칼을 들었습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주욱 그었을 테지만 혹시나 책이 상할까 두려워 최대한 섬세한 터치로 박스를 열었습니다.(막상 집필을 할 때는 왜 이렇게 섬세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들더군요) 박스 안에는 저희 첫 책이! 지인의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본 바로 그 책이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당장 한 권을 꺼내 표지의 질감을 느끼고 한 장, 한 장 넘겨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첫 사인을 남기고 나름의 증정식을 거행했죠. 이후 몇 번의 라디오 출연과 홍보 활동을 했지만 사실상 저의 첫 출산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예행연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런 경험을 하고 다섯 달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현이 도착했죠. 영특한 이현은 주소를 틀려 헤매지도 않았고, 다른 어떤 이보다 앞서 당신과 내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생각보단 크지 않았고, 피부는 태아 기름막이 있었음에도 더없이 깨끗해 보였죠. 얼굴은 조금 부어있었고 눈은 자신의 수고를 알리고 싶다는 듯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간호사가 조심스레 건네준 이현을 품에 안았습니다. 사실 상상 속 이 순간에서 저는 언제나 버벅거리곤 했습니다. 팔을 어떻게 해야 하지? 안을 때 힘을 주어야 할까? 아니면 왼손은 거들기만 해야 할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에 발목이 잡히고 있었죠. 행여나 실전에서도 그럴까 봐, 그런 까닭으로 이현에게 안 좋은 첫인상을 남길까 걱정을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기우’였습니다. 왜냐하면 이현은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으니까요.


아이는 세차게 울면서도 품 가까이로 파고들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연습해보지 않았나요?”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한 순간 긴장이 풀어진 저에게 간호사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와의 첫 대화가 시작되었죠.


“이현아.”

이현이 돌아봤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눈앞은 여전히 캄캄했고, 귀에는 진동이 파고들 공기가 없었으니까요. 아이는 저를, 그리고 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제가 안고 있는 것도 몰랐겠죠. 하지만 그런 사실은 중요치 않았습니다. 지금 막 세상에 도착한 아이는 책 열 권도 되지 않는 자신의 무게를 오롯이 내 품에 맡겼고, 저와 당신만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단순한 연결이면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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