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빼앗은 건 카드지갑뿐이야 #3
축하가 쌓였습니다. 쌓이다 못해 넘치는 바람에 입원실 문밖에는 언제나 꽃이 있었습니다. 태어나 이만큼 축하를 받아본 적이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노벨문학상 정도를 받는다면 비슷할까요? 그럴 리 없겠죠. (여러 가지 의미로…)
낮이면 지인들이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지인들을 모시고 신생아실로 이동해 함께 아이를 보았고 돌아오면 당신과 나는 또다시 축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지인들이 가고 나면 당신은 몸을 추스르는데 힘을 쏟았고 저는 늘상 해내야 하는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러다 입원실에 아이를 데려올 수 있는 시간이 되면 홀로 신생아실로 향했습니다. 언제나 울음소리가 멈추지 않는 신생아실. 그 앞에 설 때면 왠지 모를 불안감에 조급해졌습니다. 이 울음소리 중 하나가 이현은 아닐까? 이 울음소리 속에서 아이는 나처럼 불안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 불안에 앉지도 못하고 기다리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이동 침대에 누운 채 신생아실 문을 나왔습니다. 저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침대를 밀며 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자연히 아이에게 시선을 주었습니다. 그것 역시 이 세상에 도착한 아이에게 전달될 축하의 인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당신은 병원에서 나흘 동안 아이와 마주했습니다. 그동안 아이를 보는 우리의 자세는 계속 바뀌었습니다. 마음가짐뿐 아니라 진짜 자세까지도 말이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당신은 회복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첫날에는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아이와 인사를 나눴죠. 그것은 더없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몹시 불공평해 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열 달이나 아이와 함께 했던 엄마가 아이와의 첫날은 아이를 품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당신의 사랑스럽고 안타까운 자세와 달리 내 자세는 몹시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아이에게 우유를 줄 때, 아이의 기저귀를 갈 때, 속싸개를 단단히 여밀 때…. “처음이니까”라는 말로 넘기기에는 지나치게 어설펐고 절망스럽게 부족했습니다. 병원에서 해준 간단한 교육도, 몇 권의 책과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유튜브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가 그런 부족한 저를 탓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엔 해도 너무해서 이미 포기한 것은 아닐까 걱정은 되지만요)
다음 날은 어땠을까요? 걷는 것은 아직 어려워도 허리를 조금씩 세울 수 있게 된 당신은 이제 아이와 진짜 재회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교육은 제가 받았는데 당신은 이미 좋은 자세를 알고 있더군요. 건방을 떨려는 것은 아니지만 저도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속싸개 싸는 법 강연을 테드 지켜보듯 보다 보니 그것에는 조금씩 요령이 새겼습니다. 기저귀도 이제는 두어 번 테이프를 붙였다 떼는 정도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 자신에게 나름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아이를 보았습니다. 어느새 눈을 뜬 아이는 조금씩 빛이 잡히는지 눈을 깜빡였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살짝 입에 대면 본능적으로 입을 벌렸습니다. 서둘러 우유를 가져와 숟가락으로 조금씩 우유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어제보다 훨씬 더 잘 먹는 모습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저의 눈부신 성장에 감탄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뀐 것은 아이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고 나서였습니다
아이는 아직 숟가락이 닿기도 전에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그것은 어설픈 아빠를 가진 아이의 자세이자 함께 호흡을 맞추고자 하는 자세처럼 보였죠. 이 본능적인 팀플레이에 위로를 받았다면 과장된 것일까요? 그렇다 말해도 어쩔 수 없겠죠. 저는 어제 막 합류한 루키의 관대한 플레이에 감동받은 나이 든 주장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