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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와 플라자호텔

#뉴욕, 프라자호텔, 피츠제럴드

by 최동민


잠들기 10분 전, 침대맡에서 떠나는 게으른 여행 이야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최픽션 입니다.


연말 시즌이 시작되고 특히 12월 31일이 가까워오면 2년 전만 해도 TV에서는 뉴욕 시내를 주로 비춰주곤 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야 종각역이 12월 31일에 더 큰 상징성이 있지만, ‘낭만’의 측면이랄까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12월 31일에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은 뉴욕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것은 뉴욕이 만들어낸 콘텐츠의 힘이기도 하고, 어쩌면 마케팅 전쟁에서 승리한 도시의 전리품 같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크리스마스 영화에서 뉴욕은 화려하면서도 따뜻한, 그리고 행복한 감정이 넘치는 공간으로 등장했습니다. 또 31일이면 펼쳐지는 새해 카운팅 행사는 어떤가요. 그해 가장 뜨거웠던 뮤지션들이 무대를 차지하는 곳. 그래서 세상의 모든 카메라가 자리를 잡는 곳이 바로 뉴욕이죠.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뉴욕의 카운트다운을 보긴 틀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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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시작하던 시기, 뉴욕은 지금보다도 더 얼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락다운의 강도는 높았고, 붐비던 지하철과 거리, 그리고 도로에도 사람들이 오가지 않았죠. 작가 빌 헤이스는 그런 뉴욕의 텅 빈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그 사진은 <별빛이 떠난 자리>라는 아름답고 쓸쓸한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도 했죠. 그런데 그가 뉴욕의 거리를 찍었던 이유는 뭣일까요? 정말 많은 도시 중에 하필이면 왜 뉴욕이었을까요? 그건 빌 헤이스의 활동 무대가 그곳이었다는 점도 있겠지만, ‘뉴욕’이라는 가장 뜨거운 도시가 가진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토록 타오르던 도시가 빙하라도 찾아온 듯, 순식간에 식어버렸으니… 그 대비를 담는다는 것은 작가들에게는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었겠죠.


그런데 여기, 그런 뉴욕 같은 삶을 살다 간 이가 있습니다. 스스로가 뉴욕을 꿈꾸었고, 그래서 뉴욕을 닮아간 사람. 그의 이름은 스콧 프란시스 피츠제럴드 입니다. 맞아요. <위대한 개츠비>의 그 작가죠. 피츠제럴드는 어린 시절부터 일종의 열등감에 휩싸인 채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 열등감의 발로는 부모님에게서부터 였죠. 피츠제럴드의 어머니는 상인으로 성공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녀는 돈보다는 명예나 계급에 관한 욕심이 정말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어린 피츠제럴드도 계급이라든지, 상류 사회에 대한 열망을 일찍이 품게 되었다는 것이죠. 심지어 그거 처음 배운 단어도 ‘UP’이었다고 하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런 욕심을 가지고 학교에 나선 피츠제럴드를 기다린 건, 자신보다 더 높은 계급의 친구들이 보내는 싸늘한 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고개를 숙이면 자신의 몸속에 감춰둔 열등감을 직접 목도할 것 같아서였죠. 그래서 피츠제럴드는 고개를 들고 당당히 그들 앞에 섰습니다. 하이틴 소설이나 드라마로 치면 주인공의 재발견? 정도가 될 장면이었을 텐데요. 아쉽게도 피츠제럴드는 아직 주인공이 될 준비가 되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성인이 된 피츠제럴드 앞에 한 명의 여인이 등장했죠.

그의 이름은 젤다였습니다. 앨라배마주 대법원 판사의 딸이었던 젤다를 사랑하게 된 피츠제럴드.


첫사랑과의 관계를 계급과 돈이 없다는 이유로 실패한 그는, 이번에는 기필코 사랑에 성공하리라 다짐합니다. 피츠제럴드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돈을 버는 것이었죠.


당장 계급을 높일만한 방법은 없었으니,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던 젤다의 집에 부자의 모습으로 찾아가면 젤다와의 사랑을 허락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때, 피츠제럴드가 선택한 돈이 터져 나오는 도시. 그곳이 바로 뉴욕입니다.


그가 뉴욕을 찾은 이유. 그것은 당시 미국의 상황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 경제는 그야말로 호황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나 뉴욕이었죠. 이런 이유로 당시 성공을 향한 열정과 욕망을 가진 이들은 모두 뉴욕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뉴욕이 그리 만만한 도시가 아니었다는 점이었죠. 피츠제럴드는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는 신문사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려고 했었는데요. 원서를 내는 신문사에서 죄다 퇴짜를 당했습니다. 글 실력이라면 외모만큼이나 자신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또 한 번 좌절을 겪게 되자 피츠제럴드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당장 생계를 위해서 말단 광고 회사에 들어가 원하지도 않았던 세탁 광고 문구를 쓰며 살아가야만 했죠.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좋은 글이 써질 확률도 높지 않아, 피츠제럴드는 시작하지도 못한 작가 생활에 큰 암초를 맞이하게 됩니다. 뉴욕은 정말이지 만만치 않은 곳임을 깨달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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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피츠제럴드는 짧은 뉴욕 생활과 뉴요커를 향한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죠. 다시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게 된 그는, 예전에 쓴 소설 <낭만적 에고이스트>를 고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퇴짜놓았던 출판사에 호기롭게 다시 작품을 보내게 되는데요. 이 작품을 눈여겨봐준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맥스웰 퍼킨스. 편집자였죠.


이 이름이 낯이 익다면 아마도 영화 <지니어스>를 보신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니어스>속 콜린 퍼슨이 연기한 배역이 바로 맥스웰 퍼킨스입니다. 그는 헤밍웨이를 비롯해 피츠제럴드를 발굴할 인물로 당시에 굉장한 명성을 높이던 작가였죠. 그런 맥스웰 퍼킨스와의 만남이 바로 이때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는 작품의 제목을 <낙원의 이편>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출간을 제안하는데, 실패를 거듭하던 피츠제럴드 로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리고 맥스웰 퍼킨스의 예상처럼 이 작품은 그야말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는데요. 이 한 권의 책으로 피츠제럴드는 말 그대로 돈방석에 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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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돈을 벌게 된 피츠제럴드가 처음 한 행동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바로 뉴욕 최고급 호텔을 예약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었던 뉴욕을 다시 한번 침공해 정복하겠다는 허영 넘치는 오기의 행동이었죠. 사실 그것을 100%의 허영이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 피츠제럴드는 <낙원의 이편>으로 끊임없이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시기, 뉴욕과 루키의 얼굴을 벗고 명실상부 최고의 위치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피츠제럴드는 뉴욕이란 열차가 내달리는 속도에 맞춰 그곳 올라탄, 뉴욕과의 운명공동체가 된 것이었죠.


이 시기를 가리켜 우리는 ‘재즈 시대’라 부릅니다. 세계대전의 승리와 활황의 경제 덕에 돈과 술, 흥을 비롯해 모든 것이 넘쳐흐르던 시대가 바로 이 재즈 시대죠. 이 시대는 밤새 술을 마시고 잠시 일을 하고 또다시 밤새 술을 마시는 시대였기도 하는데요. 재밌는 것은 피츠제럴드가 이 시절 사는 방식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피츠제럴드는 “단편 소설 따위 하루면 쓸 수 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잠깐의 집중력만 발휘해서 우수한 작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써 내려간 작품은 술을 마시느라 날려버린 통장 잔고를 다시 채워주었죠.


그렇게 돈이 쌓이기 시작하자 피츠제럴드는 뉴욕의 고급 호텔을 마치 제 집인 것처럼 돌아다녔습니다. 그중에서는 지금도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플라자 호텔도 있었죠. 피츠제럴드는 이곳에 아예 장기 투숙을 하면서 글을 쓰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본다면 ‘플라자 호텔’과 뉴욕은 ‘재즈 시대’와 피츠제럴드. 이 모두를 대변하는 공간이래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뉴욕의 피츠제럴드는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피츠제럴드를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그가 파리로 건너가 역시나 파티의 주요 고객으로 화려한 삶을 살았다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즈 시대’가 지나치게 짧은 영광을 누리고 사라진 것처럼, 피츠제럴드의 영광. 그 빛나는 시절도 오래가지는 못했죠. 재즈 시대는 채 10년을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역사의 뒤로 사라져 갑니다. 피츠제럴드도 다르지 않았죠. 그는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해 훌륭한 작품을 써내긴 했지만, 절제되지 않은 삶의 궤적과 함께 아래로, 아래로 추락해버리고 맙니다.


뉴욕과 플라자호텔은 여전히 그 자리에 웅장히 자리 잡고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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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렇게 뉴욕을 꿈꾸었던 피츠제럴드. 그와 함께 뉴욕과 플자호텔, 그리고 재즈 시대를 유영하는 상상의 여행을 떠나봤습니다. 어떤 인물들은 자신이 살다간 시대와 닮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재즈 시대의 피츠제럴드, 비트 세대의 긴즈버그 같은 이들이 그런 예가 될 수 있을 텐데요. 이것의 선행 조건은 그 시대가 한 사람의 생만큼 짧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짧은 시대나 세대는 결코 행복한 엔딩만을 가져가지는 못하는데요. 여전히 존재하는 곳, 그리고 순간을 불타오르다 사라진 것. 이 두 개의 그림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엮으며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때로는 흥미로운 여행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다음의 자정 여행 때 다시 만나도록 하죠.

그때까지.

잘 지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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