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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크기만 한 오두막

#지중해, 로크브륀느카프마르탱, 르코르뷔지에

by 최동민


잠들기 10분 전, 침대맡에서 떠나는 게으른 여행 이야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최픽션 입니다.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고향을 말할 때면 바다를 많이 보았겠다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그 질문엔 바다의 삶이라는 다소 특별해 보이는 것에 대한 동경도 어느 정도 들어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아쉽게도 제가 태어난 곳은 부산에서 내륙에 속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바다를 볼 일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되려 타지의 사람들보다 해운대나 태종대를 덜 보고 자랐을지도 모르죠. 그래서인지 부산은 고향이면서도 고향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물론 4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곳을 떠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부산과 고향을 병치하기엔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처럼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을 하신 분들도 저와 비슷한 감각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이들일수록 고향 옆에 둘 장소를 본능적으로 찾곤 하죠. 저 역시 어딘가를 여행할 때나 낯선 공간에 도착할 때면 잠시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있곤 하는데요. 요가처럼 이 자세와 행동에 이름을 붙이자면 ‘고향 찾기 자세’라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자세 그대로 멍을 때리며 그곳의 공기라든지 느낌이라든지 분위기 같은 것을 온전히 껴안아봅니다. 그러면 알 수 있죠. 이곳이 나의 고향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말이에요.


지금까지 찾은 장소 중에는 제주 산방산 아래 마을이나, 리스본의 언덕 위 동네, 터키 흑해 어딘가에 있는 여왕의 이름을 딴 마을 같은 곳(마을 이름을 까먹었다는 소리입니다)이 있습니다. 모두 나라도 다르고, 품고 있는 역사나 이야기 심지어 계절과 온도마저 다른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 같다.” 혹은 “고향으로 삼아도 좋겠다.”라고 생각한 이유를 정리하자면 ‘잔물결’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저에게 그 장소들은 잔물결 같은 장소들이었습니다. 파장이 잘 맞는 것인지 그곳은 아무리 어색하거나 소란스러워도 잔물결처럼 잔잔히 저를 받아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고향’같은 곳처럼 말이죠. 이런 공간을 한 번 발견하면 욕심이 생기는데요. 어딘가에 또 다른 나의 고향이 있지 않을까? 샅샅이 뒤져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여기에 정착하면 어떨까? 하는 아직은 헛된 바람을 가져보기도 하죠. 혹시 모르니까요. 운이 좋다면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처럼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고향에 정착할 수 있을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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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는 스위스의 시계 계곡이라 불리는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실제 건축가로서 활동을 한 것은 파리를 비롯한 전 세계였죠. 그래서 스위스와 르코르뷔지에를 연결시키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르코르뷔지에 역시 스위스보다는 다른 곳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했는데요. 그곳이 어딜까요?


이 질문의 답을 얼핏 떠올려 본다면 집단 주거 건축으로 유명한 르코르뷔지에이기에 파리나 뉴욕 같은 거대한 도시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르코르뷔지에의 선택은 ‘지중해’였습니다.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인생을 바꿔놓은 젊은 시절의 동방 여행 때부터 그는 지중해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 그곳의 햇볕을 즐기고, 몸이 데워지면 바다에 첨벙 빠져들고 싶다는 충동. 르코르뷔지에는 그런 이상의 삶 또한 짓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였던 그를 세상은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도시에서 그를 찾았고, 일을 하기 위해서 지중해에서의 삶은 서랍 속에 넣어두어야만 했죠. 그 사이 지중해를 향한 갈망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그 사이, 르코르뷔지에는 평생의 동반자라 믿게 된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는 지중해의 여인 ‘이본’이었습니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르코르뷔지에는 고급 의상실이었던 ‘조브’에서 이본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는데요, 그 당시 나이가 스무 살이었다고 하죠. 이본은 모나코 출신으로 지중해를 닮아 자유분방한 성격이었습니다. 르코르뷔지에도 보헤미안과 자유라고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물이었지만, 애초에 지중해를 고향으로 태어난 그녀를 따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르코르뷔지에는 그런 아내를 위해 도심 외곽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펜트하우스로 이사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갑갑한 것은 참지 못했던 아내를 위해 출퇴근길이 멀어지는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죠. 문제는 거대한 펜트하우스조차 이본에게는 감옥 같았다는 것입니다. 르코르뷔지에는 이본을 위해 집의 창도 더 넓히고, 침대의 높이를 높여 누워서도 창밖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죠. 하지만 세계 최고의 건축가의 솔루션도 이본에게는 무의미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죠. 제아무리 넓은 펜트하우스라 해도 지중해만큼 넓을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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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르코르뷔지에는 설계도 밖에서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그에게는 모나코 근처, 지중해 해변에 작은 별장을 가진 친구, 장 바도비치가 있었죠. 그는 프랑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 ‘로크브륀느카프마르탱’에 별장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모나코와 멀지 않은 곳이었고, 두 사람은 자주 이곳을 찾아 도시에서의 갑갑했던 마음과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이본은 도시에서는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였지만, 지중해가 펼쳐진 이곳에만 오면 더없는 여유와 기쁨을 느꼈다고 해요. 르코르뷔지에 역시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깊은 행복을 느꼈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르코르뷔지에는 이 행복을 아예 껴안아버리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매료된, 그리고 아내가 사랑하는 지중해를 앞에 두고 남은 생을 보내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었죠. 그전까지는 불가능이라 믿었던 그 일이, 단지 생각을 하고 나자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르코르뷔지에. 그는 자신의 마지막 역작을 설계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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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는 로크브륀느카프마르탱에서 친해진 식당 바로 옆에 집을 지었습니다. 이 집을 두고 코르뷔지에는 스스로 ‘걸작’ 혹은 ‘궁전’이라 말했죠. 세계 최고의 건축가가 자신이 지은 최고의 걸작이라 말한 곳이니 얼마나 거대하고 장엄한 집이 지어졌을까? 궁금해지는데요. 지금부터 그 집으로 상상의 여행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집의 외관은 통나무를 대충 쌓아놓은 헛간처럼 보입니다. 거짓이 아니고… 진짜 그렇습니다. 르코르뷔지에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실제 르코르뷔지에는 자연과 가까운 건축을 지향했던 인물이기도 하죠) 모습의 집을 지으려 했고, 이를 위해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과한 장식이나 무의미한 자재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이 집은 누가 르코르뷔지에의 집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그런 공간입니다.


그럼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부엌처럼 두 사람이 쓰지 않는 공간은 과감히 삭제한 이 집은 크기도 굉장히 작았습니다. (평수로 치면 4평에 불과했어요.) 침대와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필요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인체의 비율을 집에 반영하여 가장 효율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 이것을 평생의 연구과제로 삼았던 르코르뷔지에였기에. 이 집은 크기는 작아도 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럼 이제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집안은 자연을 닮은 익스테리어와 달리 코르뷔지에가 엄선한 잘 다듬어진 목재를 사용했고, 집 앞의 지중해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도록 설계된 창문이 집과 지중해를 하나처럼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렇게 지어진 집을 이본은 사랑할 수밖에 없었죠. 사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널따란 펜트하우스에 비해 정말 보잘것없는 모습이었겠지만… 이 집에는 펜트하우스에는 없었던, 소수의 집만이 허락받은 지중해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거예요. 두 사람은 이 작고 완벽한 집에서 평생을 지중해와 함께 살아가게 되는데요. 집안에서, 또 집 밖에서 지중해의 볕을 즐기고, 매일 바다 수영을 하는 삶. 그것은 오직 이 집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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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여행한 이 집은 지금도 로크브륀느카프마르탱에 방문을 하면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이곳을 찾는 많은 분들은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집에 들어서기 전에는 “이 작은 집에서 어떻게 살아?”라는 반응. 그러나 막상 집에 들어서면 “이 정도면 사는데 부족함이 없잖아?”라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고 합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우리의 상상 여행 만으로는 알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다음 주, 월요일에 떠날 로크브륀느카프마르탱의 또 다른 공간과 그곳에 담긴 르코르뷔지에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시면 조금 더 선명히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행이죠. 아직 지중해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그럼 우리는 다음 여행 때, 따뜻한 지중해의 볕과 바람을 조금 더 즐겨보도록 하죠.


그때까지.

잘 지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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