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잠들기 10분 전, 침대맡에서 떠나는 게으른 여행 이야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최픽션 입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80년대 주택가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높아야 2층이 전부인 낮은 주택에 살았고, 낮은 담 덕에 스스럼없이 옆집과 앞집, 혹은 뒷집 사람들과 격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습니다. 그런 관계를 ‘이웃’이라 부르면서 말이죠. 더운 여름이면 골목에 평상을 펴고 함께 누워 더위를 쫓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할 때면 가족 수보다 배는 넉넉히 해서 이웃과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거리감이 익숙하진 않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파트에서 산 것은 아니었고, 저 역시 그런 골목의 낮은 주택들. 그곳의 반지하 방과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1층 단칸방, 그리고 방 두 개짜리 2층 집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성격 탓인지 저는 이웃에게 그리 친절하지도, 이웃의 친절을 격없이 받아들이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인사를 건네거나 받는 것이 전부였죠.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나온 김영하 작가는 이런 거주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주택과 아파트의 바뀐 풍경들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작가는 아파트가 어떤 면에서는 삭막해 보일 수 있지만,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주거 형태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닙니다만…)
저는 그때 작가의 말에 크게 동의를 했던 기억입니다. 이웃의 정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아파트는 다소 삭막하고 인간 냄새 안 나는 시멘트 건물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창문을 내리면 이웃의 창문을 바로 마주할 수 있는 거리감을 불편해하는, 이를테면 저 같은 성격의 분들에게는 되려 아파트의 삭막함이 묘한 안정감을 주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주제에 단독주택을 최종 목표로 두고 있는 저의 이중성은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파트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잡담을 이어가자면… 아파트로 이사를 할 때, 점을 보고서라도 알아두고 싶은 것은 이웃의 성향입니다. 위층에 아이들은 없는지, 아래층에 고3 수험생은 없는지, 옆집에 파티광은 없는지… 제발 무난한 성격의 사람들이 나의 위와 아래, 옆을 채우는 이웃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곤 하죠. (아니, 생각 정도로는 부족하네요. 간절히 소망하고 기원하곤 하죠)
그만큼 이웃은 우리 생활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텐데요. 오늘은 이웃을 잘 못 만난, 너무 긴 시간 이웃을 잘 못 만난 한 나라로 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로 말이죠.
우크라이나를 구글 지도 같은 것으로 보면 전 국토가 아주 옅은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답은 우리나라의 지도와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는데요. 한국의 지도는 짙은 초록색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맞아요. 이 색의 농도는 얼마나 산이 많은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산지가 대부분인 한국의 경우 녹색은 짙을 수밖에 없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옅은 초록으로 가득한데요. 그건 바로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산이 적고 대부분의 땅이 비옥한 평지이기 때문입니다. 산이 없다는 것. 그리고 평지가 많다는 것. 그것은 곧 농사지을 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유럽 대륙에서 러시아를 제외하곤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식량창고라고 불리곤 하는데요. 실제로 세계 곡물 시장의 16%를 담당할 정도라고 하니… 욕심 있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보물 같은 흑토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무수한 침공을 당하는 운명을 맞아야 했었는데요. 이 운명은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도시 키예프 곳곳에 새겨졌고 또 새로이 새겨지고 있습니다.
키예프는 동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역사의 시간 속에서 주인이 너무 자주 바뀌긴 했지만, 키예프라는 이름만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죠. 그리고 그 이름 아래 키예프의 길을 걷다 보면 몇 개의 광장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모든 관광의 중심 위치라 볼 수 있는 마이단 광장을 비롯해 독립 광장 같은 곳이 대표적이죠. 얼마 전까지 이 광장들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자유로운 쉼터였을 뿐 아니라, 키예프를 찾는 이방인들이라면 꼭 머무는 장소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말이죠.
유럽에 있는 많은 광장들. 평화로워 보이기만 한 그 광장들에는 주로 아픈 역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광화문 광장이 그런 것처럼 말이죠. 키예프를 대표하는 두 개의 광장도 키예프의 독립운동이나 시위의 장소였습니다. 한때는 거대한 함성이 가득했고, 지워지지 않을 핏자국이 새겨진 곳이었죠.
이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터키의 소피아 성당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성 소피아 성당’을 비롯해 다양한 양식의 각종 성당과 교회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한 도시에 많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역사의 깊이’ 다른 하나는 ‘정복의 상흔’이죠.
키예프를 대표하는 관광지를 둘러보면서 “참 다양한 모양의 도시네?”라고 느끼셨다면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키예프는 멀지 않은 곳에 이 수많은 양식의 유적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걷다 보면 무수한 전쟁의 이야기를 담은 박물관과 그 옛날 키예프의 승자들이 오가던 황금문도 거닐어 볼 수 있죠. 또 차에 올라 한 시간쯤 달리다 보면 체르노빌의 흔적을 마주할 수도 있죠.
이처럼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명소들을 돌아보다 보면 우리는 명소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과 동시에 높다랗게 쌓인 한 나라의 이야기에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마치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때처럼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미 쌓일 대로 쌓인 이 이야기의 탑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쌓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고약한 이웃 때문에 말이죠.
우크라이나는 이웃을 잘못 만날 필연적인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강대국들과 러시아라는 거대한 제국의 사이라는. 아주 위험한 위치에 말이죠. 그런 이유로 우크라이나는 끊임없이 힘 있는 고래들의 틈 속에서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가 유럽의 손에 완전히 넘어가면 유럽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과 정면으로 마주 봐야 하고, 유럽의 입장에서는 러시아라는 껄그러운 상대 사이에 쿠션이 있는 것이 좋았는데 그 역할을 우크라이나라는 이웃이 해주고 있는 셈이었죠. 이렇듯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유럽 모두의 좋은 이웃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있기에 둘은 필요한 만큼의 이득을 얻고 있었죠. 하지만 이 좋은 이웃과의 관계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기에… 우크라이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양쪽의 거대한 힘은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그리고 목소리 큰 이웃처럼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크라이나가 또 한 번 침공을 당하는 이유는 말이죠.
현재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각국은 각자의 질서를 유지하고 세계사의 파도를 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에게도 키예프에게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절대적인 열세의 상황에서 키예프는 1분에 한 걸음씩 허락하지 않은 이방인의 걸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면 비옥한 키예프의 흑토가 무슨 색으로 바뀌어 있을지는 알 수 없겠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우리가 함께 여행한 우크라이나의 모습은 더는 없을 것이라는 불운한 예상뿐입니다. 어쩌면 오늘 둘러본 곳 중 대부분이 무너져 있을지도 모르고, 함게 거닌 광장의 위로 군인들의 군화 소리만 울릴지도 모릅니다. 또 어쩌면 우크라이나와 키예프의 오늘을 기억할 또 다른 광장, 혹은 기념물이 세워질지도 모르죠.
멀리서, 상상의 여행을 떠나는 저로서는. 그저 그 모든 키예프의 것에 타국의 언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의 언어가 새겨져 있길 바랄 뿐입니다. 저는 그 언어로 세워진 키예프의 곳곳을 거닐고 싶습니다. 이 작은 소망이, 그리고 우크라이나 분들의 거대한 소망이. 그저 상상에서 멈추지 않도록 한 사람의 여행자로서 저는 더 많이 그곳을 생각하려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이 그곳을 상상하려 합니다. 기억의 힘은, 그리고 상상의 힘은 때로 모든 것을 바꾸는 희망의 열쇠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때까지 부디,
잘 지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