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타지마할
잠들기 10분 전, 침대맡에서 떠나는 게으른 여행 이야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최픽션 입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임솔아 작가의 작품 중에는 <초파리 돌보기>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경력이 단절되어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다가 과학기술원에서 연구용으로 쓰일 ‘초파리’ 관리를 맡게 되는 원영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원영은 이 일을 하다가 정체불명에 병에 걸리고 말죠. 원영의 딸은 이것이 산재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영에게 계속 일하던 당시의 상황을 물어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원영은 빙긋이 웃으며 넘어갈 뿐이었죠.
왜, 그랬을까요?
원영은 과학기술원에서 연구자들이 입을 법한 가운을 입고 가치 있어 보이는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습니다. 그 순간을 인생 최고의 장면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그랬기에 자신의 병은 절대 이 일과 연결되어선 안되었습니다. 그랬다간 자신의 아름다운 시절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릴 것 같았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원영은 병의 원인을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그저 아름다움만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아갑니다.
소설을 보면 이런 원영의 모습이 미련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에게는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이 문장에 당신은 어떤 기억을 떠올리셨나요?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했던 시간, 친구들과의 추억, 죽도록 노력한 결과로 얻어낸 성과의 순간들… 이런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이런 기억들은 대부분 나의 삶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기억은 아름답기를 원하게 되죠. 만약 이 기억이 더럽혀진다거나, 아예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그 기억과 연결된 나의 많은 것들도 함께 더럽혀졌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것은 차마 견디기 어려운 일이겠죠.
오늘은 그것을 견디지 못해 잘못되고 아름다운 선택을 했던 한 사람을, 그 사람의 선택을 만나는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도로 떠나야 하는데요. 준비되셨으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인도 아그라. 이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묘지가 있습니다. 바로 타지마할이죠. 인도를 오는 이들은 열에 아홉은 이곳을 방문한다고 봐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이곳은 인도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인데요, 무굴 제국 시절에 지어진 이 묘지는 건축가 우스타드 아흐메드 라호리가 황제 샤자한의 명을 받고 짓기 시작했습니다.
타지마할은 1632년에 공사를 시작해, 1648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을 정도로 대단한 규모의 건축이었습니다. 이곳을 짓기 위해 수천여 명의 석공과 대리석 전문 기술자, 모자이크 전문가, 그리고 장식 업자가 투입되어야 했죠. 심지어 인력이 부족하면 해외에서까지 전문가를 초빙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럼 조금 더 가까이 타지마할로 다가가겠습니다. 이곳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완벽한 비례에 먼저 집중해야 합니다. 또한 건물의 외벽을 담당하고 있는 진줏빛 순백의 대리석에도 시선을 오래 두어야 하죠. 이 대리석은 인도 전역은 물론이고 중앙아시아까지 가서 사들인 것이라고 하는데요. 황제 샤자한이 타지마할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겠죠.
이외에도 정문의 팔각 둥근 천장 지붕, 천장 돔의 아름다운 장식, 길게 이어진 대리석 수로, 정원 중앙에 위치한 연못까지… 타지마할은 어디를 보더라도 감탄할 포인트가 없는 곳이 없는 그런 곳입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수로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로는 그 자체의 기능은 물론이고, 타지마할을 완벽히 반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타지마할을 인간의 세계에서 한 번, 신이 빚은 캔버스에서 한 번 더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샤자한은 아마도 타지마할을 완성한 후, 우리처럼 감탄하며 아주 천천히 이곳을 둘러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떠올렸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뭄타즈 마할을 말입니다.
타지마할은 기능적인 면으로 본다면 ‘무덤’입니다. 샤자한은 사랑하는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영원히 반짝일 것 같은 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은 아니었던 그였기에 샤자한은 이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할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정했죠. 영원히 아름다울 무덤을 만들어 아내를 담을 것이라고 말이에요.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타지마할입니다.
문제는 그가 타지마할을 거닐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그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과거 몰락한 제국들의 역사를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대규모 토목이나 건축 공사를 했다는 사실이죠.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타지마할을 비롯한 대규모 건축사업을 벌이면 그에 따른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소요되니까요. 문제는 비용만이 아닙니다. 건물을 지을 사람들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들 대부분은 농사를 짓거나 나라를 지켜야 할 인구였습니다. 그런 이들을 건축 현장에 투입하다 보니 자연히 나라는 가난해지고 국방력도 약해지게 되죠. 민심 역시 나라에 등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자연스레 반란은 시작됩니다. 샤자한의 무굴제국도 마찬가지였죠. 이번 반란의 주인은 샤자한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타지마할에만 모든 관심을 쏟는 아버지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왕위를 찬탈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이미 민심이 돌아선 샤자한은 꼼짝없이 당해야 했습니다.
황제의 자리에서 순식간에 죄인의 신분이 된 샤자한. 그런 그에게 가장 슬픈 일은 왕좌를 빼앗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샤자한이 가장 슬펐던 것은 더는 타지마할을 걸을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아내 곁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이었죠. 다행히 아들 아우랑제브는 샤자한을 아그라 요새의 팔각 탑에 유폐하는데요. 샤자한이 타지마할을 거대하게 지어서인지 이 탑에서도 타지마할은 웅장히 그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샤자한은 작은 창문 너머로 펼쳐진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에 감싸인 채 누워 있는 아내를 생각하며 여생을 보내게 되었죠.
샤자한의 이 아름답고 어리석은 일화는 타지마할을 찾는 이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저도 당신에게 그 질문을 남겨보려 합니다.
“샤자한은 타지마할을 지었던 것을 후회 했을까요?”
저부터 대답을 해보자면 저는 아니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책임감 없는 말일지 모르지만 샤자한에게는 무굴제국도 황제의 자리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아내를 영원한 아름다움 속에 담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영원한 아름다움을 완성했다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작은 창을 통해서라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 그것으로 샤자한은 자신의 결정에 만족을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타지마할의 품, 아내 곁에 머물 수 있었기에 더더욱 후회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했던 임솔아 작가의 소설 <초파리 돌보기>로 돌아가 보죠. 그 소설에서 원영은 끝내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자신이 행복하던 한 시기를 영원히 아름답게 기억하기로 합니다. 딸 지유가 보기에는, 그리고 곁에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그 결정이 지나치게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그런 것일지 모릅니다. 나 자신이 어리석어질지라도, 혹은 피폐해질지라도 지키고픈 그런 것일지 모릅니다.
당신과 제가 그런 것처럼 말이죠.
이제 다시 영원한 아름다움의 타지마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나라면 이 아름다움 속에 무엇을 담을까? 이 질문의 답을 각자 생각하며 오늘 자정의 여행은 마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음 여행의 시간에 만나도록 하죠.
그때까지.
잘 지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