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바닷새들⟫ 맷 슈얼
⟪펭귄과 바닷새들⟫
글 | 맷 슈얼
펴낸곳 | 클
펭귄은 남극에서만 산다. 어느 만화에서 나오는 북극에 사는 펭귄이라든지 하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아쿠아리움이나 동물원에 가면 그들이 살지만 그건 우리 세상에서 펼쳐지는 기이한 일 중 하나이다.
그런데 왜 펭귄은 남극에서 살게 되었을까? D가 이 질문을 떠올린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도 첫 가족의 집을 나서 독립했을 때, 혹은 J와 결혼을 하고 함께 할 둥지(펭귄과 바닷새의 표현을 빌리자면)를 구하러 다닐 때쯤이었을 것이다. 가진 것에 비해 둥지의 값은 너무 비쌌다. 필요한 조건을 카드 게임 하듯 한 장씩 빼보았지만 결국 원하는 둥지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D와 J는 밀려났다. 괜찮은 둥지로부터 한 발짝, 또 한 발짝. 밀려났다.
펭귄은 남극에서만 살지 않았다. 그들도 조건이 허락한다면 남극이라는 극한의 땅에서 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사한 땅, 온도가 적당하고 먹을 것도 많은. 그런 땅은 이미 자신보다 강한 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월세나 전세도 아니고, 자가로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펭귄에게 좋은 자리는 요원한 일이었다. 게다가 가진 이들은 뭘 그리 더 갖고 싶은지 그나마 남아있는 펭귄의 자리를 빼앗았고, 펭귄은 천적이라 불리는 그들을 피해 짐을 싸야 했다. 그리고 괜찮은 둥지로부터 한 발짝, 또 한 발짝, 밀려났다.
이런 현실을 두고 불합리라든지 부조리라든지, 억울함 같은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다소 전형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런 단어만 떠올리다 보면 머릿속에 그것들이 온통 자리를 잡는 바람에 꼭 필요한 것이 자리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예를 들면 '상상력' 같은 것들 말이다.
D와 J 역시 그랬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선택이 그나마 좋은 선택일까."
그들은 현실에 집중한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상상력은 밀려났다. 그러다 보니 현실은 더욱 각박해졌다. 그러다 보니 상상력은 또 밀려났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슬퍼졌다.
펭귄들도 그랬을까? 각박한 현실. 그것을 피해 도피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슬픔을 느꼈을까? 어느 정도는 그랬을 것이다. 그중 감수성이 예민한 이들은 하늘을 날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날고 날아 도착한 곳, 그곳이 남극이었다. 다소 극단적인 선택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이왕 피하는 것이라면, 천적이 절대 따라오지 못하는 곳. 그런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펭귄은 아무도 살지 않는 남극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방에 빙하와 눈, 그리고 바다만이 가득했다. 그 모든 것이 새하얀 탓이었을까? 펭귄은 꽤 큰 스케치북을 선물 받은 듯, 상상의 붓질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방법을 생각해 냈고, 그곳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갖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러자 그 척박한 땅은 살만한 곳을 넘어, 그들에겐 가장 완벽한. 그런 둥지가 되었다.
D와 J는 슬퍼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의 두 사람에게 최선이었던 둥지. 그곳에 일찍 자리를 잡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 오래된 벽지를, 그래서 마음껏 칠해도 되는 벽지를 원하는 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벽을 칠하다 보니 천장도 칠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고된 작업이 될까 멈춘 후, 그 시간에 창밖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다행히 편의점은 근처에 두어 군데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오르긴 힘들지만, 막상 오르고 나면 보이는 창밖의 풍경도 좋았다. 척박한 그 동네에서 그보다 두 사람의 둥지보다 높은 곳은 없었다. 덕분에 하늘이 잘 보였다. 널따란 하늘. 그것을 보며 두 사람은 좋게 생각했다. 밀리고 밀려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밀리고 밀려서 온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상상이 있을 것이라며 좋게 생각했다.
마치, 펭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