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자신의 에너지가 너무 넘쳐 타인의 에너지가 거북하게 느껴지는 그런 시절. 식물의 아름다움 같은 것은 교과서에 적힌 고리타분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면 하루만큼. 딱 그만큼 죽은 시간을 등과 어깨에 나눠 메고 갈때. 그 무게에 등이 원숭이 처럼 굽기 시작하면 우리의 눈엔 비로소 식물들이 보이기 시작하죠. 피고 오르고 나는 순간은 물론이고, 쉬고 자고 죽는 순간까지도 에너지 넘치는 그들의 모습. 그 모습은 꼭 우리의 어린 시절 같아 향수를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뒤늦게 돈과허영이 아닌, ‘정원’을 갖고 싶어지는데요. 여지것 식물과 함께하지 않았기에 그들과 에너지를 나누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퍽 겁이 나곤 합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나 없던 겁이 말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건 없습니다. 윤광준 작가의 이런 미문과 함께라면 말입니다.
❝왕의 정원과 보통 사람의 정원은
크기와 호사스러움에서만 차이 날 뿐 내용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크고 엄청난 베르사유 정원과 내 책상 위의 작은 화분이 갖는 의미는 똑같다.❞
작가의 말처럼 정원은 한 포기의 풀만 있어도 정원이고, 만 송이의 장미꽃이 있어도 정원 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작은 창가나 베란다 한 편, 혹은 침대맡에 놓일 아주 작은 화분 하나로도 정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겠죠. 그리고 그 작은 화분에서 오르는 생명의 아지랑이는 어찌나 힘이 센지. 진하게 새겨진 나이테를 지워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작게. 또 함께.
해봐도 좋겠죠.
하루만큼 늙어버린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