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좋은 긴 호흡

by 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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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호흡은 여전히 가쁘기만 한데, 질 좋은 긴 호흡은 줄곧 무시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장센은 지워지고, 여백은 잘려나가고, 숨을 가다듬는 시간 조차 낭비라 생각하는 시대. 그래서 우리는 짧고 빠른 콘텐츠에 연신 펀치를 맞아가며 넉다운이 되고 말죠.


하지만 그런 콘텐츠로 이 계절을 나기엔 겨울은 너무 길고 또 춥습니다. 긴 밤을 온전히 채울만한 긴 호흡의 콘텐츠. 우리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백년의 고독>같은 그런 콘텐츠들.

하지만 연습도, 준비도 하지 않은 채로 갑자기 긴 콘텐츠를 손에 얹기엔 아무래도 부담이 됩니다. 그렇다고 누가 요약한 10분 짜리 <백년의 고독>을 보면 허무한 마음만 남아버릴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혹시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일단 길을 나서보죠. 가까운, 혹은 조금 멀더라도 어때요. 지도앱을 켜고 서점을 찾아 보는 거예요. 온라인의 방대한 서점 말고, 내 시야에 한 번에 들어올만한 작은 서점. 그런 곳을 찾아가보는 거예요. 이제 문을 엽니다.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서로를 아주 잘 알아보니까요. 들어갔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큐레이션을 눈여겨 보는 거예요. 나보다 먼저 책을 읽은 이가 권해주는, 말하자면 “엄선된”책과 소개를 보는 거예요. 그 소개는 사실 그리 친절하지는 않을 거예요. 모든 내용을 요약해 그것만 읽어도 내용을 전부 알 수 있지도 않을 거예요. 겨울의 독서를 찾는 우리들에겐 되려 그런 것이 더 좋죠. 앞서 말했듯, 우리의 겨울은 너무 길고 또 추우니까요.


그렇게 선별된 책 속에서 내 눈을 끄는 책 한 권을 들어봅시다. 그리고 계산대로 직진. 책을 올려놓고 고개를 들어 보세요. 그럼 아주 할 말이 많다는 듯한 서점 주인의 표정을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린 시간이 아직 많으니까, 가볍게 질문해봐도 좋겠죠.

“이 책 어때요?” 정도의 질문이면 충분할거에요. 그러면 서점 주인은 있지도 않은 손자의 자랑을 하듯이 책을 자랑할 거예요. 그 말을 귀담아 들어주세요. 그것이 우리의 긴 겨울 독서의 가이드가 되어줄테니까요.


이제, 서점을 나서보죠.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거예요. 잊지 않고 옷깃을 세워 겨울 바람은 막아야 해요. 책을 읽기도 전에 감기에 걸려버리면 낭패니까요. 올때보다 손은 무거워졌지만 기대감에 걸음은 더 빨라질 거예요. 그런 당신의 걸음을 본 누군가는 언젠가 카뮈가 그랬듯, 이렇게 말하겠죠.


“오늘 처음으로 그 책을 펼쳐 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이천이십이 . 십일 . 이십 .

《윤고은의 EBS 북카페》일간 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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