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도 걸어도

by 최동민
tempImageSND5sI.heic


가족이 모이는 하루를 그린 영화 <걸어도 걸어도>. 이 영화를 생각하며 감독은 영화 속 장면들이 가장 일상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가장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일, 행위나 대사를 포함해 모든 것이 말이죠. 그래서 감독은 “부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현관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까?” 같은 고민을 하면서 자신이 지나온 일상의 풍경과 기억을 뒤돌아 걸어보았죠.


영화의 주인공 중이자 가족의 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 키키 키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감독의 요청을 받고 자신이 과거 가족과 보낸 일상과 그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떠올려보기 시작했죠. 이 영화는 말하자면 그런 가족을 향한 감독의 기억과 배우의 기억이 잘 포개져 만들어진 영화라고 볼 수 있는데요. 감독이 직접 꼽은 그 장면들을 잠시 만나볼까요?


“가령 주인공을 연기한 아베 히로시 씨가 부인과 의붓아들을 데리고 본가에 오는 장면을 보면 키린 씨가 현관에서”어서 와“하고 손을 모아 머리를 숙이는데요. 키린 씨가 가지런히 놓아둔 슬리퍼를 아들이 신지 않고 가버리죠.

그때 키린 씨가 슬리퍼를 손에 든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들 가족의 뒤를 따라가거든요. 제가 각본에 “슬리퍼를 들고 따라간다”라고 쓰지 않았으니 키린 씨가 스스로 그렇게 하신 거예요. 그걸 보고 내심 대단하다 느꼈어요. 안 신은 슬리퍼를 들고 가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아, 엄마구나’ 싶었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촬영 감독님도 “저 엉거주춤한 자세 좋은데….”라고 말했어요.“


감독의 말을 듣고 다시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억 속 가족의 모습을 말이죠. 신기하게도 그렇게 떠올린 가족의 장면은 이 영화처럼 아주 일상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장면일 때가 많은데요. 조금 바꿔 말하면 우리의 모든 평범한 일상.

그것이야말로 가장 영화로운 순간들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해서일까요? 우리는 나와 가족 구성원의 일상들. 그것을 포개며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기억을 더듬는 과정에서 만져지는 일상의 질감들. 내가 살아온, 그리고 나를 살게 할 그 기억을 때때로 산책하듯 거닐어 보는 것도 좋겠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