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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봄이 어디있나 했습니다

by 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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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은행동에 한 치과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본업을 하는 틈틈이 교도소의 재소자들을 찾았죠. 그리고 가진 재주와 마음을 다해 그들을 돌봐주었습니다.


그 마음이 퍽 고마웠던 교도소 사람들은 그에게 은혜를 갚을 일이 없을까 고민했죠. 긴 고민 끝에 교도소에서는 병원에 걸어두면 좋을 글을 써서 선물을 하면 좋겠다며 생각을 모았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은혜받은 마음을 전할 만큼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는데요. 때마침 교도소에는 글 잘 쓰는 장기 복역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신영복 선생님이었죠.


감사한 이에게 전할 글 선물의 주인이 된 신영복 선생님은 종이에 담길 글을 한참 고민했습니다. 그런 깊은 고민 끝에 고른 것은 ‘행림회춘’

“살구나무 숲에 봄이 돌아왔다.”는 뜻의 네 글자였습니다.

봄은 기다리면 찾아오는 것이고, 살구나무 숲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을진대 왜 이런 당연한 말을 골랐던 것일까요? 여기에는 이 네 글자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국 오나라에 동봉이라는 이름의 의사가 살았습니다. 그는 교도소 재소자들을 돕던 대전의 의사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치 않고 자신의 재주를 베풀었죠. 동봉 덕에 목숨을 구한 환자들은 가난한 살림이지만 어떻게든 사례를 하고 싶어 했는데요. 빤한 살림을 아는 동봉은 돈 대신 다른 것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살구씨였죠.


“돈은 괜찮으니 살구씨 하나를 뒷산에 심고 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환자 한 명이 한 그루 살구씨를 심고, 또 다른 환자가 또 한 그루의 살구씨를 심고, 동봉이 도와준 환자가 늘어날수록 살구씨는 더 많이 늘었는데요. 그 고마운 마음이 어찌나 많았는지 동봉의 뒷산은 봄이면 살구나무꽃이 빼곡히 피어났다고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봄날의 살구나무꽃 같은 재소자들의 마음을 담아 ‘행림회춘’ 네 글자를 적기로 한 것이었는데요. 차가운 세상의 온도를 덥히는 한 의사의 마음, 그 마음의 온도를 듣고 찾아온 봄의 색, 향, 그리고 맛이 담긴 살구나무의 풍경.


봄이 어디 있나 싶었는데, 여기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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