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만 빠진 나머지, 세상일에 어두운 이들을 말하는 ‘간서치’ 이 말은 흔히 생활력 부족한 선비들을 놀리는 데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롱의 말을 스스로에게 붙인 이가 있었는데요. 그는 바로 조선의 책 수집가 이덕무였습니다.
“늘 책을 볼 때면 그 책을 다 읽은 다음에 꼭 베끼곤 했다. 그리고 항상 작은 책을 소매 속에 넣고 다니면서 주막이나 배에서도 보았다. 평생 읽은 책이 거의 2만 권이 넘었고,
손수 베낀 문자가 또한 수백 권이 되는데. 그 글씨가 반듯하고 아무리 바빠도 속자를 쓴 것은 한 글자도 없었다.“
이덕무가 사망한 뒤, 그의 30년 지기 친구 박지원이 그를 생각하며 지은 글에는 이덕무의 책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박지원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덕무는 평생을 서얼 출신의 양반으로 지내며 벼슬이나 출세보다는 책을 가까이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 애틋한 사랑으로 이덕무의 삶은 이어졌는데요. 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려 했던 그의 목표는 베이징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양반이자 벼슬도 없는 이덕무가 베이징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죠. 단 하나, 사신단에 끼어 가는 것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이덕무는 벼슬에 나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사신단에 끼어 베이징에 가게 되었는데요.
책을 고르는 눈이 탁월했던 그는 그곳에서 자신과 나라에 필요한 선진 도서들을 골라내었습니다.
그 결과, 이덕무는 귀국 후 규장각에서 출판하는 모든 책을 교정하는 일인 검서관으로 최초의 취직을 하게 되었죠. 이는 책에 미친 한 사람의 가장 행복한 결말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요. 실제 그는 사망하는 해까지 규장각에서 일을 하며 책에 둘러싸인 행복한 삶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의 동화책처럼 말하자면 “이덕무는 규장각에서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라고 할만한 해피엔딩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