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성 에세이 #125. 여름날

by 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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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쳐진 깊숙한 곳에 나무 그림자 어른거리고

은자는 잠이 깊어 코고는 소리 우레로다

해 저무는 뜰에 찾아오는 사람 없는데

불어오는 바람에 문짝만 닫혔다 열렸다한다.


‘여름날’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의 작품입니다.

이 짧은 시만봐도 과거 우리의 여름날 풍경을 엿볼수가 있는데요.

과거의 사람들은 바람 솔솔 부는 정자에서 얇은 적삼을 입고 대자리에 편안히 누워, 스르르 낮잠에 빠지는 여름날을 보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여유에 내내 빠져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

이런 속담이 있었을 정도로 여름은 한해 농사의 흥망을 결정짓는 시기였기에 농부들은 작렬하는 태양을 마냥 피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여름의 더운 바람은 사정이 없어 아무리 부지런한 이라 하더라도

두손 두발을 들게 만들곤 하는데요. 그럴 때 과거 사람들은 ‘탁족’이라는 방식으로 여름을 났습니다. 탁족은 한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씻는 놀이였다고 하는데요.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 ‘유월초’에 이런 글이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삼청동 남북계곡에서 발씻기놀이를 한다.”

탁족은 신분과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이 즐기던 피서법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발을 담그며 더위를 피하다 시간이 나면 그물을 쳐 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잡은 민물고기는 집에 돌아가 어죽을 끓여 먹기도 했는데요. 여름날 지친 몸을 보신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거의 여름풍경을 지켜보다보니 올해 우리의 여름은 어떤 모습일지.

올해 우리의 여름 추억은 또 어떻게 쌓일지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새로운 한철의 초입의 마음이 늘 그렇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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