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통과 고소공포증

by fichten

-약수터 갈 때 들고 가는 통이네

-아니야, 생수통이네. 손잡이도 있고.

-그런데 사다리는 뭐야?

-그 옆에 누나 닮은 애는 누구고?


엄마와 남동생은 분명 빈정대는 말투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내 기록은 여기서부터 시작이고 올해의 망작(亡作)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터를 잡고 아버지가 진흙을 잔뜩 퍼 넣은 모래땅, 하천을 곁에 두고 만들어진 밭은 유일한 나의 일터이자 놀이터다.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많다.

우선 비가 제때 와야 하고 많이 와서도 적게 와서도 안되고, 바람도 불어줘야 하지만 강하게 불면 안 되고, 내리쬐는 햇살도 기온이 적절하게 맞아야 하고.

아무튼 자연이 힘을 보태줘야 하는 것이 우선 첫째 조건이다.

그리고 다음이 인간이 나설 차례다.

매년 단물만 쪽쪽 빨아먹듯이 땅에서 자란 것들을 수확만 할 것이 아니라 그곳에다 여러 가지 양분을 공급해줘야 한다. 사람만 영양제를 먹는 것이 아니니까.

마지막으로는 부지런히 살펴보는 것이다. 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한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자주 들여다 보라는 소리겠지.

밭에는 몇 년 전에 들여다 놓은 큰 물통이 있다.

5톤 용량으로 국가보조금을 보태서 구입한 것인데 고추농사에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고추가 초반에 자라다가 칼슘이 부족한 병이 생기는데 칼슘 부족이라고 하지 않고 '배꼽병'이라고 다들 말한다.

고추 끝이 물러지다가 타들어간다.

고추 배꼽이 거긴가, 간혹 의문이 들지만 아무튼 그렇게 부르니 나도 그렇게 부른다.

엽면으로 약을 방제하기도 하지만 제일 효과적인 것은 물통에다 칼슘제를 타서 관주로 삽입하는 편이 빠르다.

그렇다고 사람처럼 두통약을 먹고 몇 시간 뒤 나아지지는 않는다.

효과를 보는 기간은 대략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하니 고추를 심고 미리미리 방제해야만 한다.

칼슘제를 용기에 부어 담아 들고 사다리에 오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번은 손잡이가 없는 조그만 대야에다 담아 들고 들이붓다가 대야가 물통에 빠져 버렸던 적이 있었다.

내 손이 후들거리며 떨렸던 모양이다.

그 대야는 지금껏 물통 속에서 떠다니거나 아니면 한쪽 구석에서 잠자고 있다.

영원히 꺼낼 수 없게 되었다. 물통을 부시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접이식 사다리는 그야말로 모험이다.

고층빌딩의 스카이워크는 곧잘 걸어가는데 물통에 걸쳐져 있는 사다리는 왜 두려운지. 아무래도 안정성의 문제인 것 같다. 스카이워크가 무너져 내릴 확률보다 사다리에서 떨어질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통 꼭대기에는 커다란 원형 모양의 뚜껑이 있다.

한 번은 물통에 물을 채울 생각으로 전기모터를 틀어 놓고 집에 가버린 적이 있었다.

집에서 느긋하게 점심밥을 먹다가 아차 싶어서 다시 가보니 세상에나, 뚜껑을 날아가서 옆 논에 처박혀 있었고,

그 큰 물통에서 물이 넘쳐나서 근처가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물 한 방울이 아까웠던 한 여름날이라서 괜히 미안했다.

바싹바싹 타들어가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을 뉴스에서 보고 온 후라 더더욱 그랬다.

그나마 우리 밭은 물을 끌어올리는 모터가 제 기능을 잘해서 매년 물 걱정은 없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펑펑 쓰지는 않지만 아무튼 이때는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을 재거나 밭에서 수시로 체크할 수밖에 없다.



사다리에 대한 공포증이라기보다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육교를 오르내리는 계단 앞에 섰을 때 왜 그렇게 심장이 두근대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았을 때 참 어이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20대 초반 수산회사를 다녔을 때 회사의 실적이 높은 해여서 전 직원에게 중국 포상 휴가가 주어졌었다.

첫 중국 여행의 도착지는 북경이었고 그곳에서 이동하여 만리장성에 간 적이 있었다.

남들은 씩씩하게 올라갔었던 그 계단에 난 순간 어지럼증을 느꼈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 가파른(내 기억에는 그랬다) 계단은 왠지 내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 다시는 아래로 내려 올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짧은 두려움이 막막해서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어떤 계단이든 잘 오르내렸었는데 아무튼 그때부터인 것 같았다.

그리고 농사를 짓게 되면서 또다시 느끼는 공포증은 사다리였다.

아마도 누군가가 옆에서 잡아주지 않는 불안감에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물통에는 거뜬히 올라갈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충북 단양에 식구들끼리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무슨 생각에 패러글라이딩을 해보겠다고 산 꼭대기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복장까지 갖추고 주의사항을 들어가며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댄 탓에

내 앞에서 모든 일정이 중지되었다.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하는 심정이었다. 사실 말을 꺼내놓고도 그것은 분명 호기스러운 척한 것임을 나 자신은 알고 있었다.


겨울이 되면 물통의 물은 싹 빼내야 하고 약을 치는 기계며 물을 끌어올리는 모터를 체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어 터질 경우가 생긴다.

몇 년 전 실수로 모터의 마개를 한 개만 빼냈더니(위, 아래 두 개를 다 빼야 한다) 얼어 터져서 꽤 곤란했었던 적이 있었다. 수리비도 꽤 들었다.

농사를 짓게 되면 다른 것보다 농기계가 가장 큰 지출을 담당한다.

우리 집은 거의 중고지만 알고 보면 폐차 수준의 낡은 외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쓸만했고 그러다 보니, 한 번 고장 나면 몇 백씩 수리비가 들어간다.

차라리 새것으로 사지. 수리비가 더 나오잖아.

그러나 말처럼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기계들은 몇 천만 원에서 몇 억대이고 사자면 거의가 대출을 내야 하니,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경작하는 농지의 면적에서는 그리 필요치 않는 경우다.

정 필요하면 요즘은 농협에서 농기계 임대도 해주니까 알아보면 될 것 같다.

오랜 직장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마냥 희망적인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며 살자고 했는데, 그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농사를 물려받아 지은 지 거의 10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헤매는 일이 많고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밑천이 필요함을 무시할 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대충대충 해서 먹고살만하면 되지, 자급자족하잖아. 뭐가 걱정이야.

누군가는 농사는 대충대충 할 수 있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임을 말한다.

뭐, 대충대충 해도 되고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원하는 대로 나오질 않는 것이 농사다.

아무리 모터로 물을 끌어올려 호스에 연결해서 밭작물들에게 물을 공급해도 하늘에서 뿌려진 비만큼 좋은 것이 없고, 비닐하우스 옆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그냥 온전히 햇볕 아래서 받는 바람만큼 좋은 것은 없다.

하늘이 도와야 하고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 농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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