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야는 지금껏 물통 속에서 떠다니거나 아니면 한쪽 구석에서 잠자고 있다.
영원히 꺼낼 수 없게 되었다. 물통을 부시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리고 물통 꼭대기에는 커다란 원형 모양의 뚜껑이 있다.
한 번은 물통에 물을 채울 생각으로 전기모터를 틀어 놓고 집에 가버린 적이 있었다.
집에서 느긋하게 점심밥을 먹다가 아차 싶어서 다시 가보니 세상에나, 뚜껑을 날아가서 옆 논에 처박혀 있었고,
그 큰 물통에서 물이 넘쳐나서 근처가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물 한 방울이 아까웠던 한 여름날이라서 괜히 미안했다.
바싹바싹 타들어가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을 뉴스에서 보고 온 후라 더더욱 그랬다.
그나마 우리 밭은 물을 끌어올리는 모터가 제 기능을 잘해서 매년 물 걱정은 없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펑펑 쓰지는 않지만 아무튼 이때는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을 재거나 밭에서 수시로 체크할 수밖에 없다.
사다리에 대한 공포증이라기보다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육교를 오르내리는 계단 앞에 섰을 때 왜 그렇게 심장이 두근대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았을 때 참 어이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20대 초반 수산회사를 다녔을 때 회사의 실적이 높은 해여서 전 직원에게 중국 포상 휴가가 주어졌었다.
첫 중국 여행의 도착지는 북경이었고 그곳에서 이동하여 만리장성에 간 적이 있었다.
남들은 씩씩하게 올라갔었던 그 계단에 난 순간 어지럼증을 느꼈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 가파른(내 기억에는 그랬다) 계단은 왠지 내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 다시는 아래로 내려 올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짧은 두려움이 막막해서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어떤 계단이든 잘 오르내렸었는데 아무튼 그때부터인 것 같았다.
그리고 농사를 짓게 되면서 또다시 느끼는 공포증은 사다리였다.
아마도 누군가가 옆에서 잡아주지 않는 불안감에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물통에는 거뜬히 올라갈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충북 단양에 식구들끼리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무슨 생각에 패러글라이딩을 해보겠다고 산 꼭대기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복장까지 갖추고 주의사항을 들어가며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댄 탓에
내 앞에서 모든 일정이 중지되었다.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하는 심정이었다. 사실 말을 꺼내놓고도 그것은 분명 호기스러운 척한 것임을 나 자신은 알고 있었다.
겨울이 되면 물통의 물은 싹 빼내야 하고 약을 치는 기계며 물을 끌어올리는 모터를 체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어 터질 경우가 생긴다.
몇 년 전 실수로 모터의 마개를 한 개만 빼냈더니(위, 아래 두 개를 다 빼야 한다) 얼어 터져서 꽤 곤란했었던 적이 있었다. 수리비도 꽤 들었다.
농사를 짓게 되면 다른 것보다 농기계가 가장 큰 지출을 담당한다.
우리 집은 거의 중고지만 알고 보면 폐차 수준의 낡은 외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쓸만했고 그러다 보니, 한 번 고장 나면 몇 백씩 수리비가 들어간다.
차라리 새것으로 사지. 수리비가 더 나오잖아.
그러나 말처럼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기계들은 몇 천만 원에서 몇 억대이고 사자면 거의가 대출을 내야 하니,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경작하는 농지의 면적에서는 그리 필요치 않는 경우다.
정 필요하면 요즘은 농협에서 농기계 임대도 해주니까 알아보면 될 것 같다.
오랜 직장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마냥 희망적인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며 살자고 했는데, 그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대충대충 해서 먹고살만하면 되지, 자급자족하잖아. 뭐가 걱정이야.
누군가는 농사는 대충대충 할 수 있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임을 말한다.
뭐, 대충대충 해도 되고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원하는 대로 나오질 않는 것이 농사다.
아무리 모터로 물을 끌어올려 호스에 연결해서 밭작물들에게 물을 공급해도 하늘에서 뿌려진 비만큼 좋은 것이 없고, 비닐하우스 옆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그냥 온전히 햇볕 아래서 받는 바람만큼 좋은 것은 없다.
하늘이 도와야 하고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 농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