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과의 전쟁 중

by fichten

엄마는 비닐하우스를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뛰어다니기를 수차례 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도 푸드덕 거리며 날아다니는 새를 잡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세 마리를 잡긴 잡았는데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놔줄 수도 없었다.

애써 키워 놓은 고추를 쫙쫙 반으로 갈라놓거나 뜯어 놓았다.(분명 맛보았을 것이다)

매운 고추를 어떻게 먹을까.

아니다. 색깔이 빨갛게 익어도 아직 단단하지 않은 것은 달다.

그러다 보니 새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곤 한다.

주둥이가 작은 참새는 비를 피하거나 벌레를 잡아먹으러 들어오지만 큰 새들은 대부분 붉게 익은 고추를 노리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옆으로 올려놓은 하우스 옆면에다 녹색 망을 둘러쳐놓고 입구도 망으로 막았다.

그래도 어느 틈새로 들어오는지 가끔 발견될 때가 있다.

엄마는 잡은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긴 막대기에 달아 놓았다.

양밥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하우스 입구에 갖다 놓았고 또 한 마리는 다리를 묶어 옆 하우스 골주대 위에 매달아 놓았다.

다른 한 마리는 어쩌다 놓쳐서 날아가 버렸다.

작년에 받아 두었던 참깨 씨앗을 밭에 파종할 때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바로 새들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싹이 날 무렵쯤 내려앉아 이제 막 올라온 새싹을 다 파헤쳐 놓는다.

나도 웬만하면 공존하며 살고 싶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몇 번을 재 심어도 그다음 날에는 또 물어다 밖에 팽개쳐 놓는다.

한 해는 거짓말처럼 그곳에다 오디열매를 물어다 놓았다.

거짓말이지? 아니야, 진짜라니까. 사진을 못 찍어 둔 것이 후회스럽지만 찍어 둔다 해도 믿겠는가.

나만 아는 새들의 행동이다.

그러고 보니 밭 여기저기는 어린 뽕나무들이 수도 없이 자라고 있다.

아마도 새들이 오디 열매를 물어 나르다 떨어뜨리거나 먹다가 남긴 것일 수도 있다.

좀 더 자라면 단단해서 베기도 어려서 보이기만 하면 없애야 해서 그것도 일 중의 하나다.

올해는 독수리 모양의 연을 매달지는 않았지만 작년까지는 밭에다 연을 매달았다.

워낙 새들의 이동도 많고 해서 기다란 막대를 세워 매달아 놓으면 곧잘 부는 바람에 독수리연은

하늘을 가로질러 신나게 좌우로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큰 종류의 새들은 피해 가고 작은 새인 참새는 보란 듯이 아래쪽에 앉거나 하우스 대에 올라앉아 비웃듯이 소리를 더 내기도 한다.

그러나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에는 독수리는 날다 못해 사라져 버리기 일쑤고 찾다 보면 근처 논에 거꾸로

처박혀 있기도 했다.

에혀, 너도 바람에는 별 수 없구나.


10월 중순쯤 수확한 들깨를 단으로 묶어 세워 둔 밭에 또다시 새떼들이 우르르 앉기를 반복한다.

할 수 없이 반짝이 줄을 이리저리 하우스 대(바람으로 비닐이 벗겨진 하우스는 골주만 남았다)에 묶어 놨는데,

그다음 날 강풍 예고에 가보니 이리 떨어지고 저리 떨어져서 흉물스웠다.

언제 왔는지 까치떼들을 또다시 내려앉아 채 묶어 놓지 못하고 바닥에 눕혀 놓은 들깨대에 앉아 포식 중이었다.

워이, 워이. 소리를 지르며 쫓아보지만 그때뿐이다.

올해는 김장 배추와 무를 심어 놓은 곳에는 웬 발자국들이 그리 많은지, 자세히 살펴보니 고라니가 밤새 왔다 갔다.

이쪽에는 고라니가 거의 오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둘째 삼촌네 오랜 단골인 고라니가 우리 밭으로 건너온 것이 분명했다.

삼촌네 밭에는 얼마 전부터 불빛이 반짝거리는 경고등을 세워놓았다.

그러다 보니 고라니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은데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우리 밭으로 몰려온 것 같다.

그래도 배춧잎을 뜯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철제문을 설치했는데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땅을 밟고 다니는 짐승들은 어떻게 막을 수는 있어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감당하기가 힘들다.

남으면 얻어먹지 뭐. 어머니는 남으면 먹겠다고 하지만 막상 들깨를 벨 때 땅에 떨어진 껍질을 발견했을 때는,

와, 이 녀석들이 언제 이렇게 까먹었지 하며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남은 들깨 알맹이를 톡 까서 입에 물면 생각지도 못한 맛에 놀란다.

맛있다.

그냥 아무런 표현 없이 맛있는 들깨 맛이고 생(生)의 맛이다.

그래, 올해는 내가 포기했다. 그러나 내년에는 너희들도 놀랄 준비를 해야 될 거야.

내가 더 강한 독수리를 구해 올 거니까.


어머니는 매일 아침 들기름을 한 숟가락씩 드신다.

혈압과 혈당 조절에 좋다고 하니 막상 먹으니 옆구리살이 빠진다고 하니 효과가 있긴 있나 본다.

그런데 작년에는 들깨 수확이 신통치 않아 올해 먹을 들기름은 막상 없어서 단골 기름방에서 사 와야 했다.

올해는 그나마 밭에 있는 들깨에게 기대를 걸어 본다.

새들이 먹고 남은 걸 먹는다는 게 기분 나쁜 일은 아니지만 적당하게 남겨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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