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의 사전적 정의다.
농사를 짓게 되면서 인간은 식물의 경작 장소와 성장 속도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선택되지 못한 것들은 제 자리에서 자연의 변화에 맞춰 자라나게 되었다.
그것이 잡초다.
인디언들은 예전부터 잡초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 모든 식물과 동물은 자신의 영혼을 가지고 있고 각기 존재의 이유가 있는 생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대다수는 아마 도시생활을 하는 이들일 것이다.
꽉 막힌 도심 속에서 푸릇푸릇한 것을 찾기란 어렵고, 하늘은 늘 미세먼지로 뿌옇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 그곳에서는 잡초도 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모르면 그냥 잡초, 알면 약초가 되는 것.
논에다 벼를 심고 밭에다 뿌린 씨앗들이 새싹을 틔울 때 논밭에는 한창 풀들이 신나게 기지개를 켜고 있을 시기다. 예전같이 일일이 손으로 뽑지 않고 제초제를 사용하지만 때를 잘 맞춰야 한다.
논 같은 경우는 초기, 중기로 나눠 사용하는데 제일 골칫덩이는 바로 피와 벗풀이라는 풀이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추수할 때 컴바인 기계가 애를 먹기도 하고 운이 나쁘면 고장의 원인이 될 만큼 풀은 질기고 또 질긴 습성을 가지고 있다.
남동생은 한 해 논의 풀 때문에 꽤나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혼자 하는 것이 안쓰러워 돕겠다고 나섰는데, 푹푹 빠지는 논의 습성과 혹시나 심은지 얼마 안 된 모를 밟을세라 신경을 써서 그런지 몸살이 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직접 논에서 작업하는 하지 않고 모를 심을 때 이앙기에다 약과 비료를 넣고 심는 동시에 뿌리게끔 나온다. 그리고 드론을 이용해서 방제하기 때문에 논에 들어갈 일은 별로 없다.
점점 더 기계화되는 농사일이다. 드론은 공동으로 신청을 받아 면사무소나 농협에서 담당하는데 비용도 저렴하고 노동력도 절감되지만 가끔은 내 논에 제대로 하는 것이 맞는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왜냐면 이곳처럼 다닥다닥 논들이 붙어 있는 넓은 들녘을 방제할 때면 가끔 헷갈리는 경우도 있고, 주관하는 업체도 여러 군데라고 하니까 직접 논에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이장을 여러 해 하신 셋째 삼촌이 주로 체크하시는데 가끔 빠뜨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올해는 들녘이 폭우로 인해 물에 잠긴 적이 있어서 그런지 추수할 무렵이 되니까 대부분의 논들이 벌겋게 병이 든 곳이 많았다.
애써 지은 농사가 마지막에 쭉정이가 되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심정은 참 허탈하고 속상함을 잘 알기에,
내 집 농사가 잘 되었다고 마냥 좋아할 수가 없다.
그냥 다행스럽게 되었네요라고 어설프게 웃어 버릴 수밖에 없다.
초창기 풀을 없애면 농사일이 수월하지만 어디 풀만 보며 일을 할 수가 있나 싶다.
다른 걸 잠깐 하다 보면 비 한 방울에도 어느새 바글바글 땅 속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처럼 땅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 있다.
그리고 좀 더 긴 비가 오면 어느새 열매를 맺고 수많은 씨앗들을 품고 있다.
그런데 막상 꽃을 보게 되면 너무나 앙증맞고 예쁘다.
잡초도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운다. 하지만 방심해선 안된다.
씨앗이란, 한 두 개의 사과를 생각해선 안된다.
온 들녘을 흩날리며 몇 킬로 근방까지 아니, 바다 건너까지 날아가는 것이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에 온갖 새순을 따서 봄나물을 무쳐 먹을 때는 좋았다.
잡초도 어린순은 다 먹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여름날, 버티고 버티다 자신의 생존신고를 하듯이 내년 봄에는
올 가을에는 남동생이 기르고 있는 소들의 짚이 부족해 짚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에서 몇 개를 살 수밖에 없었다. 논 가운데 흰 비닐로 감싼 마시멜로 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사일리지'라고 한다.
수분 함량이 많은 목초류 ·야초류 ·풋베기작물 ·근채류 등을 사일로(silo)에 저장하여 젖산발효를 시켜 부패균이나 분해균 등의 번식을 억제함으로써 생초의 양분의 손실을 막고 보존성을 높이려는 목적의 사료이다. 엔실리지(ensilage) ·매초(埋草) ·담근 먹이라고도 하며 저장방법에 따라 직접 사일리지(Directcutsilage), 곤포 사일리지(Balesilage, Balage)로 구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수입건초가 비용면에서는 저렴하지만 웬만하면 국내산 볏짚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아는 남동생은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한 개에 9만 원대) 몇 번 구입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논 추수하기 전)에는 짚으로 된 사일리지는 없고 풀로 만든 건만 있다고 했다.
풀? 풀을 먹여도 돼?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소를 키울 때 들에 나가 풀을 뜯으며 길렀었다.
지금은 축사에 가둬 놓고 고열량의 사료를 급여하며 살만 찌우는 형태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자유롭게 하늘도 쳐다보며 맑은 공기와 풀냄새를 맡으며 소들은 자랐다.
풀은 안 돼. 사료만 먹던 애들인데 갑자기 생풀 먹으면 설사한다.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안 된다고 했고 그러고 보니 요즘 소들은 예전의 소들과 다른 사육형태를 가지고 있음을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친척집 사일리지를 몇 개 빌려 쓰기로 하고 추수한 논의 짚을 사일리지로 만드는 대로 갖다 주기로 했다.
이젠 풀도 맘대로 먹을 수 없는 소라니. 그냥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