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를 운영하시는 것은 아니고 5일 간격으로 장이 서는 시골장터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하는 방식이다.
영주 5일장만 가는 것이 아니고 근교 풍기라든지 봉화 장터에도 나가신다.
여간 부지런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수입이 꽤나 괜찮다고 하니 농담 삼아 언젠가 그만두시면
그 자리 저한테 넘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언제 넘길지 알 수가 없다. 이곳 시골 장터에는 거의가 노령세대가 자릴 잡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 지은 농사를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는 없다.
허리 수술이나 무릎수술을 하지 않는 어르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도 장날만 되면 시골 버스 안은 북적거리고 타는 이들은 주로 연세 많은 분들이다.
무엇을 팔려고 하는지 꽁꽁 싸맨 보따리는 넘쳐나고 저것을 어떻게 들고 왔을까 싶을 정도다.
아무튼 고향에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보았던 장날의 풍경은 그리 정겹지만은 않았다.
점점 늙어가는 이곳, 혹이나 동네에 119가 오거나 앵앵거리는 병원차가 오게 되면 또 누가 탈이 났나.
며칠 전부터 안 보이면 누구누구는 요양원에 들어갔다고 하고 어디 딸 내 집에 갔다 그러기도 하고.
동네는 점점 조용해져서 아침, 저녁으로 들리는 건 진짜 자연의 소리뿐이다.
조용해서 좋겠네 뭐 할지 몰라도 어느덧 세상과 이별하는 분들은 또 그만큼의 세월을 여기 남겨두고 갔으니,
왠지 모르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남겨진 세월은 또 다른 시간을 기다린다.
그것은 내 어머니 것이 될지도 모르고 내 것이 될지도 모르고 아는 누군가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
시내에 살고 계시는 큰고모는 장날에 가끔 셋째 숙모의 장꾸러미를 구경하러 가신다.
없는 것 없는 각종 채소와 잡곡과 그 외의 것들은 정갈하게 묶어져 있었고 상태는 매우 싱싱하고 깨끗했다고 했다.
매사에 꼼꼼한 성격인 숙모의 솜씨는 장터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잠시 숙모가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간 사이 큰고모가 물건을 파는 경우가 있었나 보다.
큰고모는 천 원 사면 거의 이 천 원의 '덤'을 주어버리는 매우 손이 큰 분이셨다.
아니 인심이 차고 넘친 분이셨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숙모가 보기에는 그것은 장사가 아니라 그냥 퍼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형님, 이제 그만 집에 가셔도 될 것 같아요. 하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고.
생전에 아버지는 정미소에다 추수를 한 쌀을 맡긴 적이 없으셨다.
집에다 도정기계를 사다가 찧어서 판매를 하시거나 삼촌들과 고모들에게 나눠 주셨다.
그리고 판매를 할 때는 늘 조금 더 넣어서 넉넉하게 했다.
그러나 외삼촌은 절대 그런 법이 없었다.
어떤 것을 판매하든 딱, 그 정량에 맞게 달아서 파니 가끔 외숙모는 외삼촌 몰래 고추포대에다 몇 근 몰래 집어넣기도 하셨다.
사는 사람은 우릴 믿고 사는 건데, 좀 더 집어넣어줘야지. 야박하게.
아무튼 깐깐하다 못해 너무 짜다 싶은 외삼촌 몰래 퍼 넣은 쌀이며 고추가 꽤 되긴 했다.
매년 공판장에 싣고 갔었던 고추는 포대가 정해져 있다.
50근(30kg)인데 조금 더 넣어서 31.5kg 정도 맞춰야 한다. 왜냐면 고추 꼭지를 따지 않고 넣는 건고추라 꼭지 딴 무게를 예상하고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포대를 내가 들어가고도 남을 큰 것이라 항상 전날에는 저울에 달아보느라 늘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될 때가 많았다.
안동공판장까지 운전을 맡은 남동생이 달아 주고 난 무게를 체크하는데, 분명 맞게 달아서 가져가도 항상 근수는 남았다.
아까운데 더 넣지 마세요. 공판장 직원들은 무게를 달아보고 늘 32kg를 넘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어떤 이들은 근수를 채우지 못해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다른 포대의 고추를 덜어서 근수를 맞추기도 하는, 아무튼 매우 분주한 공판장에서 우리 고추포대는 늘 남아도는 든든한 인심의 포대자루가 되었다.
퍼주는 것과 더 주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일반 마트에서는 절대 없는 일이고 재래시장이나 개인 간 소매 거래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판매자의 차이겠지만 냅다 퍼주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도 원가를 생각하고 고춧가루의 경우는 꼭지를 일일이 제거해야 하는 수고스러움과 빻는 값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포장비는 알뜰하게 모은 비닐과 종이박스로 대신할 수도 있고 택배비는 따로 받을 수가 있다.
더 주는 것은 제 값어치 외에 거저로 조금 더 얹어 주는 일을 말하는데 어쩌면 마음 가는 대로 더 퍼주는 것일 수도 있다.
오래된 단골이라면 한 움큼 더, 새로 거래하는 곳이라면 처음이라서 한 움큼 더 넣어주는 것이다.
큰고모가 더 주는 것은 아마도 짠순이라고 소문난 숙모의 성격을 아는데서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고모처럼 장사하면 망하는 거 아니야?
장이 파하는 저녁 되면 저기 있는 것들 다 못쓴다. 그전에 한 움큼 더 집어넣어 주면 좋지.
내 인심 쓰고 돈 벌고 좋지.
어쩌면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방송에도 출연했었던 고모부네 이발소는 꽤나 유명한 곳이다.
아직도 긴 이발칼로 머리를 다듬고 면도를 해 주는 곳인데, 그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모부는 꽃을 좋아하셨는데 특히 국화 가꾸기를 좋아하셨다.
전문 전으로 배우시기도 해서 늘 가을이 다가오면 고모부네 이발관 앞에는 노랗고 흰 국화 화분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그리고 쉬는 날에는 밭에 나가서 각종 농작물들을 심어 키우는데 그 솜씨도 대단했다.
고추며 파며 양파, 마늘 등등 없는 게 없는 그야말로 작은 마트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키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확을 하면 그것을 이발소 앞에 내어 놓는다.
아이고 이뻐라, 고놈 참 실하게 생겼네.
오며 가며 쳐다보며 사람들은 고모부와 고모가 가꾼 농작물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때 고모부는 나와서 필요하시며 가져가라고 나눠 주신다.
늘 그러신다. 국화꽃 화분도 여기저기 나눠주시고 나도 가을철만 되면 두 팔 가득 안고 온다.
아마도 큰고모는 그렇게 나눠주고 싶으신가 보다.
그러나 장터의 농작물들은 나눠준다기보다 덤으로 조금 더 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농사도 퍼주기도 하고 더 주기도 할 수 있는 풍작을 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