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벌레를 맞닥뜨렸을 때 당연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놀라거나 아니면 별 거 아니라는 표정을 짓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하지만 난 보기 전부터 눈에 띄기 전부터 이리저리 살펴보고 또 살핀다.
요즘은 살충제를 치기 때문에(그렇지 않으면 구멍 뚫린 고추만 볼 것이다) 그리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고추 끝물인 10월 말 지금 이맘때쯤이면 고춧잎뿐만 아니라 고추는 구멍이 죄다 뚫려 있는 것이 허다하다.
원래대로라면 장아찌나 말린 부각을 만들기 위해 한 두 번 딴 다음 붉은 약을 치고 대를 잘라놓는다.
그렇게 되면 익다 만 고추들은 금세 빨갛게 색을 입힌 마지막 빛을 발하는 고추로 탄생한다.
한동안 붉은 색소를 입힌다는 것에 많은 거부감을 표시했었는데 일반 가정보다는 대중 음식점이나 대량 공급을 하는 사용처에서는 대부분 사용한다.
물론 안전성이 보장된 약품만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식용상 문제는 없다.
우리도 고춧가루가 모자라면 색소를 친 고추를 말려서 먹었으니까 말이다.
몇 해 그렇게 해서 수입을 얻게 되었는데, 올해는 고추 농사가 생각지 못한 변수(긴 장마, 폭우, 폭염과 물에 잠기는)를 만나 첫물을 간신히 따고 밭은 올 스톱되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지 않게도 고추는 거의 친환경 수준의 상태가 되어 더 싱싱하게 자랐고, 익는 대로 수확하다 보니 양은 적지만 색깔은 자연 그대로 발색되고 있었다.
어라, 내년부터는 그냥 자연스럽게 해 볼까.
붉은 식용 색소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초반에 잘 거둬 들린 다음 이맘때쯤 정리하는 걸로 해 볼까 생각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 농가들은 장마가 끝나고 8월 중, 하순부터 고추 착색제를 방제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내 결심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한 번쯤은 자연 그대로의 방식을 고집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두통약을 처음에 한 알 먹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니 내성이 생겼는지 이제는 두 알을 먹어야 된다.
용량 용법에는 두 알까지 괜찮다고 나와 있으니 괜찮다고 여기지만 혹시나 두 알도 효과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고추의 살충제 방제도 늘 이런 고민이 뒤따른다. 대부분의 농약사에서는 성분이 다른 살충제를 교차 방제하도록 권고하고 대부분의 농가에서도 그렇게 시행하고 있다.
살충제는 제조사마다 대표적인 브랜드명이 있고 가격도 싼 것부터 비싼 것까지 다양하다.
초반에는 신경 써서 방제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비싼 것을 선택한다.
살충제는 비싼 만큼 효과성도 높은 것은 사실이다. 매일같이 방제하는 것이 아니기에 초반에 예방하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낭패 보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고추에 생기는 총체벌레다.
이 녀석이 모든 병의 시발점이 된다. 특히 토마토반점 바이러스라는 일명 '칼라병'이 퍼지면 한 포기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밭 전체를 갈아엎어야만 한다.
총체 벌레는 주로 잡초가 많은 곳에 발생하기 때문에 밭 주면의 풀이란 풀은 없애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비 한 방울만 떨어져도 어디선가에서 쏙쏙 튀어나오는 풀은 정말 벌레보다 더 징그러울 때가 많다.
초반에 고추 모종을 심고 꽃이 필 때면 늘 꽃잎을 확인하는 일은 습관처럼 몸에 배었다.
꽃잎에 조그만 가시처럼 꼬물거리며 총체벌레들이 돌아다닌다.
특히 비닐하우스 입구나 제일 가쪽의 고추들에게 생기는데 아무래도 위치가 바깥쪽과 가까워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3,4일 간격으로 살충제 방제를 시작으로 첫물 고추를 수확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 고추 농사다.
모든 농사가 그렇듯이 벌레와의 싸움은 늘 무승부다. 아니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는 것은 벌레들은 매년 그들만의 내성을 쌓고 인간은 또 그 내성을 방어하고자 또 다른 약제를 개발한다.
김장배추와 무를 심은 곳에도 초반에는 벌레들이 앗싸 하며 닥치는 대로 갉아먹어댔다.
배추는 속을 다 갉아먹으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기도 했다.
벌레약을 며칠 간격으로 방제를 했지만 그 뒷날에는 어김없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약 효과가 있으려나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도 그 후로는 더 이상 갉아먹지는 않았다.
어쩌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잎이란 잎은 벌레들도 달려든다는 것은 그만큼 맛있다는 이유일까.
고추 따야 하는데 하며 발을 동동 구를 때 설마, 다 먹겠어. 남으면 먹고 안 남으면 할 수 없고.
어머니는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난 벌레에게 양보하고 싶지가 않다.
올해만큼은 지키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내가 넉넉하지 않으니 더 그런지도 모른다.
밭이 좀 더 풍성하고 넘쳤다면 더 가지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을까. 또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더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애쓰는 것처럼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아찔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누에 농사를 지었다.
엄마가 선반 위의 누에에게 뽕잎을 늘어놓는 작업을 하면 나는 등에 업혀서 가만있질 못하고,
꿈틀거리는 누에를 집어 들고 놀았다고 했다.
윽, 징그러. 정말 그랬단 말이야. 조그만 고추벌레보다 덩치도 큰 누에를 손에 넣고 놀았다니 믿을 수 없지만 어쩌면 그 시절에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가 따로 아이를 봐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에 엄마 등에 업혀서 노동을 같이 해야만 했으니까.
유아기의 아이들은 어쩌면 겁이 없을 수도 있고 벌레에 대한 정확한 느낌을 가지지 못하니까 그냥 친구 대하듯이 볼 수도 있다.
몇 년 전 감자밭 수확을 할 때 어린 조카가 커다랗고 긴 지렁이를 보자마자 신기한지 손으로 집어 들려고 한 적이 있었다.
이뻐, 이뻐. 뭐가 연신 이쁘다는지 그때 곁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에그, 만지면 안 돼하니까 왜 안 돼? 하고 손자가 되물었던 기억이 있다.
뭘 몰랐을 때처럼 벌레나 긴 지렁이를 대하고 싶다. 하지만 쉰이 넘은 지금도 꿈틀대는 모든 벌레들은 적응이 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