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저녁 밥상으로 이상한 반찬이 상에 올려졌다.
익히 알고 있던 나물 반찬들은 주로 봄나물이 많았는데 이것은 갓 뜯어 온 것을 데쳐서 고추장에 무친 것이 보기에는 영 젓가락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어른들은 큰 그릇에다 넣고 비비더니 한 숟갈 뜨고 난 뒤 바로 이 맛이네 하는 표정이었다.
뭔데, 뭔데 그렇게 맛있어요?
어린 시절 내 여름날 밥상에는 늘 그렇게 인도가 원산지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도 나물 반찬이 있었다.
바로 '비름'이라는 잘 못 발음하면 비듬이 되는 여름 나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잡초라고 규정짓고 없애야 할 풀의 범주에 넣어 버린다.
한동안 제초제를 치기 전에 밭을 둘러보다가 커다란 비름 나물이 자란 게 있으면 어머니는 몇 포기 뽑아다가 밥상에 올리곤 했었다. 보통 비름은 참비름, 쇠비름, 털비름이 있는데 주로 참비름과 쇠비름을 데쳐서 먹는다.
한 번은 무쳐 먹을 맛이라고. 한약방을 운영하셨던 둘째 삼촌은 비름나물을 자주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하셨다.
'잎 속에 들어 있는 수은은 수은중독의 위험성도 있다. 다만, 수은은 휘발성이 강하므로 삶아서 먹으면 그 잔류량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네이버-
고추모종을 심고 얼마 뒤 가보면 모종 사이로 풀이 송송 제법 자라나 있다.
난 가끔 이름을 붙이기를 풀 몇 종 세트라고 한다.
주로 3,4종 세트로 이루진 풀은 대표적인 것이 우선 비름과 바랭이, 방당생이(어머니가 가르쳐 주었는데 사투리인 듯)가 주를 이룬다.
그중에 '세계 최악의 잡초 11위'라는 바랭이는 유독 별난 잡초다.
'바닥에 붙어 기면서 자라는 풀' 혹은 '밭에서 자라는 풀'이라는 의미가 바랭이로 변화했을 것이라는 설이 설득력이 가장 높다고 판단된다.
참고로 땅바닥에 딱 붙어서 자라는 모양이 게와 비슷하다 해서 영어권에서는 'crabgrass'라고 불리며, 우리나라 말로 치면 '게풀'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팜 앤 마켓 매거진-
바랭이는 때를 놓치면 손으로 잡아 뜯기가 매우 어려운 잡초 중 하나다.
호미나 모종삽을 이용할 수도 있으나 성질 급한 사람에게는 그냥 장갑 낀 손으로 하는 편이 빠르다.
그리고 관리를 하지 않으면 사방팔방 뻗어나가는 추진력은 상상이상이다.
한도 안 망해버린 고추 하우스를 방치해 두었더니 완전히 풀밭, 그 자체로 변해 있었는데 그중에 바랭이가 과히 압도적이었다.
거짓말 안 하고 내 두 팔을 벌릴 만큼 뻗어나간 줄기는 한 줄기씩 그 자리에 또 다른 뿌리를 내린다.
차라리 위로 커가는 잡초가 낫다는 생각을 그때 잠시 해본 것은 처음이다.
진짜 글로벌 잡초라고 하더니 모든 식물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치밀하고도 고도의 기술력을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
참깨 어린 모종 곁에 자란 것을 잘 못 뽑다가는 모종과 동시에 뽑힐 수도 있을 만큼 잔뿌리는 수도 없이 달렸다.
'쌀을 주식으로 하지 않는 네덜란드에 가 볼 기회가 있다면 와게닝겐 농과대학을 한번 방문해 보길 권한다. 시험포장 옆을 지나다 보면 벼와 비슷한 식물이 오밀조밀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에선 제거해 버려 할 적이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품종을 선발하기 위한 유전자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지금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뭄이나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하면 식량 대신 외떡잎식물의 씨를 먹었다고 한다. 씨앗을 먹는다는 것은 둘째이고 그 작은 알갱이들을 언제 다 모았을까 생각하면 녹색혁명 이전의 삶은 상당히 고달팠을 것만 같다. 풍성하다 못해 넘치는 음식으로 식탁을 차릴 수 있는 요즘에 살고 있으니 복 받은 삶이다.'
-새전북신문/최선우의 웅덩이와 농생태 이야기-
그리고 노지 고추밭에는 내 키만큼 풀들이 자라고 있다.
예취기로 풀을 제거하고 제초제를 사용해야 할 만큼 일이 늘어나서 며칠을 고생한 적이 있었다.
고추 지주대에 매어 놓은 줄을 일일이 제거하는 것도 만만찮았고, 혹시 몰라 장화를 신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나중에 남동생의 예취기에 몇 마리의 어린 뱀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니, 긴 장화를 신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일부러 죽인 것은 아니고 풀을 베다 보니 미처 피하지 못했다)
몇 년 전,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 뱀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면허증이 없어서 자전거로 밭을 오갔었는데 자전거에다 보냉백을 걸어 두고 밭 작업을 했었다.
그리고 물을 먹기 위해서 보냉백을 열었을 때, 엄마야!!! 세상에나 뱀이 그 안에 떡하니 들어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방 지퍼를 잠그지 않고 열어 두었던 모양이다.
기겁을 하고 가방을 내 던지니까 뱀이 슬그머니 나오는 것이었다.
순간 살려 주어도 되는데 (지금 같아서는 그리 당황하지 않고 살려 보내줬을 것이다) 그때는 너무 놀라 작대기로 마구 두드렸다.
아, 지금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아무튼 사진을 찍어 둘 만큼 저 세상으로 간 녀석은 그렇게 느긋하게 나의 보냉백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늦가을 지금쯤 뱀은 한창 독이 올라 있을 때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습관처럼 밭 작업을 할 때는 늘 긴 장화를 착용하니까 가끔은 그냥 신발을 신고 갈 때는 왠지 허전하고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