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불안이 가득한 나 (2)

게으름 아니고 질병

by 연태리


나는 불안의 정체를 깨닫기까지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이제서야 보니 대학 시절부터 '공황장애'와 '우울증' 증상이 빈번했는데,

나는 그게 질병의 증상인지 조차 몰랐고, 그게 모두 '불안'에서 시작 된 사실에도 당시엔 무지했다.


원인을 모르니 메타인지는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나는 왜 끈기가 없을까."

"결국 성취하지 못하는 실패한 인간이구나."

병의 증세를 인격의 결함으로 착각한 대가는 가혹했다.

나는 나를 미워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데 청춘을 바쳤다.


주변의 반응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우울증이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곧잘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몇 개인데 잠수를 타?"

그건 마치 "나이가 몇 개인데 암에 걸려?"라고 묻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남편의 친구가 잠수를 타는 건 철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파서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암 환자에게 "노력해서 암세포를 없애라"고 하지 않듯,

잠수를 타는 친구에게 필요한 건 훈계나 노력이 아니라 치료인데 서로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나도 그 시절을 똑같이 지나왔다.

해결책은 내 게으름을 뜯어고치는 노력이 아니었다.

전문의와의 '상담'과 '약'이었다. 피부병이 생기면 연고를 바르듯 말이다.

정신의학과 선생님과의 상담과 처방해 준 약은 나에게 매일같은 평화를 선사했다.


거짓말처럼 날뛰던 감정의 파도가 잠잠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를 괴롭히던 그 거대한 자기혐오와 무기력이, 고작 호르몬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그것은 내 영혼이 썩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그저 세로토닌 수치의 문제였을 뿐이다.


나의 짜증이 줄자 '노블리스오블리주' 급으로 여유가 찾아왔다.

나는 상냥한 엄마와 아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타인의 불안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는 다르게 '불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남편은 봉준호 감독님과 7년간 함께 일한 스텝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은 지갑에 항상 현금을 가득 채워 다니고,

지폐 속 인물의 머리 방향까지 한쪽으로 맞춰서 정리한다고 한다.


내 생각에 그에게 불안은 "망하면 어쩌지?"라는 공포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강력한 통제 기제다. 그와 같은 사람은 불안하기 때문에 0에서 10까지 모든 변수를 장악하고, 결과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창의적 성취를 이뤄낸 것이다.


"봉준호 성공의 비밀 알고보니 '불안증'!" 이런 기사야 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사실 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듯이, 나는 봉준호가 아니다.

나의 경우 불안은 통제의 동력이 아니라, 나를 마비시키는 독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불안이 '디테일의 원천'이지만, 나에게는 빨리 끄지 않으면 번지는 '산불'이었다.

약을 먹고 난 후에는

습관적인 '한숨', 이유 없는 '짜증', 그리고 나를 침대에 묶어두던 '무기력증'까지 모두 줄어들었다.


노이즈가 사라지자, 그제야 내 뇌는 본연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불안을 방어하느라 낭비되던 에너지가 보존되자,

비로소 나의 창의력이 폭발할 '제대로 된 나만의 시간'이 확보된 것이다.


이제 나는 불안과 싸우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건 짧고 쉽게 얼른 손아귀에서 통제해버리고 그 이후의 달콤한 시간을 맞이한다.

만들고, 기획하고, 쓴다.

이것이 내가 20년 만에 찾은, 불안한 내가 창의적으로 사는 유일한 해법이다.

그리고 불안과 평생 만만하게 동행하는 법을 깨달은 시간의 기록이다.

작가의 이전글분노와 불안이 가득한 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