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도 가득한 나
사춘기 시절이 생각난다.
난 집에 돌아오면 오늘 느낀 불만을 엄마에게 끊임없이 털어놓곤 했다.
뉴스를 보면서도
드라마를 보면서도
나는 항상 불평했다.
정확히는 분노했다.
이 놈의 세상에.
당연하다. 사춘기였으니까.
근데 사춘기가 지나서도 나아지질 않았다.
그렇다. 나는 그냥 분노가 많은 사람이었다.
사주에 '상관'이라는 글자가 중요한 자리에 있는 걸 보니그럴만도 하다.
조선시대에 '상관'격은 벼슬을 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윗사람을 들이 받는 운명자이기 때문이다.
혁명가까진 아니어도 반골기질이 다분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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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수까지 무사히 마치고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들어갔다 .
세상을 다 가진 기분으로 이 노력과 성과로 엄청난 성취를 이룰줄 알았다.
근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불안과 공황장애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건 내가 분노를 털어 놓던 부모님이 거꾸로 나에게 어릴 적 부터 심어준 불안감 때문이었다.
여러가지 흔한 사정으로 큰 딸에게 크고 깊은 불안을 사사했던 것이다.
나는 그걸 아이를 낳고서야 '증세'로 깨닫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상담, 치료, 그리고 든든한 가족들 덕분에
증상을 즉시 감소시키는 나만의 방법을 터득해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분노와 불안은 종말이 없다.
요즘 암 환자는 암과 함께 평생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한다.
그렇다,분노와 불안에 만만한 동행은 있다.
근데 내가 가만히.. 내 생겨먹음과 인생을
돌아보고 또 보고 자주 보고 생각하고 회상하고 꿈에서도 무의식에서도 또또또 생각할수록.
분노와 불안, 즉 앵거와 앵자이어티 !!
이 두개의 감정이 나의 창의성과 진취에 엄청나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걸 발견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사람, 관계, 사업, 계약 등으로 분노하는 일이 많아졌다.
분노의 원인이 더욱 직접적으로 내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10년 전엔 몇달 며칠을 충격을 받아 누워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바로 '노션'과 '챗gpt'를 켜고 내가 벌이고 싶었던 일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그 중에 가능한 일들을 골라 실행한다.
'복수는 내가 잘 사는 원천의 힘 '이 된 시대에 맞게
모든 분노의 힘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창작의 힘을 솟게한다.
그렇난 나는 나도 모르게 항상 그랬었던 것이었다.
재수를 결심한 날은 꿈이 없다 무시를 당한 날이었고,
처음 해보는 일을 위해 과감히 짐을 싼 날은 왕따를 당한 날이었다.
남편과 결혼 날짜를 잡은 날은 상사에게 무고하게 갑질을 당한 날이었고,
책과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한 날은 부당해고를 당한 날이었다.
무시무시하게 소모당하던 어떤 날엔 내 회사를 만들고, 남의 회사를 그만두었다.
당사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대신,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하면 한 발짝 그들보다 더 나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고, 계획했고, 실행했다.
(저 문제 많은 사람 아니예요. 그냥 경험이 많아서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좋은 내 편이 더 많음! )
분노를 갈아서 내 공장에 넣고 안에서 그걸 창의적 에너지로 바꿔 나의 창의 공장을 돌리기 시작한거다.
단,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다.
이 분노는 부분 타인의 어택을 '쫌 씨게' 받아야 생긴다는 거다.
이 단계를 견뎌야 한다.
먼저, 크게 화날만한 엄청난 일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