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지 못해도, 종

by 이설

관상수시
觀象授時
(보다, 점치다 觀/꼴, 모양 象/주다 授/때 時)
하늘을 살펴 때를 알려주다.
임금은 천명((天命)을 받아 땅을 다스리는 사람이니
임금이 때를 알려주면 백성은 그대로 따르라.

태조는 새 왕조가 들어섰다는 것을 후세에 전하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를 깨닫게 할 목적으로 큰 종을 만든 뒤
권근에게 종을 만들게 된 경위와 이름을 짓게 하였다.
​[장영실 테마관]-장성희(실학박물관 학예사)


태조는 종루를 짓고 큰 종을 달아 한양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립니다.
태종은 종루를 운종가로 옮기지요. 오늘날 보신각이 있는 자리입니다.
세종은 아버지가 지은 종루를 헐고 같은 자리에 다시 짖습니다. 종루 아래로 말과 수레가 다닐 수 있도록 했지요.
세조는 새 종을 만들어 종루에 겁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한 방법인 통제(統制)를 수시(授時)로 했던 모습이 보이네요.

200년이 흐른 1592년
임진왜란
종루에 불이 나서 세조 때 만든 종은 사라집니다.
하지만
종을 새로 만들지는 않아요. 있던 종을 겁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종이 이 종이예요. 어디에서 가져왔을까요?

절에 가면 '사물(四物)이 있습니다.
법고(法鼓-북), 목어(木魚-물고기 모양 나뭇조각), 운판(雲版-구름 모양 쇠) 그리고 범종(梵鐘)이지요.
온갖 나쁜 일들로 가득한 세상을 돌고 도는(윤회/輪㢠 하는) 모든 목숨들을 건져 얽매임 없는 곳으로 이끄는 물건들입니다.
법고는 땅 위에서 사는 목숨들을, 목어는 물속에서 사는 목숨들을, 운판은 하늘을 나는 목숨들을 돕습니다.
지옥까지 소리가 닿는다는 범종은 땅속 목숨들을 위하여 울려 줍니다.

원각사(圓覺寺)라는 절이 있었어요. 연산군이 연방원(聯芳院)이라는 기방(妓房)으로 만들어 버린 절입니다. 연산군이 중종반정(1506년)으로 밀려나고 6년 세월이 흐른 1512년 중종은 원각사를 아예 헐어 버리죠. 이 원각사에 있던 종이 숭례문을 거쳐 선조 때 종루에 걸리게 됩니다. 예, 이 종이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실]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보신각 옛 동종'입니다.

절에서 지옥에 닿는 소리를 품었던 종이
도시에서 때를 알리는 소리를 품었다가
어떤 소리도 품을 수 없는 거죽으로 우리를 기다리게 되었네요.

종루에 '보신각(普信閣)'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고종입니다.
'보신각 옛 동종'이니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이름이 붙은 뒤에도 종은 일을 했다는 얘기군요.
보신각에 새 종이 걸린 해는 1988년입니다. 그러니까 새해가 되면 울리는 보신각 종은 현대에 만들어진 종입니다.
새해를 알릴 소리를 품고 365일 내내 묵은해와 새해가 만나는 0시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 종이지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시면 야외 전시실도 돌아보셔요. 걷기에도 좋고, 탑과 불상 부도 등 볼거리도 많습니다.
'보신각 옛 동종'도 만나 보시고요.


조선 임금은 파루(罷漏)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경삼점(새벽 4시쯤)에 종을 33번 쳤는데 이를 파루라고 해요.
제석천을 이끄는 33천(天)에게 고하여 나라의 하루가 편안하기를 빈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한양 성 큰 문들을 열고
백성들에게
'이제부터는 돌아다녀도 되니라.'
알리는 종 치기이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한양 성 큰 문들을 닫고
'이제부터는 돌아다니지 말거라.'
하는 종 치기도 있었겠네요.
인정(人定/오후 10시쯤)입니다.
28번 치는데 이는 28수(宿) 별들에게 밤이 안녕하기를 비는 뜻이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