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4년 조선, 중종 치세(治世) 29년. 그 해 이환이 태어났다. 이환은 이복형 인종(재위/1544~1545)이 즉위 8개월 만에 승하(昇遐)하자 조선 13 대 임금이 된 '명종'이다. 12 살에 임금이 되어 어머니 문정왕후 윤 씨 등쌀을 견뎌야 했던 그는 34 살에 이 세상을 뜬다. 부인이 7 명이었느냐 자식은 아들 하나였다. 하지만 그 아들 순회세자는 13 살 나이로 죽었으니 대를 이을 자식은 남기지 못했다. 그럼 누가 대를 이었느냐, 명종에게 이복동생이 되는 덕흥군 이초의 셋째 아들이었으니 조선 으뜸 찌질이 임금으로 널리 알려진 선조(재위/1567~1608)이다.
명종(재위/1545~1567) 대에 이름을 떨친 도둑으로 임꺽정이 있는데 도둑은 나쁜 놈이라는 상식을 깬 인물이다. 어떻게? 합법인 듯 합법 아닌 합법 같은 도둑질을 하는 관리들 일터인 관아를 털어 그 일부를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주는 불법인 듯 불법 아닌 불법 같은 짓으로. 이름이 義(옳을 의) 賊(도둑 적) '의적'이라는 애매한 단어랑 짝을 이루며. 이 시대 조선은 임꺽정만 도둑이랴 나도 도둑이라며 도둑이 들끓었고, 오랜 흉년으로 거지가 늘어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남쪽에서는 왜구(倭寇)들이 제 집 드나들듯 했지만 나라는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은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유라시아대륙 서쪽 끝에는 섬나라 영국이 있다. 조선에서 훗날 명종이 되는 이환이 태어난 1534년, 영국 의회는 수장령(首長令)을 통과시킨다. 영국 교회는 로마 교황청에서 분리 독립하고 영국 교회 우두머리는 영국 왕이 하겠다는 선포였다. 이때 영국 왕은 헨리 8세였다.
궁정 화가 '한스 홀바인'이 그린 '헨리 8세' 초상화
헨리 8세는 영국이 중앙집권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사람으로 영국의 절대왕정을 이끈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이다. '숙종과 장희빈'이 우리나라 사극으로 툭하면 살아나듯 그는 영국 사극으로 툭하면 살아난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으며 이혼 한 왕비 중 두 사람은 죽여버리는 행태가 극적(dramatic)이기 때문이다.
조선이 명종, 선조를 거쳐 임진왜란 이후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으로 어지러웠던 시기 유럽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신이라는 단단했던 기둥도, 기존 체제인 봉건제도 흔들리고 있었는데 이는 돈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돈은 더 이상 장원이라는 테두리에 머물지 않았으며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영국은 랭커스터가와 요크가가 화합하여 이루어진 튜터 왕조가 세워졌다. 헨리 8세는 이 튜터 왕조 2번째 왕이다. 그는 봉건 귀족을 규합(糾合)한 아버지 헨리 7세를 이어 강력한 군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틀을 만들고 자기가 틀을 다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들이었다. 자기 뜻을 이어받아 나라를 굳건하게 지켜나갈 다음 왕. 하지만 왕비 캐서린은 딸 메리만을 안겨준 상태였다. 하여, 이 남자 헨리 8세는 다른 여자를 왕비로 만든다. 그 여자는 앤 불린으로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이다.
당시 이혼은 교황청 허락이 있어야 가능했기에 헨리 8세는 교황청에 이혼 신청을 한다. 그때 교황은 클레멘스 7세로 이 일을 미적거리며 처리하지 않는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왕비 캐서린의 조카였기에 헨리 8세 이혼 문제는 교황 입장에서 단순하지 않은 정치외교적 역학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헨리 8세는 '좋아,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난 독립!' 하여 1534년 탄생한 개신교가 '영국국교회(성공회)'이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서울 시청 맞은편에는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라서 교묘하게 찍으면 얼핏 유럽처럼 보이기도 한다.조선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 권력 다툼으로 백성들 삶이 피폐해지던 시기 영국에서 탄생한 성공회는 1890년에 이 땅에 들어왔다.
1534년에 이환이 태어나고, 헨리 8세는 성공회를 만들었다. 조선이 엉망일 때 영국은 종교개혁을 했다. 1534년에서 1890년까지 356년. 역사를 남기며 시간은 흘렀다. 헨리 8세는 중종을 몰랐고, 중종은 헨리 8세를 몰랐다.헨리 8세 이후 영국은 제국으로 나아갔고, 중종 이후 조선은 자기 색깔을 분명하게 만들어 갔다. 한 나라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고, 한 나라는 식민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