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어가는 시간.
1월 1일 아침, 루틴을 마치고 나니 아내와 첫째는 거실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둘째는 아마 방 안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스킨십도 할 겸 둘째 방으로 가서 장난을 쳤다. 간지럼을 약간 태웠더니 "아빠 하쥐마~~" 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두어 번 웃다 보니 갑자기 아들 입냄새가 확 밀려왔다. 크허헛, 생각보다 심하네?
가볍게 한 장난이었는데 아들이 확 짜증을 냈다.
"아아아악!! 왜!! 왜 와서 입냄새 난다고 뭐라 하는 건데!!!"
어라. 이게 이렇게 화낼 일인가.
'아니, 화낼 일일 수도 있지. 어른이라면 그럴 수 있지. 자존심에 상처가 가는 말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다가 퍼뜩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다.
'아, 벌써 5학년. 이제 6학년이 되는 아이구나. 어쩌면 학교에서도 그런 말을 들었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 말이 상처가 될 수도 있었겠다.'
아직 나는 아이들에게 서툴구나.
삐쭉한 마음에 거실로 나와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진우가 어제 저녁을 안 먹고 자서 그런가?"
"아니, 원래 쟤 입냄새가 좀 심해. 근데 예전에는 당신하고 안 친해서 옆에 못 오게 했는데, 요즘에는 좀 친해
지니까 당신이 옆을 갈 수 있게 된 거지."
어? 뭔가 접근이 참신하다 싶기도 한데, 아. 그랬구나. 나 아이들하고 못 친했었지, 참.
신년을 맞아 또 계획을 세웠다. 지금 계획을 보니 내가 발전할 계획들뿐이다.
AI 공부, 주식 공부, 개인 저서...
회사에서 좀 더 나아져야겠다는 공부는 없다. 아무래도 해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니 가족과 함께하겠다는 계획이 없다. 모두 나 혼자 골방에 들어가서 하겠다는 것들이다.
나는 과연 이 공부를 왜 하려고 했을까.
김미경 강사님 말씀을 듣고 감흥을 받아 "죽기 전 가장 상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크다. 내가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랄까. 아마도 나의 자존감이 충만하지 못해서, 그 자존감을 세우는 것이 먼저였나 보다.
근데 좀 다르게 생각해본다.
나 혼자 산다면 이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아니, 살 수 있었을까?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이유는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려 하기 때문일 텐데, 왜 새해에도 가족들과, 아이들과 하는 시간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결국 본질은 나의 행복인데, 이 행복은 관계로부터 오고, 가족 간의 관계가 가장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제 오후,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한 책을 읽어야 하는데"라는 근심이 있는 채로 둘째와 시간을 보냈다.
어릴 때 사두었던 장난감 총이 언젠가부터 거실에 있었던 것 같은데, 우연하게 어제 한두 방 쐈더니 아들이 "게임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몇 번 쏘다 보니 꽤 잘 맞기도 하고, 아들하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다 싶어 한 30분 정도 같이 놀았다. (항상 내가 말하지만, 엄마는 놀아주는 거고, 아빠는 같이 노는 거다)
그리고 나서 저녁시간, 아들이 "아빠 또 하자"라고 했다. 뭔가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말이다.
그렇게 귀찮음을 뒤로하고 다시 또 30분 정도 함께했다. 이번엔 아들이 지쳤는지 "아빠, 아빠도 정확도가 떨어졌네. 다음에 할까?"라고 했다.
그 와중에 첫째는 앞에서 알짱알짱했다. 오늘 오전에 나한테 한 번 혼이 나서인지 짜증은 내지 못하고, 알짱알짱, 나도 같이 놀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사실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이 든다.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나.
첫째, 아까 말한 것처럼 내 시간이 중요했다. 내 공부가 중요했고, 그래야 아들들이 인생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배울 거라 생각했다. 근데 왠걸, 그렇지도 않다. 아들들은 내가 방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그냥 "아빠는 원래..."라고 한다.
둘째, 가끔 세운 계획도 일방적인 내 계획이었다. 가끔 내 한 달 계획을 정리할 때면 "매주 수요일은 집에 일찍 와서 가족과 시간 보내기!"라고 써놨다. 그렇게 써놨지만 지키지 못한 것도 대부분이고, 그냥 나 혼자 생각하고 쓴 거였다. 가족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았던 듯하다. 그냥 이렇게, 내가 시간을 내주면 좋아하겠거니 생각했던 건 아닐까.
셋째, 여행도 아내와 아이들만 간 경우가 많다. 나는 부모님 집에 갈 때나 같이 가고, 강원도 여행이나 가까운 펜션 여행도 아내와 아이들만 간 적이 많다. 항상 아내의 배려를 받고 살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라고.
어찌 보면 정작 내가 나를 외톨이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도 든다.
어제 아들들하고 잠깐 놀아보니 참 고맙고 충만한 시간이었다. 아마 요즘 연휴가 좀 많아지면서 아들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연휴는 끝나고 다시 일이 시작된다. 그러면 다시 또 나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려고 하겠지.
인생의 목적과 가족을 생각해봐야 할 때다. 가족과의 시간을 좀 더 의욕적으로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아빠와 살갑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으니까.
가족과의 시간을 멱살로 잡아놔야겠다. 아들들한테 매주 화, 목은 함께 하자고, 장난을 치든 밖에 나가서 운동을 하든. 요놈들이 아빠를 닮아서인가, 나하고 뭔가를 한 약속은 잘 안 까먹더라. 그러니 멱살을 잡아두자. 나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니까.
오늘 아들들한테 이야기해봐야겠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 7시~9시, 아빠와 하고 싶은 거 정해보자."
아, 제대로 지키려면 화요일을 기본으로 하고 안 되면 목요일에 하자고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