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였으니 다행이지"라는 생각이 부끄러운 이유

나이 듦의 진짜 의미

by 피델

열 시쯤, 한바탕 보고서 리뷰 폭풍이 지나간 후, 옆자리 동료가 말을 걸어왔다.

"책임님, 다음부턴 한 번만 더 확인하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저 어제 정리하는데 참 힘들었어요."


전날, 내가 정리해서 주기로 한 구성원 VOE 자료가 좀 달랐다고 한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Gemini로 정리했는데, 이 녀석이 기존의 다른 비슷한 VOE 정리 메시지와 혼동한 모양이다.


문제는, 전날 정리해서 넘겼던 것도 같은 문제가 있었고, 그걸 다시 정리해서 줬는데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후배였으니 망정이지, 선배였으면 상당히 짜증을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생각을 하고 나서 뜨끔했다. 그때도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서. 후배라서 다행이다... 라고 잠깐 생각한 것 같아서.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런 초보 수준의 실수를 후배한테 피드백 받다니. 아무리 이 조직에 와서 일을 별로 안 해봤다지만, 데이터 검증도 제대로 못하고 보냈다니. 물론 그 친구가 워낙 똑똑한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거였다.


'후배였으니 다행이지...'가 아니고, '선배라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텐데...'가 맞다. 차라리 확 혼나고 죄송하다고 하면 되니까.


그 생각까지 하고 나니, 그 후배 앞에서 무슨 말이 안 나왔다. 눈도 갈 길을 잃었다.


"어... 알았어요. 다음부터 꼭 신경 쓸게요."


간신히 이 두 마디를 내뱉었다. 선후배 관계를 떠나, 동료로서 꼭 해야 할 말이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이 말을 할 용기는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필요한 것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써 보니,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

그냥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고, "선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특징을 생각해 봤다.


첫째, 실력이다.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친구보다 좀 더 노련하게 해야 하고, 경험을 통해 좀 더 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뭐, 못할 수도 있다. 그 친구는 이미 그 일을 수년째 해온 거고, 나는 이제야 처음 하니까. 다만 그 일이 엄청 전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조금만 신경 썼다면 잘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둘째,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인정하는 태도다.

이순(耳順). 예전엔 40이면 생겼다는, 귀가 순해진다는 그 능력을 나는 50이 다 되어가면서도 아직 못하고 있다.

오늘 『관점을 디자인하라』를 읽어보니, 우선 많이 읽고 많이 들으라고 했다. 관점을 인정하려면 우선 더 듣고 더 들어야겠다.


셋째, 나의 잘못·결함·부족함을 인정하는 말이다.

모두 다 알면서도 사실 잘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본 완성형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이걸 잘했다. 무엇보다 진정성 있게 했다.


"어, 그래. 미안하다"라는 말을 잘할 줄 알았다. "어, 그러네~"라는 말을 했다.



그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 나이 50이 다 되어가는데 그게 한 번에 고쳐지겠는가. 다만:

첫째, "인정"의 문장을 자꾸 입 밖으로 내뱉는 것

둘째, 그걸 좀 더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셋째, 그 말이 좀 더 진정성 있게 들리게 하는 것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바뀐 게 아니냐고? 생각해 보니, 두 번째가 되어야 세 번째가 되는 것 같아서 그랬다.)


마이너스 인간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후배에게 그 말을 듣고 나서 사실, 첫마디가 "변명"이었다. 여전히 자기 방어기제가 나왔다.


무슨 말을 해야겠다 싶기도 했는데, 바로 나오지는 않더라. 그래도 다행히 "미안해요, 다음부터는 신경 쓸게요"라는 말을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변명만 더 늘어놓지 않아서 다행이다.



자, 그럼 이제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솔직히,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보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인정받는 게 기분이 더 낫다.


어? 그렇네?

인재육성팀에 있을 때 항상 후배들에게는 "전문가로서" 인정받았다. 나, 못하는 사람 아니야.

좋은 선배가 되어보자. 그것이 나의 인생의 방향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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