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들이대는 가혹한 잣대

[7화] 너와 나에게 하고픈 사과말

by fiely

어제는 한 달에 한번 선생님과 상담통화를 하는 날이었다.

솔직히 매번 미룰 수 있는 핑계는 수백 가지나 되지만,

미뤄도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 그냥 친구랑 이야기하듯 가볍게 마음먹으려 한다.


좀처럼 나오는 뜬금없는 눈물도 이제 잘 나지 않고,

최근 여행도 다녀오고, 연말이고, 최근 즐거웠던 근황들 몇 가지들을 꾸역꾸역 기억해내

노트에 적어놓고 통화를 시작했다.


"최근에 국내여행을 다녀왔는데 모처럼 하얀 눈을 실컷 봤어요.

숙소에 고립되다시피 했지만, 눈 덮인 산과 온통 눈으로 둘러싸인 바깥세상이 좋았어요.

너무 예뻤고 아름다웠어요.

눈이 내리는 소리는 '토닥토닥'처럼 들리더라고요.

...

그런데 그 하얀 눈에 푹 파묻혀 흔적도 없이 제가 사라지면 좋겠다 생각을 했어요.

더 정확하게는,

어떤 이유로 제가 사라질 수 있는 일이 생기면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차-

나는 분명 좋은 감정들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무심코, 내 본심이 나왔다. 수개월간 상담을 하며, 나의 상태는 여전했다.

오히려 더 미쳐버리지 않은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 사실, 제가 기억상실이라도 걸려서 그 일이 제 머릿속에서 지워지거나-

그 일이 없었던 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저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그러자 선생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다.

" 누구도 당신을 비난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도 모르고, 관심 없는 일이에요.

지금까지 당신은 힘들어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서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너무 스스로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네요. 아직.

...

만약, 당신과 친한 친구가 A 씨가 당신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말을 해줄 것 같아요?"


아- 그 때부터,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흐르는 이 눈물은 무언의 해소라기보다 깨달음과 미안함에 더 가깝다.


"일단은 꼭 끌어안아줄 거예요. '너무 힘들었지. 괜찮아.' 하면서요.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아요.

'그거 사실 별거 아니고, 시간 지나가면 다 희석될 일이잖아.

그리고, 어느 누구도 너를 비난할 수 없는 일이야.

지금 잠시 움츠려있는 시간에 마음껏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너를 자책하고 너에게 쓸데없는 기준을 들이대지 마.

왜 너를 토닥여줘야지, 너 스스로를 더 상처 주는 거야. 이렇게 젊고 예쁘잖아.'라고 말이에요"


그리고는, 끊임없이 A에게 연락하고,

나와서 커피 마시자 하고, 어디 맛있는 네가 좋아하는 초밥집 같이 가자 할 것이다.

그리고 무슨 영화 개봉했는데, 이거 꼭 봐야 한다 하면서

억지로 억지로 싫다는 사람을 불러내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정말 짜증날만큼 한심한 수개월을 지낸 것 같다.


위의 '너'를 다 '나'로 바꿔서, 나에게 이야기해 주고 나에게 행해줘야 했어야 했다.

왜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나 스스로를 위해 해줘야 하는 위안을 하지 못한 채

나에게 더 가혹하고 쓸데없이 아프기만 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는가.


그 일이 없었다 할지라도 혹은, 그 일에 대한 과거를 짊어졌다 할지라도,

모두 나 자체다. 그 사건의 유무로 나라는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왜 삶을 살아가는 이유마저 부정해 버렸을까.


이런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며,

티슈한통을 다 써버릴만큼 눈물이 흘러넘쳤다.

너무 울어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스스로를 더 보살피고 아껴줘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아마, 수개월간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들을 계속해주셨겠지만,

내가 이제야 약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는

그 쓸데없는 잣대를 가까운 가족에게 들이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때 거실 한편 사진 속 아이얼굴이 너무 밝아서, 다른 티슈 한통을 다 써버렸다.

또 다른 파노라마가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고,

나의 못남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부정하고

나의 행동과 말이 얼마나 뻣뻣하고 날카로웠을지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부정한 시간에 대해, 그런 행동이나 말이 은연중 묻어났을 시간들에 대해,

나의 아이, 남편 그리고 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사과하고 싶다.


" 부정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부정하며 살아와서 미안해.

이제는, 나 자신과 너라는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며 살고 싶어.

그동안 너무 미안했어. "



미안함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한 마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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