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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프로세코 Aug 10. 2022

중흥사에서

생일은 온전히 나와 대화하는 시간으로


‘말을 아끼고 저절로 그러함에 맡겨라.’ - 노자


34살 생일은 절에서 보내기로 했다. 딱히 마음의 번뇌가 굉장한 것은 아니었으나 고요한, 내게 집중하는 시간으로 생일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기엔 산속이 딱이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생일에 약속을 잡지 않기 시작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지인들은 지레 생일엔 이미 무언가가 있겠지 하는 마음에, 배려에 생일을 부러 피해 만날 날을 정하는 것이다. 오늘 잠깐 얼굴 보러 온다는 친구를 제외하고는 별 일이 없었다. 이런 변화가 으레 반갑다.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생일을 화려하게 보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나만 그런가) 절에서 홀로 생일을 보낸다는 것이 처량해 보일 수 있으나 한 편으론 온전히 나를 위한,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낭만적인가.


엄마와 아침 일곱 시에 논밭길 운동을 했다. 엄마는 걷고, 나는 달렸다. 구름이 가득 낀 것이 비가 올 듯 말 듯한데 이런 날씨가 운동하기에는 반갑다. 결국 비는 오지 않았다. 대신 종일 습기 가득한 날이 계속됐다. 평소 달리는 거리보다 멀리 가서 막판에 힘에 부쳤다. 엄마는 양평해장국을 생일 국으로 제안했지만, 이런 날씨에 운동하고 땀에 흠뻑 젖은 후에는 콩국수가 딱이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양식을 차려주시는 시장 안의 식당에서 엄마와 서리태 콩국수를 먹었다. 국수를 한 젓가락 하며 엄마가 들려주는 나의 탄생 비화를 들었다. 매 년 듣는 것 같으면서도 매 년 새롭다. 엄청난 폭염에 엄마는 혼자서 조산소까지 가 산파의 도움으로 나를 낳았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위험하게 들리는 이야기지만 옛날엔 집에서도 아기를 낳았으니까. 언니도 조산소에서 낳았는지 알았더니, 언니는 병원 출신이었다. 오늘 처음 알았다.


“역시~ 나만 나만 시작부터 빡세.”

농담을 던졌다. 그래도 그 덕에 지금처럼 중심을 잘 잡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그것마저도 감사하다.

이어서 궁금했던 사소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엄마는 언제 내 성격이 처음으로 보였어?”

“너 5학년 때, 일기장에 욕 써놓은 거 봤을 때. 얘가 내가 생각한 그런 고분 한 성격이 아니구나 싶었어.”


강압적인 집안 분위기에 감정이나 의견 표현을 못하고 자라고 있던 어린 나도 어딘가 해소해야 하는 구멍이 있어야 하지 않았겠냐고 해명을 했다. 아까는 더워 죽겠더니, 다 먹고 나니 온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시원하고 깨끗한 생일의 첫 끼였다. 절로 떠나기 전, 엄마한테 사랑하고 고맙다고 안아주고 뽀뽀를 했다. 엄마도 내게 뽀뽀해줬다.


중흥사에서 저녁 공양은 시원한 어묵탕이 나왔다. 산에서 기른 것 같은 호박무침과 장아찌 우뭇가사리와 김치로 이루어진 소박하고 깨끗한 한 끼였다. 멜론과 떡도 있었다.


트레일 러닝 훈련으로 매주 오르는 북한산인데, 산사에서 하루 지내려고 하니까 이상하다. 이 산골에서 내려가면 번쩍이는 서울 시내가 나오는데. 멀리 가지 않아도, 내 눈앞에 있는 풍경과 마음이 중요하니까. 나는 어디에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행운이는 후덕하게 생긴 통통한 진돗개이다. 가까이 가려고 하면 겁이 많은지 쪼로리 도망을 가버린다. 저녁예불 시간에 절하는 법을 배웠다. 손과 팔, 발과 다리, 머리 이렇게 몸의 다섯 부위가 땅에 완전히 닿는 절이다. 일어서기 전에 부처님이 디디고 올라설 수 있도록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양 귀에 붙인다. 스님께서 말해주시길, 사실 그 부처는 자기 자신이며, 나 자신을 올려주는 것이라고 한다. 마음을 울리는 말이었다.


올해 생일의 책은 쉬운 천국과 싯다르타이다. 유지혜 작가의 글은 나의 별 볼 것 없는 여행의 경험도 글로 술술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주고, 싯다르타의 번뇌의 해탈 과정은 내가 여기 지금 여기에 왜 왔는지 묻고 답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가 깨달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주인공인 나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서부터 끊임없이 마음을 닦으며 노력한 나날들. 그것이 해탈의 길이었다. 오늘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고, 누구든 자기 마음에 모든 해답이 있다는 것 마음이 모든 것이라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불교 하면 많이들 들어봤을 법한 윤리 시간의 불교의 정의이지 않나. 수없이 들었던 말을 이제야 마음으로 이해한다. 이 진리는 수행하지 않으면 맹목적 믿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종교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의 긴 경전도 한 글자로 요약이 된다. 바로, 마음-심, - 心.


아침에 일어나 예불을 드렸다. 아침 공양을 드리고,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어떤 예술을 하던 작가들이 레지던시에 들어가는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일까? 단순한 곳에 있어서인지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다. 일단 날 것의 글은 그렇다. 일기장에도 두 바닥을 적었고, 한참 동안 미루어두었던 여행기도 이어서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러다 잠깐 잡생각이 들 때면 고개를 돌려 저 너머의 산 능선을 바라본다. 생각은 단순해야 한다.


매미소리, 새소리, 멧비둘기 소리, 목탁소리, 계곡 물소리 거기에 바람에 흔들려 울리는 물고기 모양의 절 종소리까지. 신흥사에서의 하룻밤은 아마 안개 가득한 산 능선의 수묵과 이 산의 여름 소리로 기억될 것 같다. 효암 스님과의 여운이 남는 대화까지. 생일 축하한다며 꼭 안아주셨다. 그 끌어안음을 포근히 안은 채로 회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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