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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프로세코 Aug 11. 2022

한 번으론 안 되겠니

기내에서 이제 먹지 않는 것


인천 - 런던의 일정. 10년 여행짬, 사상 최대, 최악의 비행을 겪었다. 그것도 서비스 좋기로 소문난 카타르 항공을 처음 경험해보는 날이었는데 말이다. 이코노미까지 챙겨주는 어메니티에 감동받고 메뉴판까지 손수 건네주는 역시 다른 서비스에 놀라고 매콤한 닭갈비를 순식간에 흡입. 이제 좀 자볼까 누워보는데….


 시간쯤 지났을까 예감이 좋지 않다. 난생처음으로 비행기의 personal wellness bag(구토 봉투) 들고 화장실로 쿵쾅쿵쾅 향했다. 자다 일어난 눈이 적응이  되는지 한참을 들여다보고 문을 열었다. 변기를 보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구토. 인간이 가장 처절하며 무력한 순간  하나이지 않을까. 정말 더럽고 고통스럽고 치사하고 그렇지만  모든  게워내어  한다는 그럼 사명감.


불편했던 속을 게워내고 났더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잠이나 자려고 좌석의 ‘in-flight entertainment’ 스크린에서 80년대 리스트를 틀어 놓고 헤드폰을 걸었다. 피곤하니까 잠이 쏟아지다가도 이상한 느낌이 또 <훅>하고 속에서부터 치밀고 올라온다.

'이거 이거 보통 놈이 아니다'


또 화장실로 직행했다. 변기 뚜껑 문을 열기가 무섭게…. 덕분에 오늘 밤 양치는 무려 세 번이나 했다.

보통 멀미가 아니라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론 한번 게워내고 잘 쉬지 않나.


내 좌석에 기운이 안 좋은 것 마냥 돌아가 앉기만 하면 속이 안 좋아졌다. 세 번째 닭갈비를 시원하게 서운하게 다 쏟아내고 정신을 겨우 붙잡았다. 이제 반밖에 안 왔는데 어떻게 경유지인 도하까지 5시간을 이렇게 견딘단 말인가. 몸이 힘드니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지금 이 고통만 아니면 돼. 탄산수와 물을 받아가지고 한참을 서있다가 (서서 있으니 조금이나마 나았다.) 비장하게 각오를 하고 이 괜찮은 상태가 쭉 지속되길 바라며 자리로 돌아왔다. 가방의 파우치를 뒤져 수면제를 찾아 한 알을 조금의 물과 삼켰다.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멕시코에서 런던으로 돌아가는 덴질의 sick 영웅담이 생각나며 공감이 됐다. 말로 해줄 수 있는 최대한 위로와 공감은 해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직접 격고 나니 이렇게 생생할 수가 없다. (덴질은 그 비행에서 나보다 더 심한 배탈을 겪었다.)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니 원인을 알고 싶어 진다. 정말 무엇이었을까. 생전 없던 단순 비행기 멀미였을까. 닭갈비 식중독이었을까. 함께 마신 레드와인의 저주였을까.

당분간 비행기에선 매운 음식과 알코올은 피하게 될 것 같다. (특히, 매운 음식)  수면제의 도움으로 서너 시간 자면서 오니 이제 도하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당장의 이 괴로움이 없어지니  한걸움 한걸음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 새로운 여정과 모험이 기대된다. 좁디좁은 기내 화장실의 변기통 부여잡고 있는 동안은 머릿속에 공주대접을 받으며 침대에 누워 쉬는 환상 밖에 들지 않았다. 이 비행기에는 행복하지 않은 아가들이 많다. 밤 비행 내내 소리를 삑삑 질러댄다. 무서워서 아침 식사도 건너뛰었는데, 그래도 살겠다고 허기가 올라온다. 인간의 몸이란, 너무 정직해! 그래도 아직은 무리이다.


당황스러웠던 고군분투. 도하에서 런던 가는 비행에서는 별 탈 없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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