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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프로세코 Dec 02. 2019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지만 싫지 않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결국, 가해자를 돌보게 되어있다.



나는 아빠가 죽기 전에 이런 날이 또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 밥상을 던졌다. 아마 못해도 60번 쯤을 됐을 거라 생각한다.

'어디 또 한번 던져보려고?' 하는 생각을 하며 두근대는 가슴을 그대로 안고 그 몇 초간을 멍하게 서있었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치워도 되지 않았던 난리의 잔해를 처리했던 것에 대한 억울함과 현재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치워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아빠는 눈이 멀었다. 


매번 신체적 폭력이 동반되지 않아도 그것이 가정폭력이라는 걸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학창시절 내내,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까지, 트라우마 속에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내가 우리 자매가 너무 속상하다. 맞는 아이들도 있는데, 술주정뱅이인 아저씨들도 있는데 그나마 우리 아빠는 그런거는 아니니까... 하면서 스스로를 억지로 위로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가정폭력의 넓은 스펙트럼을 알게 되고 나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 공포, 불안, 초조함 등을 그대로 트라우마로서 받아들이고 나니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된다. 우리 집만 해도 피해자가 잘못했고, 가해자는 아무 걱정 없이 잘 사는 것 같다. 그 흔한 '미안하다'는 사과를 단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결국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나는 그게 너무나 소름 끼친다. 


그리고 지금, 

말기 암환자한테서 가정폭력을 또 당한 이 상황이 가장 싫다. 

이런 집이 또 있을까?


아빠가 암이란 말에, 말기란 말에, 얼마 안남았다는 이야기에 못이긴 척하고 돌아왔다.

똥오줌 수발, 밥수발 수족이 되어서 몇달 간을 간호한 딸한테 왜 저렇게까지 해야할까. 


집에서 홀로 작업을 하며 아빠의 삼시세끼를 차린다.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이 들면서도 정말 많이 귀찮다. 내 일의 흐름이 끊기는 것이 싫다. 밥을 챙겨줘도 이런 저런 투정에 많이 지치고 나는 더욱 우울에 빠진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고, 나를 때리고 겁박주고 못살게 굴었던 인간에게 나는 왜 당연하게 다정해야 하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 사람은 나에게 싫은 감정 표현은 다 하는데 나는 안되는.. 나를 짜증나게 했는데 툴툴 거리지 말란다. 아빠는 아빠니까. 아빠는 남자니까. 권위를 가진 사람만이 감정표현을 할 수 있고 나같은 쩌리는 부정적인 감정표현도 앞에서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내가 왜 왔는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는지가 의문이 들고 그 의문을 갖고 안좋은 생각을 하는 내가 싫다. 동시에 집에 있음으로써 무기력해지고 동기를 잃고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싫어서 자꾸만 내가 나 스스로를 까댄다. 


나도 한번 밥상을 아빠를 향해 던져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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