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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 Aug 21. 2020

급기야 LP를 샀다

소니 턴테이블 불량 교환기

헌책방, 빈티지 원피스, 프라이탁...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빈티지든 구제든 레트로든 암튼 엄마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취향. 엄마는 '노인네 취향'이라고, 남편은 '거지 감성'(...)이라고 한다.


옛날 물건을 좋아한다. 그것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직전에 누군가의 눈에 띄어 다시 쓰임새를 갖는 일을 보고 있으면 벅차다. 예컨대 프라이탁. 먼지 뒤집어쓴 채 산업폐기물로 버려질 트럭 방수포를 가장 예쁜 각도로 재단해 가방으로 만든다. 다시 그 모양의 방수포가 버려져 똑같은 모양으로 잘라 가방을 만들지 않는 이상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 그걸 사겠다고 줄을 서는 사람들. 그런 이야기가 좋다. 나만 재밌나?


그리고 이번에는 급기야 LP를 샀다.


내돈내산 첫 LP 산울림 1집


케이스 뒷면엔 산울림 앨범을 낸 레코드사 사장이 김창완을 처음 본 순간을 떠올리며 적은 글이 있다.


처음에는 대전 중앙시장 '턴턴턴'을 구경 가려 했다. 5만장 넘는 LP가 있고 사장님이 취향에 맞는 LP를 무심한 듯 다정하게 골라주신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서. 하지만 찾아가려고 최근 글을 검색해보니 사장님께서 올해 초 돌아가셨다고...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인데 한참 속상했다. 한 사람이 떠난다는 건 정말 아까운 일이다.


턴턴턴은 문이 잠긴 채 영업을 하지 않은 지 오래라고 해서 중앙시장 내 근처 다른 LP 가게를 들렀다. 거기서 발견해버린 것이다. 산울림 1집.


케이스가 많이 낡아 1만원 깎아주셨다. '울'의 이응자에 애교스러운 돼지얼굴 낙서도 있다. 사장님이 "낙서도 있으니 조금만 받을게" 하셔서 끄덕끄덕했는데 가게를 나온 뒤 남편에게 "사실 나 이 낙서 너무 맘에 들어"라고 털어놨다. 남편은 "너 왠지 그런 거 같더라"며 이마를 짚었다.


LP를 샀으니 LP를 들을 턴테이블도 사야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ㅎ 입문자용 턴테이블로 불리는 소니 LS-PX310BT를 주문했다.


그런데 뽑기운도 없지. 불량품에 당첨됐다.


모터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버벅거리는 모습. 여기서 놀라운 점은 그 사이에 중고나라에서 유재하 1집도 샀다는 것.


처음에는 조립을 잘못한 줄 알았다. 근데 재조립해봐도 재생 속도가 너무 느리고 자꾸 버벅거렸다. 벨트도 자꾸 풀리고.


소니 서비스센터에 접수하자 이틀쯤 뒤에 기사분이 방문해 돌려보시곤 불량 판정. 참고로 소니 제품은 박스에 "개봉 시 반품 불가"라고 적혀 있는데 소니 공식 서비스센터 통해 불량 판정을 받으면 예외다. 구입처에 확인서를 보내면 반품/교환이 가능하다.


그리하야 다시 만난 턴테이블. 두 배로 애틋하다.


재생 중에 찍어서 흔들린 것처럼 나왔다


소니 LS-PX310BT는 블루투스 연결도 되는 모델인데 나는 집에 있는 CD플레이어(이것부터가 노인네 취향이네...)에 물려서 쓴다. AUX선은 턴테이블에 포함돼있다.


지금까지 내가 야금야금 사모은 LP는

- 산울림 1집

- 유재하 1집

- 백예린 1집

- 9와숫자들 1집

이 정도. 아름다운 음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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