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물건을 좋아한다. 그것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직전에 누군가의 눈에 띄어 다시 쓰임새를 갖는 일을 보고 있으면 벅차다. 예컨대 프라이탁. 먼지 뒤집어쓴 채 산업폐기물로 버려질 트럭 방수포를 가장 예쁜 각도로 재단해 가방으로 만든다. 다시 그 모양의 방수포가 버려져 똑같은 모양으로 잘라 가방을 만들지 않는 이상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 그걸 사겠다고 줄을 서는 사람들. 그런 이야기가 좋다. 나만 재밌나?
그리고 이번에는 급기야 LP를 샀다.
내돈내산 첫 LP 산울림 1집
케이스 뒷면엔 산울림 앨범을 낸 레코드사 사장이 김창완을 처음 본 순간을 떠올리며 적은 글이 있다.
처음에는 대전 중앙시장 '턴턴턴'을 구경 가려 했다. 5만장 넘는 LP가 있고 사장님이 취향에 맞는 LP를 무심한 듯 다정하게 골라주신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서. 하지만 찾아가려고 최근 글을 검색해보니 사장님께서 올해 초 돌아가셨다고...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인데 한참 속상했다. 한 사람이 떠난다는 건 정말 아까운 일이다.
턴턴턴은 문이 잠긴 채 영업을 하지 않은 지 오래라고 해서 중앙시장 내 근처 다른 LP 가게를 들렀다. 거기서 발견해버린 것이다. 산울림 1집.
케이스가 많이 낡아 1만원 깎아주셨다. '울'의 이응자에 애교스러운 돼지얼굴 낙서도 있다. 사장님이 "낙서도 있으니 조금만 받을게" 하셔서 끄덕끄덕했는데 가게를 나온 뒤 남편에게 "사실 나 이 낙서 너무 맘에 들어"라고 털어놨다. 남편은 "너 왠지 그런 거 같더라"며 이마를 짚었다.
LP를 샀으니 LP를 들을 턴테이블도 사야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ㅎ 입문자용 턴테이블로 불리는 소니 LS-PX310BT를 주문했다.
그런데 뽑기운도 없지. 불량품에 당첨됐다.
모터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버벅거리는 모습. 여기서 놀라운 점은 그 사이에 중고나라에서 유재하 1집도 샀다는 것.
처음에는 조립을 잘못한 줄 알았다. 근데 재조립해봐도 재생 속도가 너무 느리고 자꾸 버벅거렸다. 벨트도 자꾸 풀리고.
소니 서비스센터에 접수하자 이틀쯤 뒤에 기사분이 방문해 돌려보시곤 불량 판정. 참고로 소니 제품은 박스에 "개봉 시 반품 불가"라고 적혀 있는데 소니 공식 서비스센터 통해 불량 판정을 받으면 예외다. 구입처에 확인서를 보내면 반품/교환이 가능하다.
그리하야 다시 만난 턴테이블. 두 배로 애틋하다.
재생 중에 찍어서 흔들린 것처럼 나왔다
소니 LS-PX310BT는 블루투스 연결도 되는 모델인데 나는 집에 있는 CD플레이어(이것부터가 노인네 취향이네...)에 물려서 쓴다. AUX선은 턴테이블에 포함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