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대한민국 성인식

목요사전11

by 무화과

수능 시험 修能試驗


1.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자를 선발하기 위하여 교육부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시험. 1994년부터 행해지고 있다.


*출처 :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수능은 대한민국 성인식


얼마 전에 서울역 계단을 오르다가 앞서가는 학생의 책가방이 시선에 걸렸다. 가방 옆주머니에는 우황청심환, 지퍼에는 이화여대 열쇠고리. 순간적으로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내일이 수능이구나.' 때린 놈은 기억 못해도 맞은 놈은 기억한다고, 매년 이맘때가 되면 수능 생각에 치가 떨린다.


올해도 수능의 위세는 대단했다. 나는 비행기를 멈춰세우고 출근길 발을 묶는 거야 예년의 유난이지만 코로나19도 미세먼지도 수능은 비켜간다는 데 새삼 놀랐다. 올해부터 12월~3월 노후 경유차 수도권 운행제한이 시작됐는데 수능일에는 단속을 안 했다. 교통 체증을 걱정한 거 아닌가 할 수 있지만 이 단속은 길을 막고 하는 게 아니라 CCTV로 한다. 번호판을 확인해 나중에 과태료를 매긴다. 근데 수능일에는 과태료 부과를 예외로 했다. 혹시 수험생이 타고 있을 수도 있어서라고 한다. 수능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 시험이다(왜 거의냐면 일부 시험은 확진자도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검토 중이다. 하지만 임용고시도 변호사시험도 막는 판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수능은 응시하든 그렇지 않든, 흡족한 결과를 받아들었든 아니든, 어떤 식으로든 생채기를 남긴다. 나의 경우 제법 만족할 만한 성적을 얻어 선망하던 대학에 입학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고작 그 한 번의 시험이 평생 따라붙는 건가' 싶어 징그러울 때가 많다. 대입을 넘어 취업, 직장생활, 결혼, 일상의 만남과 대화까지. 대학 이름에서 자유로운 적은 없었다. 나는 수능을 치르면서 처음으로 세상에는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순응하고 노력해 심지어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야 하는 어떤 질서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저 누리게 되는 유구한 이익과 권력이, 나도 모른 채 스며드는 편견과 배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낡은 질서는 생각보다 게으른 방식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진부하게 말하면, 그렇게 어른이 됐다.


몇 해 전 업무 때문에 수능 시험지를 확인할 일이 있었다. 수험생 필적 감정을 위한 문구는 이랬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나는 그때 작은 위안을 받고 말았다. 해마다 수 만명의 수험생을 좌절시키고 그 중 몇은 스스로 목숨마저 끊게 만드는 시험지를 보고서. 그 시험지가 마치 '결과와 상관 없이 너는 소중해'라고 말하는 듯한 기만을 보면서 위로를 받아버렸다. 우스운 일이다. 피해갈 수 있는 상처를 일부러 입히고서 '이 관문을 통과했으니 너는 대단해' '이 좌절을 버티지 못하다니 너는 어려'라고 온 나라가 행사를 벌인다. 아프리카의 할례가 떠올랐다. 왜 세상 모든 성인식은 고통을 만들어낼까.


수능과 대학이 인생의 수 많은 선택지 중 그저 그런 하나가 되는 날이 올까? 수능일 영어 듣기평가 시간에도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날이. 그런 날이 온다고 세상이 더 정의롭고 공정해질 것인지는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수능의 힘을 뺄 수 있을지도. 분명한 건 그런 날이 오면 책가방에 우황청심환을 꽂고 계단을 오르는 학생이 덜 안쓰러울 것이다. 그의 걸음이 좀더 늠름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성인식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이 유난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자주 생각하려 한다. 그러면 학번으로 나이를 묻는 어른은 되지 않겠지.


사실 수능 즈음 되뇌이는 생각은 고작 이런 것이다. 최대한 적은 이들이 좌절하기를. 상대평가 수능 시스템에서 불가능한 소망인 줄 알면서. 아무튼 성인식은 통과의례이고, 통과한 것만으로도 장한 일이라고 말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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