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일상의 향신료

목요사전12

by 무화과

사랑

명사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5.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6.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사랑은 일상의 향신료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남편과 소파에 파묻혀 넷플릭스를 봤다. 코로나19 핑계로 한껏 게을렀다. 게으를 시간이 충분해 시즌9짜리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mother)>를 보기 시작했다(물론 중도 포기했다). 이 드라마에는 주인공이 첫 데이트에서 "사랑한다"고 말했다가 차이는 장면이 나온다. 소개팅 상대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나 반려동물을 선물하면 안 되듯이, 사랑고백의 무게와 속도에도 상식이라는 게 존재한다.


사람에게 고백하는 사랑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취향이나 물건을 향하는 사랑고백은 다다익선이다. 사랑하는 책과 영화, 음식을 마음껏 사랑하면 일상이 좀더 견딜 만해진다. 작은 사랑들이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있으면 일상의 완성도가 현저하게 높아진다. 말하자면 일상을 완성하는 향신료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나의 일상을 사랑스럽게 만든 것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일종의 연말정산이다.


2020년의 영화 : 두 교황

좋은 영화란 영화로만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로는 재현 불가능한 감동을 주는 영화. 예컨대 <1917>의 원테이크신을 소설로 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호흡이 긴 드라마였다면 원테이크신에 투자한 시간이 그리 압도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두 교황>은 그런 면에서 일견 대체 가능한 영화로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독보적 영화라는 점을 부정하기 힘들다.


2020년의 책 : 알베르트 카뮈의 <페스트>

올해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코로나19겠다. 겨울 초입에 <페스트>를 꺼내 읽었다. 재난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 직업인의 소명에 대해 생각했다. 재난의 징후는 얼마나 사소하고 이후의 일들은 얼마나 거대한지에 대해. 동시에 독서란 얼마나 사치스러운 취미인가 체감했다. 코로나19라고 <페스트>를 읽다니.


2020년의 작가 : 정세랑

하지만 정세랑을 빼놓을 수 없지. 올해 정세랑 월드에 입문해 책을 더욱 맛있게 읽어댔다. <피프티피플> <지구에서 한아뿐> <보건교사 안은영> <옥상에서 만나요> <시선으로부터>를 줄줄이 읽었다.


2020년의 단편소설 : 음복

이럴 거면 뭐하러 '2020년의 책'을 꼽았나 싶지만... <음복>이 너무 좋았던 걸 어떡하나. 질투가 날 정도로 좋은 소설이다. 모를 수 있는 것도 권력, 이라는 평론도 훌륭하다. 신혼여행지에서(!) 남편에게 일독을 권했고 결혼생활에 실용서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의 책방 : 제주도 달리책방

여행을 하면 꼭 그 동네의 작은 책방을 찾아간다. 달리책방은 이런 내게 친구가 추천해준 곳이었는데, 시집을 몇 권 사자 "시 쓰시는 분이세요?" 하고 물었다. "시를 좋아하시나봐요"가 아니라 시를 쓰냐고 묻는 데서 책방의 내공을 느꼈다. 비 내리는 날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던 순간은 올해의 행복 중 하나.


2020년의 운동 : 요가

11월부터 주2회 요가원에 간다. 정신노동자는 육체를 혹사해야 뇌를 비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시간동안 오로지 육체의 작동에 집중하는 경험이 이토록 산뜻하고 상쾌할 수가. 불행한 저녁에도 요가를 마치고 나면 내일을 다짐할 수 있다.


2020년의 여행 : 세부

2월에 필리핀 세부로 늦은 겨울휴가를 다녀왔다. 결혼 전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스냅사진을 찍는다는 훌륭한 핑계도 있었다. 먹고 마시고 수영하고 자고...의 반복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해외여행 막차를 탄 셈이 됐다. 세부에 있는 사이에 신천지 사태가 터졌고 돌아오는 비행기가 결항되는 등 코로나19 확산세를 무섭게 실감했다.


2020년의 요리 : 가지파스타

혜니쿡(유튜브)는 사랑입니다. 요리똥손의 자존감을 높여준 레시피다.


2020년의 짬뽕 : 가파도 봉이네 해물짬뽕

제주도 신혼여행 중 가파도에 들렀다. 인생짬뽕을 만났고 뭍으로 돌아와 그 어디서도 여기에 비할 만한 짬뽕을 맛보지 못했다... 한달에 한번 정도 주기로 남편과 이곳을 그리워한다. 꼭 다시 가리... 방문 당시 오픈 이틀차인가 그랬는데 아마 지금이면 더 맛있어졌을 것이다.


2020년의 유튜브 : 송은이 장항준의 시네마운틴

영화 얘기를 하다 산으로 가는 게 애초의 목적인 콘텐츠다. 팟캐스트 풀버전도 좋지만 유튜브로 보면 장항준 감독의 귀여움을 만끽할 수 있다.


2020년의 노래 : 이날치 - 범이 내려온다

내 안에도 흥이란 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이날치 LP를 한달 내내 돌리고 틈날 때마다 남편과 춤판을 벌였다(지금은 빌리 아일리시, 아바를 거쳐 캐롤로 넘어옴). 올해 턴테이블을 산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샴페인을 먹으면서 캐롤 LP를 듣는 호사를 부렸다.


2020년의 옷 : 아이잗바바

가을 초입에 아이잗바바에서 카멜코트를 하나 샀다. 아울렛에 갈 적에는 결연하게 막스마라 코트를 목표로 삼았지만 역시나 비쌌고 썩 어울리지 않았다. 카멜코트를 사고자 하는 욕구에 들끓어 2시간을 돌아다닌 끝에 물경 70만원을 주고 아이잗바바 코트를 샀다. 올 겨울 피부처럼 입고 다닌다. 패딩 못지 않게 따뜻하고 멋쟁이가 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2020년의 소비 : 결혼식

취향을 때려넣은 스몰웨딩은 떠올릴 때마다 나를 행복하게 한다. 물론 일반 결혼식에 비해 지출은 작지 아니하였지만, 한동안 '머니하이'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지갑을 작게 만들었지만, 인생에 남을 최고의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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