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봐줘야지. 남편과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를 봤다. <나홀로 집에>와 <러브 액츄얼리> <패밀리 맨>을 이미 섭렵했다면 연말연시용으로 권할 만한 영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미국의 한 부부가 올해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기로 한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파티도 열지 않고 트리 장식도 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에 카리브해로 크루즈여행을 떠날 작정이다. 이게 왜 '작정'씩이나 되냐면, 온 동네 이웃들이 이 부부를 인색한 스크루지 취급하며 비난했다가 회유했다가 법석을 떨어대기 때문이다.
남이사 크리스마스를 지내든 건너뛰든 뭔 상관? 하는 건 당신이 한국 사람이라서다.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민족대명절이다. 선물을 주고 받고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확인한다. 주인공 부부는 이 아름다운 전통을 깨는 골칫덩어리인 셈이다.
"이거 완전 우리 얘기네. 우리 스몰웨딩!" 영화를 보다 말고 나는 소리쳤다. 그렇다. 아름다운 품앗이와 두레 전통을 기반으로 한 우리네 관혼상제, 그 중에서도 '언젠가 예정된 수금' 축의금의 유구한 약속을 깬 우리는 직장의 골칫덩어리인 것이다.
"근데... 청첩장 줘도 될까?" 결혼식을 앞둔 직장동료들이 조심스레 물어올 때, 나는 그게 쑥쓰러움의 표시인 줄만 알았다. 몇 명의 동료가 나만 청첩장을 건너뛰었다는 걸 알고 의아하기도 했다. '우리 제법 친했잖아요...' 얼마 전 누군가 조심스럽게 고백하기 전까지는. 그는 내게 말했다. "선배는 스몰웨딩 해서 회사 사람들 아무도 안 부르고 축의금도 안 걷었는데, 청첩장 드려도 될지 고민됐어요." 결혼식을 앞두고 가뜩이나 결정할 것 많은 신부님에게 이런 고민까지 안기다니. 내가 나빴다.
스몰웨딩을 결행할 때 부모님은 난색을 표했다. "그동안 내가 뿌린 돈이 얼마인데!" 귓등으로 들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내 주머니에서 나간 축의금은 그닥 많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어른들의 말은 '뿌릴 돈'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내가 스몰웨딩을 했다 한들 사람들은 여전히 웨딩홀에서 결혼한다. 청첩장도 돌리고, 회사 공지 게시판에도 올린다. 즉, 축의금을 거둬간다.
그래서 후회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이 모든 걸 절감하고 다시 돌아가도 나는 스몰웨딩을 할 것이다. 식순부터 공간, 시간까지 오로지 내 취향껏 꾸리는 결혼식이란 대형 웨딩홀에선 불가능하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스몰웨딩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해줄 말이 하나 더 늘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기 전에 생각하시라. 당신은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