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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객 200명짜리 스몰웨딩

작지 않은 작은 결혼식

by 무화과

"어떤 프로포즈를 받고 싶어?" 이런 질문에는 떠오르는 그림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어?" 물으면 내 답은 분명했다. 작은 결혼식(a.k.a.스몰웨딩)!


직장인이 되어 이런저런 결혼식에 다니다 보니 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식 중간에 밥 먹으러 가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다. 대부분 식을 시작하기도 전에 얼굴 도장만 찍고("축하해~ 오늘 예쁘다~") 뷔페 뜨러 간다. 두 사람을 보러 온 건데 신랑과 달리 신부는 거대한 드레스에 파묻혀 대기실에 앉아 있고. 식 내내 '헬퍼 이모'와 신랑의 도움 없이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 식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식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직원들은 부산하게 화환과 축의금 접수대를 갈아치운다. 귀한 주말을 쪼개, 신경 써서 차려 입고 온 손님들인데,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밥을 먹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물론 웨딩홀 결혼식도 훌륭한 선택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도-편협한 성격을 가진 산양자리의 소설가도-결혼식 산업이 왜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결혼식 산업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고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레머니를 필요로 하고, 그것에 수반되는 일종의 감동을 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혼식이라는 것은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구하고 있는 것은 참다운 감동이 아니다. 그들이 구하고 있는 것은 시작이 있고 중간이 있고 끝이 있어서, 적당히 그 기능을 수행해주는 파악이 가능한 감동인 것이다. 요컨대, 그것이 바로 세레머니라는 것이다.


'파악 가능한 감동'. 얼마나 멋진 말인가! 신랑과 신부, 혼주와 하객들이 예측 가능한 행복을 누리는 결혼식. 또 웨딩홀 결혼에서도 뮤지컬 축가나 영상 등 나만의 이벤트를 보탤 수 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웨딩홀 결혼만큼 '가성비' 좋은 방식도 없다. 수십년의 수행착오 끝에 한국인들이 찾아낸 한국사회에서 제일 적합한 결혼 모델인데. 앞서 언니가 훌륭한 웨딩홀에서 짜임새 있는 결혼식을 올리는 걸 보면서 '이래서 웨딩홀이란 게 존재하는구나' 체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결혼식,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만 때려넣은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별난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나만큼이나 별난 남자를 만났다.


작은 결혼식을 하자. 우리가 결혼식을 직접 꾸리자. 두 사람이 결정하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작은 결혼식이 비용 측면에서도, 준비 과정 측면에서도 결코 작지 않다는 것. 주변의 걱정도 많았다. 둘다 주말 없이 일하는 직업이라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애인은 장남. '개혼인데 작은 결혼식을 고집하는 건 우리 욕심 같으니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면 웨딩홀 결혼식을 하자'는 나와 달리, 강경한 애인 덕분에(?) 양가 부모님의 승낙도 얻었다. 대신에 하객 규모는 양가 합쳐서 200명. 그리하야 우리는 하객 규모마저 작지 않은 작은 결혼식을 준비하게 됐다.


'비스포크 결혼식'. 우리 결혼식의 취지를 살린 용어는 '작은 결혼식'보다 여기에 가깝다. 웨딩홀의 문법과 달리 우리 취향과 상황에 맞게 식순을 짜기로 했다. 장소도 테마도 입장 동선도 식사 메뉴도 우리가 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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