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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Dec 03. 2020

배움의 공간에서 병역거부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병역거부 교안 제작 후기 

몇 년 전 전쟁없는세상에서는 병역거부를 주제로 청소년을 만나는 것을 논의했다.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알아보다가 중단했다. 아직 병역거부가 불법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병역거부에 좀 우호적인 집단이 대안학교일 거라고 생각해서 대안학교 리스트를 만들어서 공문을 보냈다. 전쟁없는세상이 어떤 단체인지 소개하고, 병역거부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고. 단 하나도 답장이 안 왔는데, '병역거부'가 문제였다기보다는 아무런 교류도 없이 갑자기 공문을 보냈으니, 나라도 대답 안 했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 목표는 명확했다. 병역거부를 널리 알리되, 반군사주의를 실천하는 시민불복종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병역거부자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명확한 목표에 비해 그걸 달성할 방법을 우리는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 목록에 병역거부 청소년 교육을 넣어두고 지내다가 작년에 피스모모와 함께 병역거부 교안을 만드기로 결정했다. 내 기억엔 2019년 1년 계획을 세우면서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에서 아이디어가 나왔고, 피스모모에 함께 병역거부 교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던 거 같다. 피스모모는 당시 교사를 위한 교안 시리즈를 이미 여러 권 낸 상태였다. 병역거부에 대한 콘텐츠를 우리가 담당하고, 피스모모가 그걸 교육활동안으로 풀어내면 서로 시너지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피스모모에는 교사들과 연결된 네트워크도 많으니 전쟁없는세상이 부족한 지점을 커버할 수 있었다. 


만나서 몇 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병역거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교사를 위한 평화배움 교안 <호국보훈의 달, 배움의 공간에서 전쟁을 어떻게 다르게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를 먼저 작업해서 작년 6월에 발행했다. 그리고 때마침 서초중학교에서 전쟁없는세상으로 병역거부 수업을 중학교 2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청소년 강의는 경험이 없었는 데다가, 전체 학년을 3교시짜리 수업을 하려니 막막했다. 역시나 또 피스모모에 함께 할 것을 요청했다. 어차피 병역거부 교안도 만들거니, 그 사전 작업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피스모모 활동가 2명과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3명이 함께 논의해서 수업안을 짜고 그걸로 서초중 2학년 9개 학급을 다 돌았다. 힘들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고, 특히 교육 공간에서 청소년을 직접 만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상상 속의 독자를 두고 글을 쓰는 것과 내가 직접 만난 이들에게 글을 쓰는 것은 천지 차이가 난다. 


서초중 2학년 수업 강의안을 바탕으로 2020년에 <병역거부 교안>을 내기로 했다. 처음에는 병역거부자의 날인 5월 15일에 맞춰 내고 싶었지만 코로나의 습격으로 상반기에는 이걸 진행할 역량이 안 되었다. 결국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을 목표로 하고 작업을 하반기로 미뤘다. 마지막에 이사와 겹치면서 좀 버겁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병역거부, 배움의 공간에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를 평화수감자의 날에 발행할 수 있었다. 이번 교안 작업에는 피스모모의 세현, 영철, 전쟁없는세상에서는 나, 그리고 인권교육센터들의 날맹이 함께 했다. 날맹은 여러 현실적인 상황상 집필을 같이 하지는 못했지만 교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소중한 조언을 보태주었다. 



개인적으로는 교안을 만들면서 크게 두 가지를 신경썼다. 


병역거부의 '무엇'을 우리는 이야기할 것인가

병역거부가 생소하거나 아직은 거리감이 있게 느끼는 진행자/참여자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첫 번째 요소는 교안뿐만 아니라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하면서 늘 신경 쓰는 것이다. 우리는 병역거부자가 국가폭력의 피해자로만 비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병역거부가 적극적인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병역거부자들의 병역거부 이유를 존중하지만, 전쟁없는세상이 하고 싶은 병역거부 운동의 상은 명확하다. 전쟁을 일으키는 여러 구조에 저항하는 시민불복종으로서 병역거부. 이 내용을 교안에 담고 싶었다. 그런데 이걸 설명하는 게 쉽지 않다. 당장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가두는 것이 인권침해라는 것을 사회적 인정받는 것만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데 거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가는 거니 만만치 않은 일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잘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할지가 중요한 포인트였다. 


이 고민은 두 번째 요소와도 연결된다. 아마도 진행자 중에 병역거부를 적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그런 사람은 이 주제로 교육을 하지 않겠지. 다만 심정적으로는 지지하지만 디테일한 내용은 전혀 모르거나, 혹은 아직은 거리감을 느끼거나 관심이 없는 진행자들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참가자들을 생각해보면, 병역거부를 반대하거나 병역거부자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 사람들이 이 교육에서 무엇을 얻으면 좋을까? 우리는 교안을 작성하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론 우리의 입장과 당파성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은 없었지만, 평화로 가는 다양한 길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을 가리는 교안이 아니라 병역거부가 던진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교안이 되길 바랐다.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정보면을 구성할 때는 쟁점과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정도로 짧고 선명하게 쓰려고 했다. 활동안은 다양한 생각과 토론이 가능하도록,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프로그램을 짰다. 물론 우리의 의도가 잘 살았는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이 교안을 활용해서 교육을 진행해 본 분들의 피드백을 어서 빨리 듣고 싶다. 


끝으로 협업에 대한 짧은 단상.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한다. 기본 성정이 그렇다. 스포츠도 혼자 하는 스포츠보다 구성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목표를 달성해가는 구기종목을 좋아한다. 협업은 물론 때로는 더디고, 짜증도 유발하지만, 좋은 동료들과 한다면 서로의 장점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것을 넘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창의적인 자극을 주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건 아주 짜릿한 일이다. 교안을 만드는 과정이 그랬다. 교안의 기본적인 내용은 내 머릿속에 있지만 그것으로 목차를 짜고 구성하는데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이 함께 했다. 모두의 조언이 합해져 훨씬 더 짜임새 있는 교안이 구성되었다. 단체 내부뿐만 아니라 전쟁없는세상과 피스모모의 협업도 내겐 좋은 경험이었다. 두 단체는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긴장이 좋은 에너지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더 좋은 방향으로 우리의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서로 다른 방식, 서로 다른 호흡, 서로 다른 스타일이 만나서 불똥이 튄다. 그 불똥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찰나에서 우리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상상력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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