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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Sep 25. 2020

나의 삶이 역사로 기록된다는 것

경축!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2, DMZ영화제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 수상

올해는 병역거부 운동에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지난 7월에는 그동안 병역거부 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전쟁없는세상이 노회찬상을 수상했는데(노회찬상 수상하고 쓴 브런치 글) 어제는 전쟁없는세상의 17년 동안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금기에 도전>이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내 경쟁 부문에서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2: 금기에 도전


2003년에 나온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 병역거부가 무엇인지, 병역거부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일을 겪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영화는 병역거부 자체보다는 이 운동이 걸어온 길을 핵심적인 활동가들을 통해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 센세이션하게 등장했던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과 전쟁없는세상의 탄생, 병역거부의 이유가 다양해지면서 확장되는 활동가들의 고민, 그리고 그에 따른 전쟁없는세상의 활동 변화와 굴곡까지 17년의 세월 속에 담긴 흐름이 정리되어 있다.


당사자인 나는 민망한 장면이 많다. 예를 들면 영화 시작 부분에서 아마도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서 나동혁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사회)운동이죠." 이 무슨 손발 오그라드는 대사란 말인가. 지금 나는 저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저런 말을 하지도 않는다. 당시 우리는 여러 모로 마음은 앞섰지만 실력은 형편없었고, 이상만 드높았다.


그런데 영화를 같이 본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장면들도 좋았다 한다. 처음에는 손발 오그라드는 말을 하던 내가 최근의 인터뷰에서는 록히드마틴의 주식에 대해 상당히 전문적으로 말하는 장면이 포개지면서 병역거부 운동의 성장 스토리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철없어 보이던 활동가들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어 정말로 얘네가 세상을 바꾸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재밌었다고 한다. 흠... 그래도 나는 여전히 손발 오그라들고 부끄러울 뿐이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쿠키영상으로 속편 <받들어 총>에 대한 예고편이 나온다. 이 영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2>의 모태다. 우리는 그때만 해도 영화가 곧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체복무제가 백지화되고, 그러면서 대체복무가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건재한 한국의 군사주의를 다루려던 김환태 감독의 구상이 어그러지면서 영화가 표류했다고 한다.(김환태 감독님의 인터뷰 참조) 아마도 2018년 헌법재판소의 병역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면서 이 영상 기록의 한 매듭을 지어야겠다고 김환태 감독은 생각했을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두 겹, 세 겹의 방역 절차를 거치고 입장한 DMZ 영화제. GV 끝나고 감독(모자 쓴 사람)과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



역사의 일부로 기록된다는 것


기분이 묘하다. 김환태 감독은 확실히 늘 우리 곁에 있었다. 파병 반대 병역거부 강철민 이등병 농성장에서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강제 진압 명령 거부 이길준 이경 농성장에서도 김환태 감독의 카메라는 늘 가장 늦게 잠들고, 가장 일찍 일어나 우리들의 삶을 기록해 나갔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다큐 감독은 원래 그러는 건가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게 한 편의 영화로 나오고 보니 그 세월의 두께가, 기록의 질감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한 내 모습, 내 말, 내 표정이 그 두터운 기록 속에 담겨 있다.


사실 초창기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들은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활동을 지속해오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일단 캠페인을 기획하고 조직하고 실행하기만도 바쁜데 영상 기록을 남길 여력이 있었겠나. 그걸 김환태 감독이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우리의 캠페인을 꾸준히 기록해줬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가슴 뭉클한 일이지 영화를 보고 나서야 새삼 깨달았다.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기록으로 남고, 역사가 되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요즘 나는 내가 하는 말 한마디의 무게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20대 때 나는, 그리고 전쟁없는세상은 거침이 없었다.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게 없었고, 우리 같은 듣보잡은 주류 언론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자회견을 했는데, 카메라가 김환태 감독의 카메라 한 대였던 적도 있으니. 그래서 하고 싶은 말 다 했다. 생각나는 대로 다 했고,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나도, 전쟁없는세상도 그러지 못한다. 그래선 안 된다. 우리의 한마디가 적어도 병역거부나 대체복무 이슈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옳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운동이죠."처럼 텅 빈 말을 할 수 없다. 이 영화가 상을 받으니 좋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가 늘어난 기분이 든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게 있다. 내 삶의 일부분은 기록되고 역사가 되었는데, 이게 우연히 일어난 일이거나 내가 노력해서 된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영화에 출연한 재성이나 오리(최정민)를 비롯해 나의 활동도 충분히 역사로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치 있는 모든 삶이 역사로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옥고를 치른 여성 활동가가 이런 말을 한다.


"무식하게 끝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지난 삶이 경력이 되지도 못하고 역사가 되지도 못하고 이렇게 사는 거 같아서."


우리 또한 꾸준히, 어떤 시선으로 보자면 버텨 왔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경력이 되고 역사가 되었다. 여기에는 분명 운도 작용하고, 그 세월을 버텨낸 개인의 노력도 중요했겠지만, 켜켜이 쌓인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와 가부장제가 기실 역사가 되고 경력이 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구분한 것이 가장 컸을 것이다. 군사주의와 맞서는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에서도 누군가는 가시화되고 누군가는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주로 드러나는 쪽이고 가시화되는 쪽이었다. 그러니 역사로 기록되고 경력이 되기가 다른 누군가들에 비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내 삶과 활동이 영화로 기록되었다는 것이 마냥 즐거우면서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DMZ 영화제는 어제 끝났습니다. 이 영화는 아직 상영 계획이 잡혀있지는 않습니다만, 극장 상영이든 공동체 상영이든 여러 형태를 감독님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상영 계획이 나오면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페이스북을 통해 공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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