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드디어 다 읽었다! 『한국의 병역제도』는 재미는 없지만 내게 필요한 정보가 들어 있어 꼭 읽어야 했던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신숙 님은 국방부와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병역제도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 종류, 다른 나라의 사례, 병역제도의 쟁점들, 한국 병역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두루 다룬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병역 제도와 안보에 대해서 다루기보다는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여성징병제, 병역의무와 형평성, 복무 기간과 현역병 급여 문제 등 현안들에 대해 정리하며 어떤 쟁점에 대해서는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복잡한 병역 제도의 변화와 현재 모습에 대해 정리가 매우 잘 되어 있어 유용한 책이다. 물론 평화활동가의 시선에서 보자면 비판적으로 읽을 점도 있다.
'완전징병제의 신화'라는 표현은 저자가 직접 쓴 표현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표현이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는 징병제 또한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 해오던 것, 혹은 흔들려서는 안 되는 어떤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징병제는 "병역제도의 한 유형"(12쪽) 일뿐이다. 징병제라고 하더라도 굉장히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모든 청년이 군대에 가는 징병제는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다. 중국은 징병제지만 가용인원이 많아서 면제가 많고, 스위스는 징병제지만 우리와는 형태가 완전히 다른, 민병대에 가까운 시스템이라고 한다.
저자는 다양한 나라의 병역제도를 소개하며 병역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징집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해 분석하고 보여준다. 적절한 규모의 징집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지금 필요한 군인 숫자와 군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군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이미 20년 전에 결정되어 있다. 반면 당장의 필요 수요는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급변한다. 주변국과의 관계, 국가의 인력 계획 등등. 병력 자원이 부족할 때는 징집 기준을 완화하거나 복무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군인을 충당한다. 병력 자원이 넘칠 때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광범위하게 병역을 면제하거나, 대체복무를 늘리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첫 번째 방법을 택하는 반면, 한국은 면제되는 인원이 극히 소수이고 대체복무를 거대하게 운용해왔다고 한다. 이를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보여주는데, 예를 들면 1980년대는 자연계 교사의 숫자가 부족해서 '자연계교원요원 병역특례'을 신설했다. 중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을 의무적인 기간 동안 하는 것으로 군복무를 대체한 것이다. 이런 방식은 특혜 논란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회적으로 인력이 필요한 분야가 계속 달라지기 때문에 대체복무에 해당하는 군역은 시기마다 변화무쌍하게 바뀐다.
저자는 징병제와 모병제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단순화하면 안 된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나라의 군대가 그렇게 단순하게 구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병역제도의 "정도의 문제, 변화 과정상의 문제"로 보면서 "정책과정론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03쪽) 저자의 주장은 일관되게 한 가지 방향으로 병역제도를 개혁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의무병의 비율을 줄이고 직업군인의 비율이 늘어나야 한다.
전문화된 군인을 양성해야 한다.
군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여군 확대 및 다문화 청년들을 포용하는 군대
이런 결론을 도출하는 논거는 꽤 합리적이다. 인구구조가 변했고, 전통적인 충성심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는 기업이나 민간사회와 경쟁에서 우수한 인력을 데려올 수 없고, 새로운 인력을 해마다 대규모로 징집해서 훈련시켜 짧은 시간 동안 복무시키다 유출하는 시스템이 이제는 유효하지 않고, 과학기술의 발달과 국방예산 문제로 거대한 상비군의 역할이 축소되어 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295쪽~296쪽) 국가 시스템 내부에서는 꽤나 합리적인 개혁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면을 충분히 고려하고, 군대 바깥의 사회적인 요인까지 두루 살핀 데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풍성하게 참고했으니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병역 제도 개혁의 방향성이 과연 국방부나 정부 안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루어져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평화활동가의 시선으로 보자면 비판적으로 읽을 수도 있다. 저자는 국가의 미래 전략과 인구 구조의 변화, 주변국과의 관계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고는 있지만, 저자의 위치상 이 모든 것의 논의는 국가 시스템 안에서 할 수 있는 개혁에 그친다. 그 때문에 국가의 안보 정책에 있어서 군사안보 위주에서 다른 평화적 수단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고려를 하지 못한다. 코로나라든지 자연재해와 같은 새로운 안보 위협을 이야기 하지만 안보를 위한 노력은 여전히 군사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자의 제안은 좀 더 '합리적인 방식'이지만 여전히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방부에서 일하는 분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안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국민 국가' 밖에서 안보를 사고해야 한다. 근대적인 국민국가의 형성과 함께 등장한 징병제를 개혁하는 동시에, 안보의 구성 주체에 '국민 국가'가 아닌 다양한 행위자를 넣어야 한다. 전통적인 안보 수단(군사안보)을 한꺼번에 포기할 수 없더라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안보의 방향성은 '국민 국가'의 바깥에 있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안보의 위협을 파악하고, 그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국가의 국경선을 중심으로 안보 문제를 파악하는 시선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일단의 개혁적인 방향이 무조건 군사주의의 약화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안보를 평화의 시선으로 다시 정의하고 구성해야 한다. 여성징병제의 확대, 징병제의 축소, 군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 같은 방향들은 분명 개혁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강한 군대를 만드는 방식으로 귀결된다면 결국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안보 불안-전쟁과 군사 갈등, 그로 인한 난민과 남반구 국가들의 빈곤-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