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운동이 다루는 이슈는 다른 사회 운동 이슈와 비교해 사람들의 일상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노동운동이 주로 다루는 이슈들은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이슈들입니다. 해고나 산업재해 같은 일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택배 노동자, 마트 노동자, 식당의 종업원 등 무수한 노동자를 마주하며 살기 때문에 노동 이슈가 먼 일처럼 느껴지지 않죠. 낙태죄 폐지 이슈나 디지털 성범죄와 같은 이슈 또한 뭇 여성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문제입니다. 반면 평화운동 이슈는 대다수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전쟁이 나쁘다고들 생각하지만 당장 우리 동네에서 전쟁을 마주하지는 않습니다. 전쟁 무기 또한 평소에는 직접 마주할 일이 없죠. 평화운동이 다루는 이슈 가운데 그나마 많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 바로 군대, 특히 병역제도입니다.
군대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군대에 대해 나쁜 말이라도 하면 잡혀가거나 북한을 이롭게 하는 빨갱이라고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극단적인 반공주의는 힘을 잃었지만 다른 측면에서 군대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이슈입니다. 특히 병역제도와 관련한 이슈는 사회적인 쟁점이 되는 순간 상당한 폭발력을 보입니다.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의견 개진이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우선 인구의 절반인 남성들 대다수에게는 피부로 와 닿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병역제도의 시행과정을 살펴보면 사회의 여러 쟁점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 행정의 문제이기도 하고, 사회의 공정성이나 형평성의 문제이기도 하고, 성차별이나 성폭력과 연결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젊은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이나 나이 든 사람들, 이주민들까지도 병역제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병역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폭발력 있는 이슈인 게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평화운동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병역제도에 대해 짧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병역제도의 모든 것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일이지만 이 책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화운동이 주목하고 바라봐야 하는 다양한 시선들을 바탕으로 병역제도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병역제도라는 불가능한 고차방적식 – 국가 행정과 병역제도
보통의 시민들에게는 병역제도와 관련하여 국가 행정의 관점은 큰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에서는 ‘기능상 수요 측면의 군 병력과 공급 측면의 병역자원을 연결하는 매개’하는 일(『한국의 병역제도』 김신숙, 메디치미디어, 2020, 9쪽)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만 19세가 되면 신체검사를 받은 뒤 입영통지서가 나오면 군대에 다녀오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라 우리는 이 절차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 같지만 실은 이는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친 결과입니다. 군대 갈 사람의 숫자는 20년 전에 정해져 있는 반면, 필요한 군인 숫자는 20년 뒤에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20년 동안 숙성시켜야 하는 와인을 20년 후의 판매량을 가늠하여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 와인보다 더 어려운 것이 와인은 마음먹은 수량만큼 만들 수라도 있지만 아이들이 태어나는 일은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 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만요. 아무튼 이 근본적인 모순이 병역제도, 특히 징병제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어려움입니다. 더욱이 이 문제는 비단 안보 혹은 국방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방부 입장에서는 훌륭한 군인이 많을수록 좋겠지만, 사회 다른 영역에도 사람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산업 현장이나 교육현장에서 필요한 사람들을 무작정 다 국방으로 집중시킬 수도 없습니다. 행정적인 관점에서는 병역제도는 국방의 문제이면서 산업의 문제이고, 사회 전체 인구 구조와 맞물려 작동하는 아주 복잡한 방정식인 거죠.
많은 국가들에서 군인의 숫자를 보통 필요한 수요보다는 넉넉하게 징집, 모집을 합니다. 전쟁을 한다든지 여러 이유로 군인 숫자가 부족하면 어떤 식으로든 추가로 징집, 모집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필요보다 군인이 많을 때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많은 나라들에서 징집 인원이 필요한 군인 숫자보다 많을 경우 과감하게 잉여 인력에 대해 군면제를 단행합니다. 반면 한국은 주로 대체복무를 시켜 병역 잉여 인력을 해소했습니다. 자연계 교원이 부족한 경우는 자연계 교사로 병역을 대체하게 했고, 군수산업체 육성을 추진할 때는 방위산업체의 노동자로, 소방서(의무소방대)나 교도소(경비교도대) 혹은 경찰서(의경) 같은 국가 기관에서의 전환 복무로 다양한 대체복무를 폭넓게 활용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공정성이나 형평성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누구는 군대 가고 누구는 면제받는 일이 쌓이다 보면, 불만이 쌓이기 마련이죠. 게다가 군복무와 대체복무, 군복무에서도 각기 다른 차별적인 조건들, 대체복무에서도 서로 다른 복무 형태나 사회적인 부담 때문에 징집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불만이 쌓입니다.
군가산점도 안 주면서 남자만 군대 가라고? - 병역제도와 페미니즘
군입대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 보상 제도를 시행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군가산점 제도인데요, 1969년에 개정한 「군사원호대상자고용법」에서 규정한 업체들의 채용시험에서 군복무를 마친 남성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국영기업체와 주식의 과반수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기업, 그리고 하루 16인 이상을 연평균으로 고용한 기업들이 대상이었습니다. 군가산점 제도는 여성이나 장애인 남성 등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차별로 기능하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고 결국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사실 군가산점제는 여성과 장애인 등에 대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군 입대 남성들 모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면에서 보자면 남성들에게도 차별적인 제도입니다. 모든 군복무자들이 공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죠. 모두가 공평하게 받아야 할 몫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거니까요.
한편 군가산점제도의 문제는 채용 시험에서의 차별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군가산점제가 시작된 이후인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을 함께 봐야 합니다. 박정희 정부는 중화학공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육성합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의 패러다임이 여성노동자가 중심이 되었던 경공업 제조업에서 남성 노동자들이 중심인 중화학공업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1970년대입니다. 군가산점제도는 이 시기에 군복무를 마친 남성 ‘산업전사’들이 산업계의 주력으로 안착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돈 버는 바깥일을 하는 남성 가부장의 이미지는 이 시기 급격하게 확산되고 노동시장 또한 급격하게 성별화 됩니다.
군가산점제가 군복무자들의 불만에 대한 정부의 응답이었다면, 군복무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 이들을 향해 자신의 억울함을 분출했습니다. 불법을 자행하며 병역을 기피한 이들, 재력과 권력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이들을 향할 때도 있지만 소수자들-특히 여성을 상대로 분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징병제입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남자만 군대 가는 것이 억울하니 여자도 군대 가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여성징병제 도입을 외칩니다. 혹은 인구절벽 시대가 다가오니 남성만 징집해서는 필요한 병력을 충원하지 못하니 여성도 징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반면 외국에서는 군대 내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이나 사회 전반의 성평등 차원에서 여성징병제가 논의되기도 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인종차별 시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필요한 군인을 여성으로 충원했다가 민주 정부가 들어선 뒤 긴 토론 끝에 여성군인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고, 스웨덴의 경우는 남녀 구성원의 격차가 심한 마지막 영역이 군대였기 때문에 성평등을 실현하는 차원에서 여성징병제가 도입되었습니다. 물론 과연 여성징병제가 실제로 평등을 가져오느냐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입니다. 여성 군인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 겉보기에 기계적인 평등을 실현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 군인들 개개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대 내에서 여성군인의 위치는 남성성을 과장해서 증명해야 하는 “명예남성” 혹은 여성성을 과장해서 증명해야 하는 “군대의 꽃”으로 국한되는 국한되었습니다. 여성군인들이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측면에서도 군대는 전혀 여성 친화적인 장소가 되지 못했습니다.(여성징병제는 과연 ‘평등’을 가져올 수 있을까?, 가람, 전쟁없는세상 블로그)
누구는 군대 가고, 누구는 안 가고 – 형평성과 공정성
군복무자들의 억울함이 여성을 향하는 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지만 억울함 그 자체는 너무나 당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징병제라는 제도가 징집대상자 개인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강제적인 제도인 데다 한국의 징병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징병 대상자들이 지나치게 긴 기간을 지나치게 적은 월급을 받으며 지내기 때문에 군복무자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군복무 기간도 많이 줄어들고 군인들의 임금도 많이 올랐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의 경제적 정치적 위상을 고려한다면 군대는 여전히 후진적인 모습입니다.
한편으로 징병제는 한국 사회에서 형평성과 공정성의 잣대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익숙하죠. 모두가 예외 없이 군대에 간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흔들리면 안 되는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요즘은 공정성이 특히 민감한 사회 이슈이기 때문에 하지만 공정한 병역제도는 매우 중요한 사회 문제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징병제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제도는 공정성이나 형평성에서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젊은 남성이 군복무를 공평하게 짊어지는 군대는 없습니다.
한국만 하더라도 1970년대 중반 이후로 병역기피율이 0.01%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병역기피 풍조가 사라졌지만 한국전쟁 직후인 50년대에는 병역기피율이 30%까지 치솟았고 60년대에도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이후 잠시 줄어들었다가 22%까지 올라갔습니다. 병역기피가 이렇게 만연하다 보니 군복무자들의 불만은 억울함이 됩니다. 4·19 이후에는 제대군인들이 단체를 조직해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정치적으로 호소하는데, 그 타깃은 군 입영 기피자들과 면제자들을 향합니다. 병역 기피자거나 미필인 공무원을 파면할 것을 요구하는 식으로요. 당시에 대학생들은 군 입영을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군대에 가더라도 복무기간이 병역법에 규정된 2년의 절반인 1년만 복무했습니다. 한국 전쟁이 끝난 뒤 70만으로 늘어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병역 자원이 부족했는데, 대학생들은 늦게 가고 짧게 군복무를 하는 반면 군대에 입대한 이들은 병역법에 규정된 2년이 지나도 제대로 못하고 더 길게 군복무를 수행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국의 징병제는 시작부터 학력 차별을 기반으로 작동한 것이죠.
물론 국가의 모든 제도는 국민들을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시행되어야 하며 징병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징병제는 태생적으로 공정한 제도가 될 수 없고 차별을 기반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필요한 병력과 인구 숫자가 불일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규모 면제든, 대체복무를 통한 잉여 인력의 해소든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권력과 돈을 이용해 군복무를 면제받거나 기피하는 이들의 경우를 개인의 문제로 치더라도, 군복무자들 사이의 어긋난 형평성은 징병제의 태생적인 한계입니다. 공중보건의, 자연계연구요원, 군법무관 등의 병역특례는 분명 일반 현역병들과 다른 처우를 받으며 복무하는 것을 떠올려본다면, 평등하고 공정한 군복무가 사실은 환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행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군인권
그렇다고 불평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방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징병제를 공정성과 형평성의 잣대로 삼는 것은 불가능한 도전이고, 자칫하면 어긋난 형평성에 대한 불만을 국가가 군대 갈 자격을 주지 않는 장애인이나 여성, 이주민 같은 소수자에게 돌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들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징병제의 개혁이나 개선보다 여성징병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나 병역거부자에게 가혹한 대체복무를 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더 크게 주목을 받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병역거부의 경우 헌법재판소에서 대체복무제가 없는 상황이 헌법 18조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헌법에 위반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또한 대체복무제의 내용이 과하여 징벌로 기능할 경우 또 다른 기본권 침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는 대체복무제를 얼마나 더 어렵고 힘들게 만들 것인지로 흘러갔습니다. 국방부는 국제 사회의 기준과 인권단체들의 제안이 무색할 정도로 대체복무제를 징벌적인 제도로 설계했는데, 국회에서 법안에 대한 심사를 거치면서 세부적인 면에서 오히려 더 후퇴했습니다. 인권침해적인 성격에 대한 국방부와 국회의원들의 대답은 군복무자들의 박탈감을 고려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복무의 기간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군복무 기간과 같아도 자신은 군복무를 선택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체복무제 도입방안 실태조사」, 국가인권위 발행, 2018) 물론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안보에 무임승차한다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책임 있는 정치인이나 언론, 학자, 종교 지도자들이라면 병역제도의 개선과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 보장을 함께 이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들이 나서서 불행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군복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군복무자들의 박탈감을 내세워 대체복무를 더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방식으로요.
이런 불행 경쟁의 피해는 병역거부자들한테만 향하지 않습니다. 군복무자들도 불행 경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와 인권 영역에서 커다란 발전을 일궈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발전이 더딘 곳이 바로 군대입니다. 대표적인 인권침해인 얼차려는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2020년에도 육군의 어느 대대장이 얼차려를 준다고 새벽에 병사 300명을 불러내고 쓰러질 때까지 달리라는 지시를 해 보직해임되었죠. 공관병에게 사적이고도 무례한 업무를 시킨 이른바 공관병 갑질 사건, 훈령병에게 인분을 먹인 훈련소 인분 사건, 끊이질 않는 군대 내 성추행 등 조금만 찾아봐도 군대 내 인권 침해 사례들이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옵니다. 군인들의 처우나 인권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핑계 삼아 정부가 해야 할 병역제도 개선은 하지 않고 그 불만을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불행 경쟁으로 돌리는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병역제도와 만나는 다양한 사회 쟁점들을 살펴봤습니다. 간략하게 살펴본 것이라 병역제도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더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을 해서 복잡하고 섬세한 분석을 해야겠죠. 그러기 위해선 현대적인 의미의 군대의 본질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전쟁과 군대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지만, 국민국가의 영토와 국민의 생명 재산을 지키는 시민들로 구성된 군대의 형태는 역사가 아주 길지는 않습니다. 역사적으로는 프랑스혁명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의 절대왕정으로부터 혁명을 지키기 위해 1973년 프랑스 의회에서 선포한 ‘국민총동원령’을 근대적인 징병제의 시초로 봅니다.(『한국의 병역제도』, 86쪽) 왕정을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 군대라는 특징 때문에 징병제는 태생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시민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군인이 될 자격과 함께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죠. 물론 지금은 모병제를 시행하는 나라도 많습니다만, 폭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한 근대국민국가의 군대는 징병제든 모병제든 그 이전의 군대와는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습니다. 모병제 국가에서도 이주민들이 군입대를 통해 시민권을 획득하게 하는 것을 보면 군대와 시민권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민권은 배타적인 권리이기도 합니다. 시민권을 가질 수 없는 이들과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을 구분하는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즉 징병제든 모병제든 병역제도는 그 사회에서 인정하는 시민-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규정합니다. 군대가 만드는 시민은 ‘젊은,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마련입니다.
한국의 징병제는 서구의 징병제가 걸어왔던 역사와는 또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징병제의 도입이 프랑스혁명과 시민권의 확대의 역사적 경험인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 징병제를 처음 시행한 것은 제국주의 일본이었습니다.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징병은 시민권의 확장이 아니라 “권리 없는 의무”(「한국 징병제와 병역의무의 보편화:1960~1999」, 강인화, 서울대학교, 2019, 40쪽)였을 뿐이었습니다. 징병제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시민권이 박탈당한 일제시대의 경험이 떠오르는 한국인들이었으니 이승만 정부의 징병제에 협조적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은 완연한 병영국가로 거듭났습니다. 성별화된 산업현장에서는 군필자들이 우대를 받고, 기업이나 학교에서의 문화도 군대식 문화가 익숙한 군사주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또 변했습니다.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옛날 군대를 추억하며 여러 말씀을 하시지만, 지금에 와서는 의미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쟁의 양상이 변하고 군대의 역할이 변하고, 군인의 의미가 변해버렸습니다. 1차세계대전 때만 해도 전쟁은 보병이 총을 들고 참호에서 싸우는 것이었고 군인의 숫자가 정말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멀리서 미사일을 쏘고, 드론이 군사작전을 펼치는 시대입니다. 재래식 무기나 대량살상 무기가 아닌 안보 위협 수단도 많고, 적대국가가 아니라 전염병이나 자연재해가 국민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군대의 의미나 위상, 역할이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전쟁과 군대의 변화와 일치하지는 않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군대 특히 병역제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모든 층위를 다 살펴야 합니다. 단순히 군사력의 크기로 비교하는 국가안보 차원에서만 병역제도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 군대가 징병제를 유지해야 하는지, 모병제로 전환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하지만 논의가 군사안보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면에서 이 논의는 반쪽도 못 되는 논의입니다.
병역제도에 대한 논의는 궁극적으로는 과연 안보는 무엇이고, 국가는 그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포괄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징병제의 부담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군사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이행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국가 행정의 부담도 줄이고, 군복무자들이 느끼는 부담을 줄여 형평성도 맞추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과 갈등을 줄이고 평화적인 수단에 의한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는 방향성과도 일치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는 처음이라』 원고를 다 넘긴 뒤에 출판사 대표께서 부록으로 좀 첨예한 이슈에 대한 글을 넣자고 제안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병역제도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사실 전쟁없는세상은 군대 가지 말자는 운동을 하는 조직이라, 병역제도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데 특별히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강인화 선생님의 논문 「한국 징병제와 병역의무의 보편화:1960~1999」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논문이 없었다면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한국의 병역제도』도 여러 도움이 되었습니다. 『평화는 처음이라』는 아마 올해 봄이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