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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l 07. 2020

절대악을 물리치기 위한 전쟁은 필요하지 않나요?

'좋은 전쟁'이라는 질문에 대해

평화주의자, 아나키스트, 페미니스트 중 일부는 모든 전쟁이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평화주의자인 저 또한 아무리 고상한 이유를 갖다 붙이더라도 모든 전쟁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정의롭고 고상한 이유를 들먹입니다. 그들이 들먹인 고상한 이유들을 막상 따져 살펴보면 전쟁과 연관이 앖거나 과장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모든 전쟁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은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 비현실적인 생각 혹은 이상주의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나치 독일이 절멸 수용소에서 유대인 수백만 명을 학살하고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는데도 전쟁을 피할 것이냐, 혹은 어느 나라 내전에서 서로가 서로를 잔인하게 학살하고 있는데 군사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냐 같은 질문을 받을 땐 사실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과연 좋은 전쟁은 가능할까요? 이번에는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좋은 전쟁'의 몇 가지 사례


좋은 전쟁은 흔히 절대악과 싸우는 전쟁을 생각하게 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죠.


『동물농장』과 『1984』를 쓴 조지 오웰은 르포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르포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카탈로니아 찬가』겠죠. 『카탈로니아 찬가』는 전 유럽의 공산주의자, 공화주의자들이 함께 연합해서 파시스트인 프랑코와 맞서 싸운 스페인 내전 이야기입니다. 조지 오웰도 파시스트와 맞서기 위해 공화파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가합니다. 조지 오웰을 비롯한 공화파의 많은 사람들은 역사의 진보를 믿고 좀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간직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파시스트와 맞서는 전쟁은 좋은 전쟁, 혹은 필요한 전쟁이지 않았을까요?


인기리에 방영된 미드 '왕좌의 게임' 각본에도 참여했고 드라마의 원작인 『얼음과 불의 노래』 작가인 조지 R.R. 마틴은 베트남 전쟁 때 병역거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마틴이 모든 전쟁을 반대한 건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평화주의자는 아니라며, 만약 나치와 싸웠던 2차 세계대전이라면 참전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틴과 비슷한 생각을 할 겁니다. 파시스트 나치와 싸운 제2차 세계대전은 좋은 전쟁이 아니었을까요?


최근 사례로 보자면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을 쫓아내고 이라크에 민주적인 정권을 세우기 위해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라크가 테러리스트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다는 말과, 대량살상 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종합하자면 이라크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대량살상 무기를 없애고 테러리스트의 활동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전쟁이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지금은 논란이 크지 않습니다. 이 전쟁을 좋은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량살상 무기는 발견할 수 없었고, 빈 라덴도 이라크와는 큰 연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빈 라덴과 그의 조직이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나라는 중동에서 미국의 최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사실을 미국도 모르지 않았습니다.) 후세인이 독재자인 것 맞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인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미군도 이라크인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군은 이라크에서 점령군으로 행세했고, 후세인을 쫓아낸 이후에 민주적인 정권을 세우는 일에 무심했으며, 전쟁 때문에 이라크의 정치 상황이 나빠지면서 IS 같은 극단적인 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방치했습니다. 과정도, 결과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라크인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은 좋은 전쟁이었을까


나치와 싸운 제2차 세계대전은 이라크 전쟁보다는 판단하기 조금 어렵습니다. 후세인의 독재는 이라크 사람들과 주변국들의 피해를 유발했다면, 히틀러와 나치는 유럽 대륙 전체와 유럽 제국주의 국가 식민지들까지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으니까요.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파시즘, 전체주의, 인종주의, 대량학살, 군국주의와 맞서 싸운 민주주의와 자유세계의 승리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인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역사학자이지 정치학자인 자크 파월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답을 추적합니다. "왜 그렇게도 많은 미국의 유력자들이 전쟁 전에는 파시즘에 호의적이었을까? 미국이 나치 독일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지하기로 결심하고 나서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던 걸까?"(『좋은 전쟁이라는 신화』14쪽)


자크 파월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거대 자본은 전쟁 전 독일의 파시스트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나치 독일을 좋아한 까닭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탄압해서 무력화시킨 것도 기업들에겐 중요했고, 전쟁에 집중된 경제라는 점이 특별히 미국 기업들의 구미를 당기게 했습니다. 독일군에 무기와 전쟁 물자를 공급하는 것이 일반 물자를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익성이 높았기 때문이죠. IBM, 포드, 제너럴모터스, 스탠더드 오일, 코카콜라 등 많은 미국 기업이 나치스의 독일에서 막대한 돈을 벌었습니다. 조지 W. 부시의 할아버지인 프레스콧 부시도 독일 정부의 채권을 미국 금융시장에 판매해서 돈을 벌었고, 이 돈은 그의 아들이자 걸프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H.W 부시가 석유사업을 시작하는 자금이 되었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고 수행할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미국의 조력이 없었다면 나치는 탱크, 비행기, 트럭을 생산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독일이 자랑한 전격전의 필수품이면서 독일에서는 나지 않는 고무와 석유를 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지금 우리 상식으로는 어떻게 나치와 같은 인종주의자를 가깝게 여겼을까 싶지만, 당시 미국 재계의 유력인사들 중 다수는 인종주의를 깊이 신봉하던 사람들입니다. 헨리 포드의 경우 흑인을 경멸한 나머지 흑인 음악이라며 재즈까지 싫어했을 정도니까요.


물론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소련과 동맹을 맺고 나치 독일에 맞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쟁이 시작되고 한참 뒤의 일입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하고, 뒤이어 12월 11일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미국은 갑작스럽게 제2차 세계대전으로 휩쓸려 들어갑니다. 자유세계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뒷짐 진 채 한발짝 물러서서 관망하면서 전쟁 물자 팔아먹고 있다가 갑작스레 참전국이 되어 전쟁의 한가운데로 끌려들어 간 것이죠. 독일이나 일본 뿐만아 아니라 미국, 영국, 소련측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은 정의롭고 고상한 역사적 의미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제국주의 국가들의 팽창과 경쟁의 결과였고, 전쟁을 통한 돈벌이를 둘러싼 이전투구였던 셈이죠. 물론 세상 일이란 게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나쁜 의도로 시작한 일이 의외로 과정과 결과는 정의로울 때도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또한 제국주의의 팽창과 돈벌이 때문에 시작되었더라도, 그 과정이나 결과는 정의로울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의 진보적인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전쟁 기간 중 미국이 보인 행동-해외에서 벌인 군사행동, 자국의 소수자들에 대한 대우-은 '인민의 전쟁'에 부합하는 것이었을까? 이 나라의 전시 정책은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라는 전 세계 보통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한 것이었을까? 또 전후의 미국은 국내와 해외 정책에서 이른바 이 전쟁이 지키기 위해 싸웠던 가치들을 몸소 보여줬을까?"(『미국민중사2』98쪽)


하워드 진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도, 전쟁 중에도 자유나 해방, 민주주의를 위한 정책을 펴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1935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했을 때 미국은 군수품 수출 금지를 선언했지만 미국 기업들이 이탈리아에 석유를 수출하는 것을 막지 않았고 이 석유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는 전쟁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도 일본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기 전까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파시즘은 미국의 적이 아니었고, 미국 스스로도 필리핀, 쿠바, 니카라과, 파나마 등지에서 군대를 동원해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탄압한 제국주의 국가였습니다.


마국과 영국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파시스트에 의해 신음하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전쟁도 아니었습니다. 만약 미국이나 영국이 인도주의적인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해서 십수만의 사람들을 희생시킬 순 없었을 겁니다. 이들 대부분은 민간인이었고, 그중에는 히로시마 교도소에 전쟁포로로 수감된 미 해군 조종사 12명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미국 정부는 이 사실을 한 번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혹은 이미 전세가 기울어진 1945년 초에 독일의 도시 드레스덴에 폭탄을 쏟아부을 순 없었을 겁니다. 이 공습으로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절멸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집단 학살했던 히틀러의 독일이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드레스덴 공습으로 수십만 명을 몰살한 미국과 영국이나 전쟁을 수행하는 데 인도주의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의 결과 또한 정의롭지 않았습니다. 연합국의 두 축이었던 소련과 미국은 모두 전쟁이 끝난 뒤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독일과 일본에 점령되어 있던 폴란드, 그리스,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토착민들의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미국과 소련 모두가 방해했고, 그 결과 파시스트들이 물러난 자리에 소련과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좌익 독재 정권과 우익 독재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전쟁의 원인, 과정, 결과를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요, 나치와 파시스트라는 누가 봐도 나쁜 놈들과 싸운 전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는 인식이 가장 넓게 퍼져있는 전쟁이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고 파시즘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서사는 승전국들의 그럴싸한 포장이었던 겁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전쟁의 원인, 과정, 결과는 제2차 세계대전처럼 정의롭지 않습니다. 혹 전쟁을 처음 시작한 이들, 전쟁에 참여한 이들의 동기가 순수하고 정의로운 경우는 드물게 있지만 전쟁의 진행 과정과 결과까지 정의로운 경우는 없습니다. 이 글 도입부에서 예로 들었던 스페인 내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수립된 스페인 정부에 대해 파시스트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모두 파시스트의 패배나 공화주의자들의 승리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공화파의 의용군 내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내세우는 그룹들 때문에 내분이 일었습니다. 조지 오웰처럼 순수하고 정의로운 마음으로 파시스트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의용군의 열망과는 다르게 스페인 내전은 그리 아름다운 패배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당장 내전이나 분쟁으로 신음하고 있는 여러 지역을 생각할 때면 유엔 평화유지군이라도 빨리 파병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왜 유엔군은, 더 정확히는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군은 어떤 분쟁에는 개입하면서 어떤 분쟁은 외면할까요? 어떤 독재와는 싸우면서 또 다른 곳에서는 독재 정권을 옹호할까요? 이러한 질문은 우리는 전쟁의 깊숙한 이면을 들여다보게 해 줍니다. 이 전쟁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진행되었고, 무엇을 남겼는지. 이 전쟁에서 죽어간 이는 누구고, 파괴된 것은 무엇이고, 누가 웃게 되었는지 살펴본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정의로운 목적이나 선한 의도만으로 전쟁을 옹호하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긴 어렵지 않을까요?





'평화는 처음이라' 매거진은 평화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이 매거진의 지난 번 글이 4월 19일에 올린 글이니 3달 만에 겨우 마지막 글을 완성했네요. 이 글이 끝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을 씁니다. 이 매거진의 목차가 기본적인 뼈대가 될 것입니다. 책 쓰는 과정에서 새롭게 들어가는 챕터도 생길 수 있고 부족한 것은 더욱 채워가겠지만, 이 매거진에서 다룬 주제와 문제의식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책 나오면 많이들 읽어 주세요. 그리고 평화운동에 함께 해주세요.


(제목에 쓰인 이미지는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책표지 이미지의 일부입니다.)






참고한 책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자크 파월 지음, 박영록 옮김, 오월의봄, 2019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자크 파월 지음, 윤태준 옮김, 오월의봄, 2017

미국민중사2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이후, 2013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민음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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