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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pr 19. 2020

평화운동은 어떻게 전쟁과 맞서나요?

평화운동의 세 가지 방법과 한 가지 원칙


노벨평화상은 노벨상 가운데 가장 명예로운 상인 동시에, 가장 논란이 많이 일어나는 상이기도 합니다. 역대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 정전 협정에 기여했다며 헨리 키신저가 받았던 1973년 노벨상은 지금 봐도 이상합니다. 먼저 싸움 걸어서 진탕 싸운 뒤에 화해했다고 표창장 주는 거랑 다를 바가 없었죠. 2009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처럼 뭔가를 하기도 전에, 잘할 거라는 기대감 만으로 상을 받기도 하고요. 물론 훌륭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수상자들도 존재합니다. 왕가리 마타이(2004년)나 넬슨 만델라(1993년)처럼 평화와 민주주의의 개념을 확장하거나, 고 김대중 대통령(2000년)처럼 평화 진전에 성과를 거두거나, 데스몬드 투투 주교(1984년)처럼 비폭력운동을 전개한 수상자도 있습니다.


키신저, 오바마, 넬슨 만델라, 김대중 모두 공과를 따질 순 있어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대사의 거인들이죠. 노벨평화상이 꼭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에게만 상을 주는 건 아닙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핵무기금지운동단체인 ICAN이 수상했습니다. ICAN은 100개국 이상이 서명한 핵무기금지조약을 이끌어낸 평화운동 단체입니다. 제가 받은 상은 아니지만, 평화운동의 의미를 인정받은 것만 같아서 무척 기뻤습니다. 하지만 꼭 노벨평화상을 받아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니죠. 아무런 상도 못 받고, 혹은 사회적으로 주목받지도 못하면서도 평화운동의 본연의 목적, 전쟁을 중단시키고 예방하고 종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평화운동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 평화운동을 이어온 분들에게 존경을 표하면서, 이번 글에서는 그 평화운동들이 과연 어떻게 방법으로 전쟁과 맞서 왔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평화는 당파적이고 논쟁적인 개념이고,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장이라는 말을 이 매거진에서 여러 번 했습니다. 여러 번 강조한 이유는, 평화는 '갈등이 없는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평화운동 또한 평화가 받는 오해를 그대로 받습니다. 평화운동은 국가폭력이 때리면 그냥 맞기만 해야 한다거나, 불합리한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화도 내선 안 되고 착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하지만 평화운동이 늘 착하고 얌전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평화운동은 얌전하다?


1996년 1월 29일 세 명의 여성이 영국 랭카셔에 있는 BAE(영국 최고의 군수산업체) 공장에 몰래 숨어 들어가 망치로 호크기 전투기를 때려 부숩니다. 이들은 리버풀 법원에서 결국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군수산업체의 공장에 무단침입해 망치로 기물(전투기)을 파손한 것은 분명 범죄지만, 더 큰 범죄인 전쟁 범죄를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게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호크기가 망가지지 않았다면 예정대로 인도네시아에 팔려서 동티모르 사람들을 폭격하는 데 쓰여 더 많은 사람이, 특히 비폭력 저항을 이어가던 시민들이 죽고 다쳤을 텐데 그걸 막기 위해 불가피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재판부가 인정했던 것이죠.


앤지 젤터와 동료들의 당시 직접행동과 이후 재판을 설명해주는 짧은 다큐입니다. 죄송하지만 자막이 없습니다.


굉장히 과격하죠?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필립 베리건 신부와 다니엘 베리건 신부(둘이 형제면서 둘 다 모두 가톨릭 사제입니다)는 1980년 9월 8일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군수산업체 제너럴일렉트릭 공장에 잠입해 핵탄두의 부품을 망치로 부숩니다. 앤지 젤터의 선배 격이죠. 이 형제 신부는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징병사무소에 쳐들어가 징집 서류를 몽땅 들고 나와 주창장에서 불태워버립니다. 한국으로 치면 지방병무청에 들어가 징병 데이터가 들어 있는 컴퓨터를 들고 나와 망치로 때려 부순 거죠. 전쟁에 맞서는 평화운동은 때로는 이렇게 과격하기도 합니다.


앤지 젤터와 베리건 신부의 직접행동을 사례로 든 것은 평화운동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깨기 위한 것이지 평화운동이 무조건 망치 들고 뭔가를 부수는 운동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전쟁에 저항하는 방법은 아주 무궁무진합니다.



평화운동이 목표를 달성하는 세 가지 방법


평화운동의 목표를 거칠 게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 진행 중인 전쟁을 중단시키거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을 예방하거나,

전쟁이 끝난 뒤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평화운동이 택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 평화운동은 부당한 것에 항의하거나 주장하는 바를 설명하고 설득합니다. 안보팔이 정치인들의 잘못을 폭로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군수산업체가 부당하게 얻는 이익을 얻는 방식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선전물을 만들어 배포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힘을 모으기 위해 대규모 집회를 개최합니다. 국회가 파병동의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것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평화운동이나 사회운동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방식들이 대부분 이러한 항의와 설득 방식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동참할 수 있는 방법들입니다.


또 평화운동은 비협조를 통해 목표한 바를 이룹니다. 비협조는 말 그대로 '협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앞서 살핀 것처럼 아무리 독재정권이라고 하더라도 전쟁을 수행하려면 시민들의 동의와 협조가 필요합니다. 군대에 입대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특정한 전쟁에 참여하라는 명령이나 핵무기나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병역거부가 대표적이죠. 학교에서 전쟁을 찬양하는 역사를 가르치기를 교사들이 거부하거나, 전쟁을 지지하거나 전쟁으로 돈을 버는 기업의 제품을 보이콧하는 것도 비협조에 해당합니다. 이 방식은 병역거부처럼 때로는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만,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 직접적인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 방식은 비폭력 개입입니다. 비협조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쟁을 직접 막아선다면 비폭력 개입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전쟁과 전쟁 준비를 막아섭니다. 비폭력 개입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저항을 위한 개입입니다. 위에서 말한 앤지 젤터나 베리건 신부의 사례가 저항을 위한 비폭력 개입니다. 전투기를 못쓰게 망가뜨리거나 무기박람회의 입구를 봉쇄하는 직접행동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대안을 위한 비폭력 개입은 주로 구조적 폭력이나 문화적 폭력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구현됩니다. 평화를 가르치는 교육 커리큘럼을 만든다거나, 에스페란토어 운동처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대안언어를 만드는 일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평화운동의 원칙, 비폭력


위에서 정리한 세 가지 방식으로 전쟁에 반대한다고 다 평화운동은 아닙니다. 평화운동이 어때야 한다는 합의된 도덕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평화운동에도 기본적인 원칙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평화운동의 기본 원칙은 비폭력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평화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은 모두 비폭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그중에서도 평화운동은 비폭력의 원칙을 더욱 강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비폭력이 평화운동의 원칙이야 할까요? 크게 세 가지의 이유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평화운동은 폭력과 맞서 싸우는 운동이고 우리의 방식은 우리의 목적과 일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나오미 울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인권운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인권적인 방식을 활용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가끔씩 눈앞에 바로 보이는 성과 때문에 이런 원칙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원칙은 중요합니다. 시인이자 활동가인 오드리 로드는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인의 도구로는 주인의 집을 부술 수 없다." 평화운동이 단순히 지금 진행 중인 전쟁을 중단하는 것만이 목표라면 때로는 수단보다 목표 달성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평화운동은 전쟁을 일으키는 정치인 한 명 혹은 군수산업체 몇 개를 제거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전쟁과 폭력이 지속되는 사회 구조나 이데올로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운동입니다. 폭력이라는 도구로는 결코 폭력과 전쟁이 만든 집을 부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원칙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만 어쩌면 가장 실질적인 이유입니다. 비폭력적인 방식이 평화운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당시 이른바 3.5%의 법칙으로 유명해진 책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는 20세기와 21세기 초반의 굵직한 사회운동 사례를 분석해서 비폭력적인 방식이 실제 운동의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을 수치로 증명합니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룬 323건의 사회운동이 모두 평화운동은 아닙니다만, 이중 다수가 평화운동이기도 하고 사회운동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개념 위에서 진행된 연구인만큼 평화운동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합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합니다. 폭력적인 방식은 평화활동가들보다는 전쟁꾼들에게 익숙한 방식입니다. 평화운동이 폭력적인 수단으로 전쟁세력에 맞서는 것은 우리의 장점을 버리고 상대방의 장점을 살려주게 될 테니까요.

에라카 체노웨스와 마리아J.스티븐의 연구는 비폭력적인 방식의 사회운동이 폭력적인 방식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폭력적인 수단은 평화운동 내부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아버린 이야기를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37년 동안 대통령을 해먹은 독재자로 알려져 있지만 짐바브웨의 무가베 전 대통령은 원래는 영국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쿠바의 악명 높은 독재자 바티스타에 맞서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혁명을 승리로 이끈 피델 카스트로 또한 혁명 이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카스트로 입장에서는 미국을 핑계 삼을 순 있겠죠. 그 핑계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정상참작 정도는 할 수 있더라도 그게 민주주의를 파괴한 행위에 대한 완전한 변명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맞섰던 혁명가들 중 많은 수가 나중에 독재자가 되어버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외부의 적과 싸우면서 내부의 민주적인 구조를 강화하는 일을 게을리한 탓이고 더 직접적으로는 더 큰 폭력과 싸우면서 폭력에 대해 성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글에서는 우리가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이번 글에서는 그렇다면 과연 전쟁을 어떻게 끝낼 수 있는지, 그때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지를 살펴봤습니다.


이 매거진 첫 글에서 말한 것처럼, 이 매거진 글들은 빨간소금 출판사에서 낼 『평화는 처음이라(가제)』의 초초고쯤 됩니다. 구상해본 목차대로 글을 쓰면서 새롭게 들어간 챕터도 있고 어떤 챕터는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못 썼습니다. 그중에는 아예 버리기로 마음먹은 챕터도 있고, 공부를 좀 더 한 뒤에 다시 써야 할 챕터도 있습니다. 이 글이 책에서는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챕터일 텐데, 매거진에는 공부가 부족해서 완성하지 못했던 글 한두 편을 추가할 생각입니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책 쓰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아직 초초고를 쓰는 게 끝난 것은 아니지만, 예상한 목차의 마지막 챕터를 마무리하려니 약간 감상적으로 되네요. 때마침 비가 오는 날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열심히 남은 글을 마무리하고, 빨리 책 원고도 써서 올해 안에 꼭 책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참고한 책


직접행동, 에이프릴 카터, 조효제 옮김, 교양인, 2007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지음, 주해연, 박미선 옮김, 후마니타스, 2018

함께 가만한 당신, 최윤필, 마음산책, 2016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 에라카 체노웨스, 마리아 J. 스티븐 지음, 강미경 옮김, 두레, 2019

세상을 바꾸는 비폭력의 힘, 이용석, NPO지원센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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