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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pr 09. 2020

우리가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함께할 때 발휘되는 시민들의 거대한 힘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이 말만큼 유명하지는 않은데요, 4세기 로마에 살았던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라는 사람이 그의 논문 <군사학 논고>에 쓴 글귀라고 합니다. 4세기 로마는 '로마의 평화'라고 불리는 '팍스 로마나' 시절이 저물어 가던 시기입니다.(로마의 평화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평화가 무엇이냐>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 격언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정치인들과 군인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강한 군사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전쟁은 끊이질 않고, 점점 강해지는 무기는 이제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전쟁을 하면 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전쟁으로 이익을 챙기는 이들만 배가 불러옵니다.(전쟁수혜자들에 대해서 '누가 전쟁을 원하는가'와 '입으로는 평화를, 속으로는 전쟁을 외치는 이들'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전쟁을 준비했더니 그만 전쟁만 치르고 평화는 뒷전으로 밀린 것이죠. 이제 저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중단하라!


그런데 말을 쉽지만, 과연 전쟁을 중단하는 게 쉬운 일일까요? 아직도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많은데, 기를 쓰고 전쟁을 기획하고 부추기는 군수산업체들과 그들의 충실한 영업사원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안보팔이 정치인들이 현실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전쟁을 중단하는 건 시민의 힘


선전포고를 하거나 국제전에 참전을 결정하는 건 정치인입니다. 실제 전쟁터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건 군인이고요. 하지만 전쟁을 중단하거나 막을 수 있는 힘은 시민들에게 있습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중단하라!" 이 외침을 실현하는 것은 결국 시민의 몫입니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시민들의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 아무리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전쟁을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데 우리의 책임은 없을까'에서 밝혔습니다. 사람들이 전쟁을 지지하거나, 동의하거나, 묵인하거나, 최소한 침묵했기 때문에 전쟁이 가능했던 것이라고요. 이는 전쟁이 일어나는 데 보통 사람들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지만, 다시 말하면 전쟁을 막을 힘이 보통 사람들, 즉 시민들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시민들의 힘-보통 사람들의 권력에 대해서 이야기한 학자들이 있습니다.(에이프릴 카터가 쓴 『직접행동』에는 여러 학자들이 '권력'을 어떻게 정의 내리고 현실에서 해석하는지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대표적입니다. 아렌트는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뿐만 아니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서 항의의 힘이 발생한다고 봤습니다.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간디의 영향을 받은 비폭력 운동 연구자 진 샤프 역시 한나 아렌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한나 아렌트와 진 샤프는 지배층과 기득권층의 권력이 대중의 동의로부터 발현되는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권력의 원천은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대다수의 민중에게 있고, 정부의 권력은 일견 막강해 보이지만 수많은 제도와 사람들의 적극적인 혹은 소극적인 협력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복종하지 않는다면, 혹은 협조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독재자라도 자신의 권한을 마음껏 행사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복종하지 않고, 협조하지 않는 힘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불복종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소로우가 이야기한 시민불복종은 부당한 법을 거부하고 정의를 지킬 것을 촉구하는 직접행동이죠. 독재정부나 부당한 국가의 법과 명령에 대해 협조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일부러 부당한 법과 명령을 어겨서 사회문제로 드러나는 적극적인 행동이 시민불복종입니다. 소로우 또한 미국이 멕시코를 침략하는 전쟁에 반대하며 전쟁세 납부를 거부해서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한나 아렌트나 진 샤프, 소로우의 이야기는 사실 사회운동 전반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국가 권력과 맞서는 시민운동의 힘에 대한 이야기죠. 이것을 전쟁과 결부시켜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제 아무리 군수산업체들이 전쟁을 부추기고 독재자가 전쟁을 승인하려 해도 우리가 전쟁에 동의하지 않고, 더 나아가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 참여에 불복종한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전쟁을 막아선 사람들


물론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훨씬 녹록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복잡다양한 원인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한 시민들의 전쟁 반대, 전쟁에 대한 불복종 만으로 지구상의 전쟁이 뚝딱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대가 거셀수록 정부는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워집니다.


2003년 3월 20일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합니다. 미국은 이라크 침략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대량 살상 무기'를 이라크가 숨기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한편 동맹국들에게 참전을 요구합니다. 당연히 한국도 파병을 요구받았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도 큰 규모의 파병 반대 데모가 거듭되었습니다. 파병을 반대하며 현역 이등병이 병역거부를 하기도 했죠. 노무현 정부는 결국 한국 시민들의 거센 파병 반대 여론을 등에 업고 미국과 협상을 해서 비전투병 3000명을 파병하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물론 파병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시민들의 파병반대 운동이 없었다면 미국의 압박으로 전투병을 파병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한국 젊은이들이 이라크에서 죽게 되고, 한국 군인의 총에 죽는 이라크 사람들도 늘어났겠죠. 당시 파병 반대 운동이 이라크 전쟁을 중단시키지는 못했지만 전쟁이 더 커지고 더 오래 지속되고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파병 군대 철수를 주장하는 전쟁없는세상의 기자회견 사진. 평화를 원한다면 군부대 대신 병역거부자를 비롯한 민간평화봉사단을 보낼 것을 주장했습니다.


시민들의 강력한 힘은 때로는 전쟁 자체를 중단시키기도 합니다. 1964년부터 1972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조그만 농업 국가를 침공한 베트남 전쟁을 중단시킨 것은 반전운동의 힘이었습니다.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반전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젊은 남성들은 징병을 거부했습니다. 1965년 중반까지 징병 거부로 기소당한 사람이 380명이었는데 1969년 말에는 징병거부자가 3만 4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군인들은 베트남 전장에서 탈영을 해서 캐나다, 스웨덴 등지로 망명을 했습니다. 탈영병의 숫자는 1967년 4만 7천여 명에서 1972년 8만 9천여 명으로 늘었습니다. 전쟁터에 남은 병사들도 반전운동에 동참하는 뜻으로 검은 완장을 착용하는 군인이 있었습니다. 제대한 군인들은 단체를 결성해서 전쟁의 참상을 알렸습니다. 베트남에서 받은 훈장을 국회의사당 담장 너머로 집어던지기도 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반전 연설을 했고, 형제가 나란히 가톨릭 사제였던 필립 베리건 신부와 대니얼 베리건 신부는 병무청 사무실에 들어가 징병 서류를 불태웠습니다. 음악가들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전쟁 반대를 노래했고, 시민들은 거리에서 전쟁 반대를 외쳤습니다.


존 레논도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그는 투쟁가를 만들어 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부르기도 했는데요, Give peace a chance도 그때 만든 곡입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전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69년에 "어떤 상황에서도 저는 그 어떤 반전운동에도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반전운동 때문에 전쟁을 확대하지 못하고 중단한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공개적으로 격렬한 반전 논의를 계속 무시했지만……․ 그 모든 항의와 전쟁 중지일 시위가 벌어진 뒤, 전쟁을 확대시키면 미국의 국내 여론이 심각하게 분열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미 행정부는 베트남 전쟁의 중단이 마치 정부의 결단 덕분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시민들의 반대 때문에 전쟁을 중단했다고 하면 모양 빠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시민들이 자신의 힘을 자각하는 것이 두려워서 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많은 자료들, 심지어 미 국방부에서 작성한 문서들에서도 당시 반전운동 여론이 전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시민들의 가진 힘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균열을 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작은 균열을 내지만, 그 균열이 쌓이고 쌓여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마침내 전쟁을 멈추게 만들기도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전쟁을 끝내는 시민들의 힘, 즉 평화운동이 어떻게 전쟁을 끝내는지, 왜 평화운동은 비폭력이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참고한 책


직접행동, 에이프릴 카터, 조효제 옮김, 교양인, 2007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강승영 옮김, 이레, 1999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진 샤프, 백지은 옮김, 현실문화, 2015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가교, 2011

미국 민중사2, 하워드 진, 유강은 옮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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