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지지, 협조, 묵인, 방조가 전쟁을 가능하게 한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전쟁 분위기가 조성되면 그걸 반기는 건 군수산업체와 일부 안보팔이 정치인들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전쟁을 부추기는 건 군수산업체, 전쟁을 결정하는 건 정치인, 전쟁을 수행하는 건 군인입니다. 어 잠깐! 여기에 우리들, 시민들의 자리는 없는 걸까요? 전쟁에서 시민은 죽고 다치는 피해자로만 존재하는 걸까요?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우리의 역할이라든지, 책임, 몫 이런 건 없는 걸까요? 우리는 그냥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 때 안보팔이 정치인에게 투표만 안 하면 되는 걸까요? 이번 글에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제 나름의 대답을 말해보고자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부분 국가의 지도자가 함부로 전쟁이나 전쟁과 유사한 군사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법률로 엄격하게 규제하며 국회와 같은 대의 기관을 통해 견제하고 있습니다.
제5조 ①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5조 1항입니다. 우리나라 또한 침략전쟁 자체를 헌법으로 부정합니다. 이론상으로는 절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국가인 거죠.
제60조 ②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그리고 헌법 제60조 2항입니다. 선전포고, 파병 모두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지만 가능합니다.
물론 현실이 꼭 이론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한국군이 이라크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었죠. 베트남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베트남과 이라크를 부당하게 침략한 전쟁인데 침략 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을 가진 한국 정부가 침략군의 일원으로 한국군을 파병한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을 수 있습니다.(저도 이런 비판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결과적으로는 파병이 되긴 했지만 헌법과 국회 동의 절차 같은 것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라크 파병 때는 당시 노무현 정부의 지지자 중 많은 분들이 파병을 반대하는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정부는 애초 미국이 요구했던 전투병을 파병할 수 없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한국처럼 의회의 동의를 얻는 등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 두어 정치 지도자 몇 명이 결정할 수 없게 해 놨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와 다르게 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자가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독재자라고 해서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개 아닙니다.
부족끼리 손도끼 들고 싸우던 시절과는 달리 근대 이후의 전쟁은 국가의 모든 역량이 투여되는 총력전입니다. 요즘에는 무인항공기가 군사작전을 수행한다지만 전쟁은 결국 많은 군인과 민간인들, 즉 시민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게다가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이 입고 먹을 물자들을 생산하고, 그걸 전쟁터까지 보급하는 일은 결국 나라 전체의 역량을 전쟁에 쏟아붓게 만듭니다. 그리고 전쟁에 쓰이는 만큼의 인력과 자원이 사회의 다른 필요한 영역에 쓰이지 못하겠죠. 여론이 악화되고, 그러다 걷잡을 수 없게 되면 정치인들은 국가 밖의 전쟁보다 국내의 갈등을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지도 모릅니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독재자더라도 전쟁을 유지하는 건 결국 보통 사람들의 지지나 협조가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공무원들이 일을 안 하면 국가는 군인을 모집할 수 없습니다. 시민들이 군입대를 거부하면 과연 누가 전쟁을 수행할까요? 노동자들이 생산을 멈추면 군인들이 쓰는 생필품 조달도 불가능합니다. 자영업자들이 세금 내기를 거부하면 국가는 무슨 돈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을까요? 국민을 총칼로 협박해서 전쟁을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런 방법으로 전쟁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총파업이나 저항운동에 직면할 것을 걱정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제 아무리 독재자라고 해도 전쟁을 하는 데에는 국민들의 동의나 지지가 필요합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독재자 중 한 명인 히틀러 또한 전쟁을 지속하는 와중에도 일반 국민들의 눈치(?)를 봤습니다. 자크 파월이 쓴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보면 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치가 집권하고 전쟁을 치르면서 독일의 기업과 은행들은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는데요, 히틀러는 이 사실이 보통의 독일 국민들을 자극해 분노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분노가 혁명이나 저항운동으로 연결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죠. 히틀러와 나치는 결국 1941년 법인세율을 40퍼센트에서 50 퍼센트로 올리고 1942년에는 다시 55퍼센트로 올렸다고 합니다. 또한 히틀러는 농업 낭만주의 사상을 장려하면서 소련 침공에 대해 홍보했는데, 이는 독일의 농민이나 수공업자를 의식한 홍보 전략이었다고 합니다. 동부(동유럽)를 농민, 수공업자 등 일반 국민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포장했던 것이죠.
이처럼 히틀러의 독일 3제국도, 미국도, 대한민국도 정치지도자가 혼자가 전쟁을 밀어붙일 수는 없습니다. 시민들이 전쟁을 지지하거나, 동의하거나, 묵인하거나, 최소한 침묵했기 때문에 전쟁이나 파병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물론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선 대규모의 반전 운동이 일어났고, 아라크 파병 당시 한국에서도 전쟁 반대와 파병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거대한 반대였지만 찬성하거나 침묵하는 이들에 비해서는 소수였기 때문에 전쟁과 파병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의 반전 운동은 베트남 전쟁이 더 빨리 끝나는 데 크게 기여했고, 한국의 파병 반대 운동 또한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서 요청한 전투병을 보내지 않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전쟁을 지지할까요? 혹은 최소한 침묵하거나 묵인할까요? 주변을 보면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죠.
재미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2015년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미국 시민들에게 아그라바 침공에 대한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공화당 지지자의 1/3 이상이 침공에 찬성한다고 대답했습니다.(공화당 지지자 중 13%만이 반대를 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의 경우는 19%가 침공을 찬성하고 36%는 반대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아그라바라는 나라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알라딘에 나오는 가상의 국가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정확한 맥락이나 정보를 갖지 않은 채 너무 쉽게 판단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사례로 이 여론조사가 활용되곤 합니다만 저는 좀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도 없이, 맥락도 살피지 않은 채 어떤 나라를 침공하는 것에 찬성한 것은 그 나라 이름이 '아그라바' 즉 이슬람 국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 판단은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인 추론 끝에 합리적으로 내린 결론이라기보다는 평소에 이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혐오에 기반한 판단이지 않을까요?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독일 내부의 거대 자본과 군부가 전쟁을 원한 것도 있지만, 당시 독일 사회에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이 만연한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20세기 초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에도 조선인이나 만주인을 열등한 사람으로 보는 혐오의 감정이 깔려있었습니다.
이처럼 혐오와 배재, 차별 같은 속성은 전쟁을 일으키는 데 아주 좋은 토양이 됩니다. 혐오와 배제,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군수산업체가 조금만 선동해도 전쟁 찬성 여론이 일어나고, 안보팔이 정치인들이 손쉽게 전쟁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떄문에 전쟁을 일으키려는 세력들은 늘 국민들 속에 숨어있는 혐오와 배제, 차별을 자극하고 부추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차별과 배제, 혐오와 같은 행동에 맞서야 합니다.
비판과 견제의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독재국가에서조차 전쟁이라는 막대한 사건은 국민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전쟁이 시작되고 유지되는 데에는 우리의 책임이 분명 있다는 뜻입니다. 비록 전쟁을 부추기거나, 결정하거나, 적극 지지하지는 않았더라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방조하거나 묵인한 책임 말입니다.
국가의 결정에 한 명 한 명의 시민이 무슨 힘이 있어서 개입하겠냐고 억울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들 개개인은 힘이 없고 국가는 늘 개인들의 정치적 의사를 무시하기 일쑤니 까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같이 읽어보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두 유대인의 글입니다. 한 명은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고, 한 명은 기적적으로 생환해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겼습니다.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의 일기』 한 구절과 프리모 레비가 쓴 『이것이 인간인가』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 이번 글을 마치겠습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중략)
아는 것, 그리고 알리는 것은 나치즘에서 떨어져 나오는 방법(결국 그리 오래지 않아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나는 독일 국민이 전체적으로 이런 방법에 의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인간인가』중에서
나는 전쟁의 책임이 위대한 사람들과 정치가, 자본가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책임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정말 전쟁이 싫었다면 너도나도 들고일어나 혁명을 일으켰어야지요. -『안네의 일기』 중에서